‘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 자유롭기에, 나는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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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철환의 음악동네 - 장기하 ‘부럽지가 않어’

“본인을 한 단어로 표현해보세요.” 이럴 경우 최종면접관에게 “꼭 한 단어로만 말해야 하나요?” 조심스레 되묻는 지원자가 간혹 있는데 웬만하면 삼가는 게 좋다. 합격 여부를 결정하는 자리, 그야말로 결정적 순간에 감히(?) 수정제안을 내놓는 건 시간벌기나 머리 굴리기로 비칠 가능성이 크니까. 뭐든 한마디 던져놓고 뒷감당(매력적인 추가해설)하는 편이 차라리 낫다. 일단 메모해두자. 구멍 난 창의력은 순발력으로 메꿔라.

“마지막으로 꼭 남기고 싶은 말 있으면 해보세요.” 이때도 긴장해야 한다. 남기고 싶은 말이란 모름지기 이 직장에 남고 싶다면 한마디 하라는 뜻이니까. 면접관은 그 한마디로 이 사람을 남겨야 할지 넘겨야 할지 최종판단할 수도 있다. 어렵사리 그 자리까지 가서 기억에도 안 남을(당사자에겐 뼛속까지 남겠지만) 최후의 한두 마디 때문에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좀 억울하지 않겠는가. ‘흔적 없는 거리거리마다/ 말 못하는 사람들 뿐이야.’(해바라기 ‘어서 말을 해’ 중) 그러니까 흔적이라도 남기려면 말을 해야 한다. 어느 순간 내가 남긴 한 마디가 그물에 걸려 많은 사람의 식탁에서 영양가를 발휘한다면 기분이 어떨까.

‘나의 아저씨’(tvN)를 쓴 박해영 작가는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JTBC)를 통해 바다 깊숙이 잠자던 물고기 한 마리를 건져 올렸다. 해초들에 가려 거의 존재감 없던 ‘추앙’을 수면 위로 둥둥 떠다니게 만들었다. 우러러볼 것이 사라진 세상에서 나는 무엇을 바라보며 살 것인가를 문득 돌아보게 만든 힘. 이것도 선한 영향력 아닐까. 추앙할 대상을 따라 묵묵히 걷다 보면 언젠가 더 나은 사람이 돼 있을 거라는 희망은 추가해설에 써넣어도 빛을 발할 듯하다.

마음의 눈을 뜨면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애당초 없었던 것이 아니다. 있었지만 홀대했던 것들이다. 보잘것없고 하잘것없던 과거의 나를 허물고 단단한 나로 일으켜 세우는 자각이야말로 예술의 효용이다. 모름지기 훌륭한 작가는 지시하지 않고 제시한다.

음악동네 해방촌에도 독특한 캐릭터가 많은데 오늘은 장기하가 눈에 들어온다. ‘싸구려 커피’(2008)를 마시며 이 동네로 스며든 지 벌써 15년째다. 처음에 이름과 노래를 듣고 기발한(?) 프로젝트가 하나 떠올랐다. 기하와 대수. 여기서 대수는 ‘행복의 나라로’를 만들고 부른 한대수(1948년생)다. 가수를 가창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자기만의 독특한 개성으로 노래하면서 시대의 공감을 이끈 사람이라고 외연을 넓힌 사람들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별일 없지’라고 물었을 때 장기하는 줄곧 이죽거렸다. ‘니가 들으면 십중팔구 불쾌해질 얘기를 들려주마/ 오늘 밤 절대로 두 다리 쭉 뻗고 잠들진 못할 거다/ 그게 뭐냐면/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뭐 별다른 걱정 없다/ 나는 별일 없이 산다/ 이렇다 할 고민 없다.’ 도대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뭘까. 도무지 걱정 없는 나, 고민 없는 나를 불쾌, 불편해하는 그는 친구인가 경쟁자인가. 선망은 희망과 노선이 다르다. 내가 무사하므로 두 다리 못 뻗고 자는 친구라면 우리는 결코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다. 그들은 자랑하는 사이다. ‘너네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 난 괜찮어.’(장기하 ‘부럽지가 않어’ 중) ‘괜찮다’는 ‘관계하지 아니하다’ ‘귀찮다’는 ‘귀하지 아니하다’를 줄인 말이다. 이 친구 참 한결같다. 장기하의 산문집 제목도 ‘상관없는 거 아닌가?’(2020)다. 아, 알겠다. 그의 문제의식은 남이 싸구려 커피를 마시며 눅눅한 비닐장판에 발바닥이 쩍하고 달라붙었다가 떨어진다 해도 그의 자유로운 삶을 방해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는 거 아닐까.

비가 갠 하늘은 파랑이다. 파랑은 파란 걸, 노랑은 노란 걸, 자랑은 잘하는 걸 줄인 말이다. 내가 잘하는 걸로 너를 자유롭게 해주는 것. 그건 자랑이 아니고 사랑이다.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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