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종의 시론>이젠 ‘원내정당’ 논의할 때 됐다

  • 문화일보
  • 입력 2022-09-05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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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종 논설위원

與는 대통령과 대표 갈등 심각
野는 ‘개딸’ 팬덤에 포획 당해
민생 팽개치고 내부 권력 다툼

중앙당 중심 대중정당 수명 끝
미국처럼 원내정당 논의 시급
정쟁보다 국회 활동 중심 돼야


지금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고 있으면 ‘정당(政黨)’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집권 여당은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과 이에 도전하는 당 대표 간의 ‘이중권력’ 혈투가 여권 전체를 마비시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그 측근들을 한편으로 하고 당 대표에서 쫓겨난 이준석 전 대표는 법적 수단을 통해 당을 향한 공격을 멈추지 않는다. 정치는 실종되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하다. 이재명 대표 체제의 민주당은 ‘개딸(개혁의 딸)’이라는 팬덤에 포획됐다. 의사결정에서부터 당사(黨舍)와 당직자 전화 번호도 모두 ‘개딸’에 공개했다. 이 대표 취임 첫 조치다. 이들 눈에 거슬리면 살아남기 힘들다.

건국 이후 우리 정치체제는 대중정당에 의해 움직여졌다. 중앙당과 지구당이 있고 당 대표 또는 총재가 공천권 등 절대권력을 가졌다. 보스를 중심으로 한 계파가 당의 일부분을 차지해 당권 장악을 위해 끊임없이 내부 싸움을 벌여 왔다. 그래서 국회보다는 정당 내부 계파 정치가 주류를 이뤘다. 아무리 국회에서 입법 활동을 열심히 해도 보스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공천을 받을 수 없다. 공천 제도를 개혁해 봐야 대표와 팬덤 눈 밖에 나면 끝이다. 그래서 윤핵관, 이핵관, 친명, 비명이라는 말이 끊이지 않는다.

여당의 이중권력 폐해가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이준석의 난(亂)’이다. 이 전 대표와 윤핵관의 싸움으로 보이지만 본질은 대통령의 절대권력을 이준석이 인정하지 않는 데서 시작됐다. 윤핵관이 당의 실세인데 이 전 대표가 공천권을 행사하기 위한 행보를 보이자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역대 여당은 대통령을 넘어선 당 대표의 독자적인 권력 행사를 용인하지 않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김무성 대표와의 갈등이 대표적이다. 결국, 이 갈등은 탄핵이라는 불행한 결론으로 끝이 났다. 윤 대통령을 향해 ‘신군부’ ‘절대자’ ‘개고기’ ‘양두구육’ 등의 극언을 서슴지 않는 이 전 대표의 행태에 당내 비난이 들끓지만 법원이 이준석을 편들면서 진퇴양난이다. 이 전 대표는 연일 당원 가입을 독려하며 당권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이러니 정치 생명을 건 이런 싸움에 민생과 국민이 차지할 공간은 없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대의원보다 권리당원 결정이 우선하는 당헌 개정이 좌절되긴 했지만, ‘이재명민주당’ 만들기가 속도를 내고 있다. 이 대표는 첫 조치로 당원들에게 당사를 개방하고 당직자들의 전화 번호를 공개하라고 지시했다. ‘당원과 함께하는 민주당’이 되자는 취지이지만 ‘욕 플랫폼’을 만들어 국회의원들을 마음대로 욕하게 하자는 발상과 같다. 조직화한 정치 훌리건인 ‘개딸’이 당에 직접 개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자는 의도다. 자신을 반대하는 의원이 있으면 개딸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조응천 의원은 “강성 당원들, 개딸들의 기를 살려주는 쪽으로 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일각에서는 이런 움직임이 과거 제2차 세계대전 전에 독일 나치당과 비슷하다는 지적도 한다. 반대를 용납하지 않고 극성 당원들의 정당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민심보다는 개딸의 여론이 중요하고 이들만의 정당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현상은 중앙당 중심의 대중정당 수명이 다해 간다는 징조다. 이현우 서강대 교수는 “책임당원의 한 달 당비는 고작 1000원이고 정당들은 당비가 아닌 국고보조금에 의존해 운영된다”면서 “국민의 1%밖에 안 되는 표를 받아 정당의 대표가 된 후 정치를 쥐락펴락하는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제 미국이나 프랑스처럼 당 대표 없이 국회의원 중심으로 운영되는 ‘원내정당화’가 본격적으로 모색될 때가 됐다는 것이다. 원내정당이 되면 의원들이 당의 실권자보다 민심과 유권자의 생각을 먼저 고려할 수밖에 없다. 유권자인 지역구민의 상향식 선출에 의해 후보가 되기 때문에 이들의 주장에도 더 귀 기울이게 된다.

지금 대중정당 구조에서 아무리 정치 개혁을 부르짖어 봐야 계파에 소속되지 않고 독자 생존할 수 있는 의원은 극소수다. 정치와 민생이 이렇게 동떨어져 가는 상황에 정치의 근본 틀을 바꾸는 시도가 이젠 시작돼야 한다. 더는 정당 내부 권력 싸움 때문에 허송세월하기보다는 입법 경쟁을 통해 민심과 소통하는 정치를 만들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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