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용’까지 소환한 ‘현수막 공해’ … 550m 거리에 22개 난립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거리 도배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내건 상대 정당 비방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어지럽게 나부끼고 있다. 윤성호 기자

■ 정치혐오 키우는‘현수막 전쟁’

일부의원 “낯뜨거워 못걸겠다”
중앙당 게시 지시 거부하기도

구청마다 “철거해달라” 민원 쇄도
국가보조금 사용,세금 낭비 지적도

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정문에서 인근의 여의도순복음교회까지 550m 거리에는 총 22개의 정당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이 중 같은 내용의 중복 현수막도 8개나 됐다. 실제 여의도순복음교회 앞 사거리에는 우리공화당이 제작한 같은 내용의 현수막 3개가 폭 15m 남짓의 횡단보도를 마주 보고 걸려 있었다. 현수막에는 정책 홍보 내용은 없고, 상대방을 공격하는 문구만 난무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앞 횡단보도에 ‘정순신 판 더글로리-연진아 네 아빠도 검사니?’라고 했고, 이에 국민의힘은 ‘이재명 판 더글로리-죄지었으면 벌 받아야지’라고 응수했다.

지난해 12월 옥외광고물법이 개정되며 ‘공해 수준’의 문구로 가득한 정당 현수막이 난립하고 있다. 도시 미관을 해치고 욕 수준의 문구가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면서 각 구청에는 “당장 철거해달라”는 민원이 쇄도하고 있다. 일반 시민과 달리 정당은 별도 신고 없이 마구잡이로 현수막을 걸고 있고, 현수막 제작에도 세금이 사용되고 있어 현수막 난립을 막을 규정 개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개정된 옥외광고물법에 따르면, 정당이 통상적인 정당 활동으로 보장되는 정당의 정책이나 정치적 현안에 대해 현수막을 게시할 경우 지방자치단체에 허가 및 신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당들은 도심, 주택가 등을 가리지 않고 마구잡이로 현수막을 게시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청에는 하루 평균 9.3건, 영등포구청에는 하루 평균 4~5건의 정당 현수막 관련 민원이 들어오고 있다. 한 구청 관계자는 “도시 미관 훼손, 과한 비방 문구로 인한 불쾌감, 게시 기간을 넘은 불법 게시 등의 내용으로 민원이 매일 들어온다”고 밝혔다.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정당과 달리, 일반인들이 현수막을 게시하고자 할 경우 정해진 날짜에 지자체에 신청 및 허가를 받아 지정 게시대에만 설치할 수 있다. 이마저도 선착순이나 추첨 등을 통해 이뤄져 원하는 시기에 현수막을 걸지 못하는 일도 발생한다. 10만 원가량의 게시 비용을 받는 지자체도 있다. 서초·종로구 등 일반인의 현수막 게시를 허용하지 않고 있는 지자체에서는 일반인이 현수막을 합법으로 게시할 방법이 아예 없다. 정당 현수막 제작에 국가보조금이나 정치후원금이 사용되는 만큼 정당 현수막 난립이 ‘세금 낭비’라는 지적도 나온다. 현수막 제작 업체들에 따르면, 현수막 1개의 제작 비용은 평균 10만 원 정도다. 각 당이 228개의 지자체마다 10개의 현수막만 걸어도 2억2800만 원의 혈세를 쓰는 셈이 된다. 한 문구의 현수막이 여러 곳에 게시되고 있는 만큼, 각 정당이 현수막 제작에 쓰는 예산 규모는 훨씬 클 것으로 추정된다.

조율·전수한·유민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