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공부해서 대학 가야죠”… 75세 예비고딩의 ‘소녀 미소’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우리 졸업했어요” 16일 경남 거창군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2023년 성인 문해 학력 인정 졸업식’에서 초·중등과정을 이수한 어르신들이 학사모를 던지며 졸업을 축하하고 있다. 윤성호 기자

■ ‘거창 만학도’ 특별한 졸업식

성인 문해 학력인증 이수 17명
아림고교 진학 앞두고 기대감
“사회복지사 희망”“강사가 꿈”
배움의 열정 만큼은 이팔청춘

16일 경남 거창군청 대회의실에 한껏 들뜬 표정의 할머니·할아버지들이 졸업 가운을 입고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자, 학사모 세리머니와 함께 하이톤의 환호성이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한편에서는 손자에게 꽃다발을 받으며 눈물을 훔치는 어르신도 있었다.

영락없는 10대 졸업생의 모습을 한 이들 17명의 할머니, 할아버지의 정체는 다름 아닌 ‘예비 중1’과 ‘예비 고1’. 이들 중 대부분은 지난 3년간의 ‘성인 문해 학력인정 수업’을 마치고 곧 일반고인 거창 아림고에 늦깎이 입학을 앞두고 있는 만학도들이다. 이날 자리는 거창군청이 어르신들을 위해 마련한 작은 졸업식이었다. 아림고 입학을 앞둔 정철임(75) 할머니는 “열심히 공부해 대학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문해 교육 중학과정 담임을 맡았던 양기인 교사는 “고등학교에서는 이전에 누려야 했지만 누리지 못했던, 고등학생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즐기셨으면 좋겠다”며 축하 인사를 전했다

국가평생교육진흥원(원장 강대중)이 평생교육법 제40조에 의거해 운영하는 성인 문해 학력인정 제도는 성인 학습자가 프로그램 이수를 통해 초등학교와 중학교 학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제도다. 거창군에서는 지난 2021년 해당 프로그램으로 13명이 중학 학력을 취득해 아림고에 진학했다. 이날 중학 과정을 졸업한 11명 중 10명도 다음 달 아림고에 입학할 예정이다. 아림고는 지난해부터 문해 교육을 통해 중학 과정을 수료한 만학도들을 신입생으로 받고 있다.

학교는 이들을 위해 별도 반을 구성하고 학교 적응 프로그램 운영, 동아리 활동을 지원하는 등 다양한 배려를 통해 수업을 진행한다. 학교 선생님들은 만학도들을 위해 글자 크기가 큰 학습지를 따로 준비하고, 일반 학생들보다 간단한 수업 교안을 만드는 등 맞춤 교육에 힘쓰고 있다. 아림고 전체 학생 수는 198명이며 할머니·할아버지 학생은 이날 졸업생을 포함해 23명(11.6%)으로 열 명 중 한 명 이상이 어르신이다.

어르신 만학도들은 아림고에 ‘긍정적 변화’를 이끌고 있다. 천두희 교장은 “손자뻘 학생들이 만학도들의 공부에 대한 열정, 긍정적 에너지에 영향을 받고 있다. 학교가 훨씬 생기가 넘친다”고 말했다. 만학도 반의 부담임을 맡았던 구경주(26) 교사는 “처음에는 할머니뻘을 가르친다고 생각하니 걱정이 컸지만 오히려 내가 배우게 되는 점도 많았다”고 말했다. 구 교사는 “축제 때 만학도들이 부친 전은 학생들에게 엄청난 인기였고, 운동회 때는 학생들과 함께 윷놀이를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며 지난 1년을 회상했다.

아림고에 먼저 진학한 선배들도 이날 후배들을 축하하기 위해 교복을 입고 졸업식을 찾았다. 재학 만학도 중 최고령자인 강금순(88) 학생은 “집에 있으면 혼자 외로운데, 학교에서는 선생님, 학생들과 배우고 놀 수 있어 좋다”며 웃었다.

조율 기자 joyul@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