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러시아 사이 ‘박쥐외교’로 실리…“우크라전쟁 승자는 에르도안”[Global Focus]

  • 문화일보
  • 입력 2023-02-02 08:57
  • 업데이트 2023-02-02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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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대통령 선거를 기존 일정보다 한 달 앞당긴 5월에 실시한다고 밝힌 가운데, 지난달 18일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한 여성이 에르도안 대통령의 대형 포스터가 붙은 벽 앞을 지나고 있다. EPA 연합뉴스



■ Global Focus - 이달말 전쟁 1년… 튀르키예, 최대 수혜국가 부상

친서방 나토 회원국 지위 활용
스웨덴·핀란드 가입에 어깃장
자국 분리세력 지원중단 얻어내
숙원인 미 F-16기 확보도 눈앞
러-우크라 ‘곡물합의’ 이끌기도

친러시아 행보로 경제이득
중·러의 ‘반미협의체’ 가입검토
러시아와 무역 확대하며 ‘밀착’
전쟁후 9개월간 수출액 3.7배로
전문가 “대러 통로는 튀르키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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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가까이 계속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에는 이미 승자가 있다. 전쟁으로 국토가 폐허가 된 우크라이나도 이미 2등 국가로 전락한 러시아도 아니다. 물론 미국이나 유럽도 아니다. 승자는 따로 있다. 바로 튀르키예(터키)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다. 튀르키예는 전쟁 초기부터 서방과 러시아 양쪽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꽃놀이패를 쥐고 흔들었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튀르키예는 이득을 쌓아갔고, 에르도안 대통령은 강화된 입지를 바탕으로 5월 대선을 통해 30년 집권의 꿈을 이룰 태세다.

◇스웨덴·핀란드의 나토 가입 신청 ‘별의 순간’ = 전쟁 초기인 지난해 5월 튀르키예에 ‘별의 순간’이 찾아왔다. 러시아의 공세에 위협을 느낀 중립국 스웨덴과 핀란드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추진하며 튀르키예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졌다. 튀르키예를 제외한 나머지 29개국은 양국의 나토 가입에 동의했지만 튀르키예는 버티며 어깃장을 놨다. 나토가 신규 회원을 받기 위해서는 기존 가입국 모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조항을 파고든 것이다.

튀르키예는 평소 스웨덴과 핀란드를 못마땅해했다. 스웨덴과 핀란드가 튀르키예 내에서 분리운동을 벌이는 쿠르드노동자당을 지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튀르키예는 나토 가입 동의를 양국의 버릇을 고칠 기회로 삼았다. “러시아에 맞선 서방의 단일대오를 깨는 행동”이라는 국제 사회 비난이 빗발쳤지만 우여곡절 끝에 결국 스웨덴과 핀란드가 항복했다. 튀르키예, 스웨덴, 핀란드는 지난해 6월 “쿠르드노동자당이 금지된 테러조직임을 확인하며, 이 당과 다른 테러조직, 그리고 연계조직의 활동을 막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양해각서에 합의했다. 또 스웨덴과 핀란드는 그간 쿠르드족의 인권을 탄압한다며 금지해온 튀르키예로의 군수물자 수출 금지 조처도 접었다. 나토 가입을 위해 쿠르드족과 관련한 요구 사항을 사실상 모두 수용한 셈이다. 튀르키예가 얻은 것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심지어 합의에 기꺼워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양해각서 합의가 나온 이튿날 튀르키예에 대한 F-16 전투기 판매를 지지한다고 밝힌 것이다. F-16 전투기와 그 부품 판매는 튀르키예가 군사 분야에서 미국에 요구하던 주요 사항 중 하나였다. 모두 “튀르키예도 이 정도면 만족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전히 스웨덴과 핀란드의 나토 가입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아직도 얻어낼 게 있다고 본 튀르키예는 이번에는 핀란드만 나토에 가입할 수 있다며 둘을 갈라치기하고 나섰다. 스웨덴이 핀란드에 비해 여전히 ‘뻣뻣하게’ 군다는 게 이유다. 실제 지난해 12월 스웨덴 법원은 반(反) 정부 언론인을 자국으로 송환해 달라는 튀르키예의 요구를 거부했다. 스웨덴은 튀르키예로 향하는 군수물자에 대한 금수조치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기도 하다. 이는 최근 튀르키예에 기갑 장비용 강철 수출을 허가하기로 한 핀란드의 결정과 대비된다.

◇러시아와도 가깝게 지내며 ‘박쥐 행보’ = 스웨덴과 핀란드의 나토 가입이 달갑지 않은 러시아는 튀르키예를 완전한 ‘내 편’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이는 줄타기를 원하는 튀르키예의 이익에도 맞아 떨어진다. 양측의 합치된 이익은 지난해 9월 튀르키예의 상하이협력기구(SCO) 가입 추진 선언으로 화룡점정을 찍었다. 러시아와 중국이 주도하는 SCO는 중동의 최대 반미국가 이란까지 가입한 사실상 ‘반미협의체’다. 튀르키예가 SCO에 정식 가입하면 나토 회원국으로서는 첫 사례가 된다.

이에 그치지 않고 튀르키예는 러시아와 무역 관계도 적극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실제 트레이딩 이코노믹스에 따르면 전쟁 직후인 지난해 3월부터 11월까지 튀르키예의 대러시아 수출액은 2억5200만 달러에서 9억3100만 달러로 늘었다. 자그마치 270% 상승이다. 전쟁이 한창이던 지난해 5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 “30년 세계화의 시대가 끝났다”는 선언이 나온 것과 비교하면 딴 세상 얘기다. 모든 나라가 러시아로부터 등을 돌릴 때 튀르키예가 러시아 편으로 나서 경제적 이익을 확실히 챙겼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서방은 튀르키예를 비난하거나 제재하지 못한다. 러시아와 서방 간에 줄타기를 하는 튀르키예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주요 국면마다 구원투수로 나섰기 때문이다. 특히 튀르키예는 지난해 7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흑해 곡물 수출 합의’를 도출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이 합의는 세계의 ‘빵 공장’ 우크라이나의 밀 수출과 우크라이나로부터 밀을 공급받던 국가들의 숨통을 틔우는 데 결정적이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자포리자 원전을 장악하며 ‘핵 참사’ 우려가 커지자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자포리자 원전 사찰 임무를 도운 것도 튀르키예다.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의 마이클 보시우르키우 선임연구원은 “우크라이나는 (튀르키예를 통해서라도) 러시아와의 대화 통로를 열어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에르도안 대통령이 유엔 사무총장도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임정환 기자 yom724@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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