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행보조기에 1000만원 싣고와…“알아서 이웃에 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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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 80대 할머니 익명기부

5만원권 1다발·1만원권 5다발
은행 입금 않고 직접 와서 건네

직원 “이름이라도 알려달라”에
“쓸 돈 있으니 알 필요 없다” 대답


진주=박영수 기자 buntle@munhwa.com

두 발로 걷기도 힘든 80대 할머니가 노인 보행보조기인 ‘실버카’에 1000만 원을 싣고 와 복지재단에 익명으로 기부해 화제다.

2일 경남 진주시복지재단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재단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나이 든 목소리의 할머니는 “재단에서 좋은 일을 하는 데 돕고 싶다. 어떻게 기부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복지재단 직원은 “직접 방문하거나 통장으로 입금하셔도 된다”며 복지재단 계좌번호를 안내하고 전화를 끊었다. 몇 시간 뒤 진주시 상대동행정복지센터 4층에 있는 복지재단으로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1층 행정센터 직원이 “어떤 할머니가 기부를 하고 싶은데 4층까지 다리가 아파 올라가지 못한다고 한다”며 내려와 달라고 했다.

복지재단 직원들이 1층으로 내려가자 시장에서 파는 ‘몸뻬’ 바지에 누비점퍼를 입은 할머니가 실버카에 의지한 채 주민센터에 앉아 있었다. 마스크를 쓴 할머니는 “은행에 입금하려고 갔는데 입금자 이름을 써야 한다고 하기에 직접 찾아오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곤 실버카에서 5만 원권 1다발과 1만 원권 5다발 등 1000만 원이 든 큰 봉투를 복지재단 직원들에게 내밀며 “‘느그’가 알아서 도움이 필요한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라”고 했다.

복지재단 직원들은 할머니에게 “이렇게 기부하면 할머니께서 쓸 돈 없어서 어떻게 합니까. 이름이라도 가르쳐 주세요”라고 하자 할머니는 특유의 경상도 사투리로 “내 쓸 돈은 있다. (이름) 알 필요 없다”고 말하고 손사래를 치며 보행기를 밀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직원들이 할머니를 따라가며 나이라도 가르쳐 달라고 하자 “80이 넘었다. 사진 찍지 마라”고 말하고 사라졌다.

진주시복지재단 관계자는 “할머니께서 은행에서 계좌로 복지재단에 기부하려 했으나 실명을 적어야 해 직접 돈을 찾아 실버카에 의지해 찾아오신 것 같다”며 “기부하신 돈이 저소득층과 복지사각지대, 복지시설, 무료급식소 등 어려운 이웃을 위해 값지게 쓰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