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여자에 미쳤다”… ‘테스형’의 강렬했던 젊은 날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무엇이 소크라테스를 ‘위대한 철학자’로 만들었을까. 아먼드 단거는 그 기원을 사랑에서 찾는다. 특히, 지적 교류를 나눈 아스파시아와의 짧고 강렬한 만남에 집중해 젊은 소크라테스의 삶과 사랑을 재구성한다. 게티이미지뱅크

■ 사랑에 빠진 소크라테스

아먼드 단거 지음│장미성 옮김│글항아리

못생긴 외모의 비범한 사상가
철학 하기 이전 20대 삶 추적
“정력 왕성하고 에로스로 충만”
젊은남자와 ‘플라토닉러브’도

플라톤의 ‘향연’ 속 디오티마
철학적 전환 이끈 연인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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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고 못생겼으나, 비범하고 독창적인 사상가. 한 권의 저서도 남기지 않았으나 2500년 동안 연구자들을 매혹해 온 ‘최초의 철학자’ 소크라테스. 몇 년 전 한 가수가 불러일으킨 ‘테스형!’ 열풍이 여전히 출판시장에서 식지 않고 있는 가운데, 소크라테스의 젊은 날의 사랑을 들여다보는 전기가 출간됐다. 이게 가능할까. ‘재판’과 ‘사형’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 중년 이후 ‘위대한 철학자’가 아닌, 젊은 소크라테스를 논한다는 것이. 자료도 별로 없다. 게다가, 이 ‘미스터리’에 흥미를 가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소크라테스의 변명’과 ‘향연’ 등을 통해 대표적 ‘증인’이 된 플라톤과 크세노폰이 남긴 유산이, 그만큼 강력하고 이미 충분해 보인다. 한데, 또 다른 시나리오라….

본격적으로 ‘철학 하는’ 소크라테스는 30대 이후다. 옥스퍼드대 고전학 부교수인 저자는 탐정처럼 그 이전의 삶을 추적한다. 소크라테스를 보다 종합적으로 바라보려는 시도다. 이를 통해 저자는 ‘새로운 시나리오’의 중요성을 역설하는데, 철학자의 사상과 메시지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선, 그의 생애를 아는 일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제자 플라톤이 ‘진리의 순교자’인 스승을 알리는 데 인생을 걸었던 이유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리하여 책은 소크라테스의 사고의 기원에 대한 새로운 역사적 근거를 찾아 나서며, 궁극적으로 ‘무엇이 소크라테스를 소크라테스로 만들었는가’라는 질문에 기꺼이 답한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

소크라테스와 사랑. 감상적이고 불확실하며, 통념을 깨는 조합이다. 왜냐하면 그가 젊은 날 연애를 했다는 학술적인 증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은 플라톤과 크세노폰뿐 아니라 소크라테스와 동시대인인 아리스토파네스, 그리고 후대의 아리스토텔레스 등 폭넓은 증인들을 소환하고, 최신 연구자들의 업적까지 아우르며 그의 삶과 사랑을 치밀하게 재구성해낸다. 예컨대, 저자는 소크라테스가 스무 살이나 어린 알키비아데스와 연인 관계였으며, 이 젊고 아름다운 남성이 바로 ‘향연’이 말하는 ‘플라토닉 러브’ 개념에 가장 부합하는 애인이었을 거라고 추측한다. 또, 어린 소크라테스가 연상의 아르켈라오스와 사귀었다는 기록, “여자에 미쳤다”는 파이돈의 증언, “정력이 왕성하고 에로스로 충만하다”고 한 제자들의 묘사 등을 예로 들며, 그가 양쪽 성별 모두와 애정 관계를 맺었다고 주장한다. 소크라테스는 성적 감정과 연애에 낯설지 않았고, 이것이 그의 삶과 철학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것. 이 지점에서 책은 재미있는 상상, 흥미로운 읽을거리를 넘어, 독창적인 전기로서 자리매김한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니콜라 앙드레 몽시오의 ‘소크라테스와 아스파시아 간의 논쟁’. 위키미디어 커먼스

소크라테스의 연인 중, 가장 주목해야 하는 인물은 동년배이자 당대 가장 똑똑한 여성 중 한 명이었던 아스파시아다. 책은 ‘향연’에서 언급되었고, 일반적으로 가상의 인물로 여겨지던 ‘디오티마’가 바로, 아스파시아라고 추정한다. 소크라테스는 사랑에 관한 한, 그녀로부터 모든 걸 배웠다고 고백했고, 플라톤 역시 자신의 스승이 여성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는 걸 언급하는데, 플라톤의 대화편 30편을 통틀어 그것은 아스파시아가 유일하다. 한마디로 책은 그녀가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전환을 이끌어 냈고, 우리가 아는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낳은 ‘지적 산파’라고 말한다. 즉,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견해는 젊은 시절 중요한 경험에 의해 형성됐고, 그 절정에 아스파시아와의 만남이 있다는 것. 책은 그동안 역사가들에게 인정받지 못했던 아스파시아를 “고대에서 가장 지적 영향력이 있는 여성으로서 그 공로를 치하받아야 한다”는 것까지 나아간다. 저자는 책의 제목 ‘사랑에 빠진 소크라테스’도 바로 이 시기의 소크라테스를 염두에 두고 있음을 넌지시 밝히는데, 안타깝게도 두 사람의 관계는 아스파시아가 페리클레스와 결혼하며 짧고 강렬하게 끝난다.

‘사랑’을 내세웠고, 또한 핵심이지만, 책이 ‘그럴듯한’ 소크라테스의 연애사만 늘어놓는 것은 아니다. 책은 젊은 날의 소크라테스가 육체적으로 아주 매력 없는 인물은 아니었다는 ‘놀라운’ 가설을 제시하고, 니체가 강조한 그의 신분의 ‘천함’과 ‘추함’에 대한 편견을 뒤집어엎는다. 소크라테스 스스로 묘사한 그것, 즉 전사이자 레슬링 선수이고 무용가, 연설가, 그리고 무엇보다 열정적인 연인인 또 다른 모습을 열심히 증명해 보인다. 기록과 흔적의 태생적인 부족. 그 한계를 열정적인 연구와 최선을 다하는 설득으로 넘어서려는 책은, 그것만으로도 이미 신선한 지적 여행의 지도를 제공한다. 긴긴 오해와 단단한 수수께끼마저 풀어버리는, 상상의 힘이란 이런 것 아닐까. 272쪽, 1만6000원.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