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 뛰어넘은 음악가들… ‘창조적 분투’의 하모니[북리뷰]

■ 쇼팽의 피아노
폴 킬데아 지음│배인혜 옮김│만복당

목수가 만든 피아노에서 탄생한
혁신적 작품 ‘전주곡집’ 등 통해
쇼팽의 도전적 삶·시대상 그려

■쇼스타코비치
엘리자베스 윌슨 지음│장호연 옮김│돌베개

폭압적 체제서도 자기음악 지킨
위대한 작곡가의 고뇌·절망 담아
편지·일지 등 자료 세밀한 분석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1849년 촬영된 쇼팽의 사진. 만복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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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의 시대는 곧 창조성의 시대다. 일상 영역이 더 많이 자동화할수록, 창조적 힘의 가치는 더욱더 높아진다. 그런데 인간은 언제 창조적일 수 있을까. 유한성, 즉 주어진 한계를 의식하고, 이를 뛰어넘으려는 분투 속에서다. 위대한 작품을 낳은 예술가들의 삶은 이를 잘 보여준다.

호주 음악학자 폴 킬데아의 ‘쇼팽의 피아노’는 작은 피아노 한 대를 통해 쇼팽의 삶과 음악, 피아노가 음악에 끼친 영향, 낭만주의 음악의 역사, 나치 약탈 행위 등을 섬세히 그려낸다. 1838년 11월, 쇼팽은 연인 조르주 상드와 함께 지중해 마요르카섬으로 여행을 떠났다. 프랑스 출판업자 카미유 플레옐에게 ‘전주곡집’을 의뢰받은 상태였다.

그러나 섬에 도착한 쇼팽은 장벽에 부닥친다. 가져간 플레옐 피아노가 관세 탓에 반입이 어려워진 데다 섬에 피아노가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피아노는 제작자별로 크기와 구조가 달랐고, 그에 따라 연주 방식이나 작곡 방법도 달라졌다. 쇼팽의 음악은 플레옐 피아노에 맞춰져 있었다.

도구를 잃어버린 작곡가는 후안 바우사란 동네 목수에게 피아노 제작을 의뢰한다. 바우사 피아노는 크기가 작고, 기술력이 모자랐다. 쇼팽은 거칠고 우울한 소리를 내는 이 조악한 피아노와 함께 ‘전주곡집’ 작곡을 이어갔다. 도구는 예술가의 상상을 제약하고, 그로 인한 분투는 새로운 표현을 창출한다.

고립과 건강 악화, 상드와의 불안한 관계, 피아노로 인한 제약 등으로 괴로워하면서 쇼팽은 ‘가장 통렬한 노동’을 이어가 ‘즉흥곡집’을 완성했다. 쇼팽은 바우사 피아노의 음을 플레옐에 맞추어 상상하면서, 또 이 피아노 특유의 소리에 적응하면서 피아노에 잠재한 가능성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뽑아냈다. 드뷔시는 말했다. “쇼팽은 피아노라는 악기의 모든 것을 발견한 가장 위대한 작곡가다.”

‘전주곡집’은 음악사에 남을 혁신적 작품으로 리스트가 “쇼팽 자신이 창조한 장르”라고 불렀던 걸작이다. 처음에 잘 이해받지 못한 이 곡은, 쇼팽 사후 피아노의 눈부신 발달, 음악 수요의 폭발과 함께 인기를 끈다. 안톤 루빈시테인, 카를 타우시크, 아르투어 프리드하임, 라울 코찰스키 등은 피아노 표준이된 스타인웨이에 맞춰 “은방울 아래 요정들이 내뱉는 가냘픈 한숨 소리” 같은 이 곡을 연주한다.

저자에 따르면, ‘전주곡집’의 연주사는 낭만주의 음악의 역사이자, 악기와 음악의 공진화를 보여주는 음악사적 사건이다. 작품 탄생에 도움을 준 바우사 피아노는 쇼팽이 마요르카섬을 떠날 때 버려져, 70년 후 하프시코드 연주자 완다 란도프스카가 재발견할 때까지 외롭게 그 자리를 지켰다. 란도프스카가 사들여 보관하던 이 피아노는 후에 나치에 약탈당했고, 전후 잠깐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져 아직 행방을 알 수 없다. 488쪽, 2만 원.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1940년 레닌그라드 초연 당시 피아노 5중주를 연주하고 있는 쇼스타코비치. 돌베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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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첼리스트 엘리자베스 윌슨의 ‘쇼스타코비치’는 편지, 작업 일지, 지인의 회고록 등 일차 자료를 집약해 쇼스타코비치의 세밀한 초상을 그려낸다. 책에 따르면 쇼스타코비치는 어린 나이에 재능을 뽐낸 천재였고, 가난한 예술가를 돕고도 이를 숨긴 수줍은 사람이었으며, 검열이 일상이었던 시대에 꿋꿋이 자기 음악을 지켜간 고뇌의 인간이었다. 정치적 억압은 그의 음악을 ‘절뚝거리는 아이’처럼 상처입혔으나, 쇼스타코비치는 작품에 이중의 의미를 담는 식으로 평생 창조성을 잃지 않았다.

1960년 흐루쇼프 강요로 억지로 공산당에 입당했던 직후에 작곡한 ‘현악 4중주’는 그 예다. 겉으로는 파시즘 희생자에게 바쳐진 이 작품은 내적으로는 죽음과 절망에 대한 초월적 명상, 고립과 박해를 견디면서 살아온 작곡가 인생 자서전이었다. 쇼스타코비치 음악은 시대 제약을 받아들이면서, 이를 초월하려 했던 예술적 투쟁의 산물이고, 억압 속에서 끝내 자기 자신을 지키려 했던 인내의 증거였다. 854쪽, 4만9500원.

장은수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