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 선택권 뺏는 ‘탈시설’… 최중증 장애인까지 ‘벼랑끝’ 내몰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전장연, 지하철역서 입장 발표 20일 서울 종로구 지하철 4호선 혜화역 승강장에서 박경석(앞줄 오른쪽 세 번째)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가 서울경찰청의 출석요구에 대한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 서울시, 퇴소 장애인 전수조사

2017년 수립된 市 추진계획엔
탈시설 대상 ‘장애 정도 무관’
“쫓겨난뒤 패혈증 숨져”주장도

전장연,사실상 관련사업 주도
일자리 보조금예산 85% 독식

전장연 “시설수용은 폐기돼야”

서울시가 거주시설에 살다가 지역사회로 나온 장애인에 대한 첫 전수조사에 나선 건 10년 가까이 추진한 탈시설 정책을 되짚어보고 ‘탈시설’과 ‘거주시설’을 양립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을 재설정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등 탈시설 옹호 단체를 중심으로 정책을 만들며 ‘판’을 깔아준 서울시 역시 그 책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21일 서울시가 지난 2017년 수립한 ‘제2차(2018∼2022년) 장애인 거주시설 탈시설화 추진계획’을 보면 정책 대상이 ‘전체(장애 정도 및 종류 무관)’로 적혀 있다. 2014년 작성된 제1차(2014∼2018년) 추진계획에 지체, 시각, 청각, 지적(3급) 장애인으로 한정된 것에 비해 크게 확대됐다. 인지 능력이 부족해 의사소통이 어렵거나 거동할 수 없는 최중증 장애인까지 탈시설 대상에 포함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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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 가능성이 크지 않은 최중증 장애인이 24시간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거주시설에서 지역사회로 나오며 부작용이 속출했다. 향유의집에서 물리치료사로 일했던 내부 고발자 박대성 씨는 “2021년 7월 향유의집에서 살던 장애인이 탈시설 한 후 서울시 지원주택에 입주했는데 욕창 등으로 건강이 악화돼 패혈증으로 넉 달 만에 숨졌다”고 밝혔다. 패혈증은 욕창 환자에게 많이 나타난다. 박 씨는 “사인과 탈시설 간 직접적인 관련성을 의학적으로 풀어낼 순 없지만, 해당 장애인이 장시간 자세를 바꾸지 못해 욕창이 발생한 건 탈시설 장애인이 전문가로부터 제대로 된 관리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4월 기준 서울시로부터 주택을 지원받은 탈시설 장애인만 추려보면 263명 가운데 5명(사망률 1.9%)이 사망했다. 이는 거주시설에 사는 장애인의 4년(2018∼2021년) 평균 사망률(1.4%)보다 0.5%포인트 높다. 더 나아가 시는 중증도가 높을수록 각종 혜택을 우선 지원했다. 탈시설 1년 차 장애인 한 명에게 지원되는 예산은 연 1억4131만8000원으로 거주시설에 사는 장애인(6189만4000원)의 2.3배다.

전장연은 2019년 시가 구성한 ‘탈시설 정책 민관협의체’에 속해 탈시설 정책을 사실상 주도했다. ‘서울시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 사업’의 경우 전장연이 직접 제안해 2020년 만들어졌다. 지난해 기준 해당 사업에 참여한 보조사업자는 15개였는데 이 중 노들장애인야학 등 전장연 산하기관이 13개였다. 이들 13개 기관이 타낸 예산은 총 45억5700만 원 가운데 39억1000만 원(85.8%)이었다.

박경석 전장연 대표는 “장애인 거주시설 수용 정책은 폐기돼야 할 정책이라고 유엔에서 권고하고 있다”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은 국내법과 동일하고 (우리는) 그 방향으로 가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정혜 기자 leaf@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