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율·재고 50% 증가…뚜렷한 ‘침체 시그널’

기대인플레율 하락 전환에도
소비부진에 기업재고 더 쌓여

기업 192곳 재고자산 147조원
석유화학 · 철강 · 에너지‘심각’
“본격적인 경기하락”전망 나와

가계와 기업이 향후 1년간 소비자 물가 상승을 예측하는 기대인플레이션율이 8개월 만에 내림세로 돌아섰다. 물가 정점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되면서 인플레이션 둔화 조짐을 보인다는 해석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물가가 진정세로 막 돌아설 조짐을 보이는 상황에서 기업들의 재고가 급증하는 것으로 파악되는 등 경기침체를 알리는 위험 신호가 잇따르면서 경제·산업계엔 비상이 걸렸다.

한국은행이 23일 발표한 ‘8월 소비자동향 조사’에 따르면 이달 기대인플레이션율은 4.3%로, 지난달과 비교해 0.4%포인트 하락했다. 기대인플레이션율이 전월 대비 내린 건 2021년 12월 이후 처음이다. 향후 1년간 소비자물가 상승에 영향을 미칠 주요 품목의 응답 비중은 농축수산물(47.5%)과 석유류 제품(47.0%), 공공요금(45.6%) 순이었다. 황희진 한은 통계조사팀장은 “글로벌 물가 흐름이 정점에 가까워졌다는 기대가 나오고, 올해 하반기 물가 정점을 찍을 것이라는 정부 발표 등이 소비자 심리에 영향을 준 듯하다”며 “최근 유가가 소폭 하락한 것과 미국 등 글로벌 물가 흐름이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년간 주관적으로 체감한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의미하는 물가 인식은 5.1%로 한 달 전과 같았다. 체감 물가의 경우, 폭우 등 기상 문제로 채소 및 식품류의 생활물가가 많이 올라 물가 인식은 여전히 높게 형성된 것으로 분석된다.

이제 넘어야 할 산은 경기침체다.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와 미국의 긴축 강화 등으로 ‘소비절벽’이 현실화하면서 올해 상반기 대기업의 재고자산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0%가량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가 이날 매출 기준 상위 500대 기업 중 지난해와 비교할 수 있는 192개 기업의 올 상반기 재고자산 현황을 조사한 결과, 총 147조6237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98조6661억 원)보다 48조9576억 원(49.6%) 증가한 수치다. 전 세계 공급망 위기로 원자재 가격 상승을 예상한 기업들이 미리 구매를 늘렸지만, 경기침체 우려로 수요가 살아나지 않으면서 재고가 쌓인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기간 산업인 석유화학과 철강, 에너지 등 업종에서 재고자산 증가세가 가팔랐다. 올 상반기 석유화학 업종 26개 사의 재고자산은 지난해보다 71.0% 늘어난 28조3531억 원으로 집계됐다. 포스코홀딩스, 현대제철 등 철강 업종 11개 사의 올 상반기 재고는 지난해보다 66.2% 늘어난 14조1342억여 원으로 집계됐다. 에너지와 정보기술(IT) 서비스 업종의 같은 기간 재고자산 증가율도 70%를 웃돌았다. 일각에서는 기업 재고자산 증가가 본격적인 경기 하락의 신호탄이 아니냐는 우려 섞인 전망마저 내놓고 있다. 한편 이날 오전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장중 1345.20원을 기록했다.

윤명진·김호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