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잘 살다가 죽으면 좋을 집 찾고 있죠”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2023 이상문학상을 받은 최진영 작가를 최근 제주시 한림읍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지난해 제주로 거취를 옮겼다.

■ 2023년 이상문학상 수상한 ‘홈 스위트 홈’ 최진영 작가

말기암 40대 여성이 집 가꾸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풍경 그려

작년 제주도로 이사한 최 작가
‘공간에 정 주지 말자’며 생활

2015년작 ‘구의증명’ 역주행
베스트셀러 20위에 오르기도

제주=글·사진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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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자주 다녀서 그런지 ‘오래 살 곳’보다 ‘언젠가 떠날 곳’이란 개념이 컸어요. 하루하루 잘 살다가 삶을 마무리하고 싶은 집, 살다가 죽으면 좋을 집, 그런 집을 갖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죠.”

집이라는 공간을 시간과 엮어 ‘기억’에 대해 묻는 ‘홈 스위트 홈’. 이 작품으로 2023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최진영(42) 작가는 자신에게 ‘집’이 갖는 의미를 이렇게 풀었다.

소설에는 말기 암 환자인 40대 여성이 집을 직접 선택하고, 가꾸고, 평범한 일상을 살아내는 풍경이 그려진다. 그에게 시간은 ‘발산’하는 것. 과거, 현재, 미래로 나뉘는 게 아니라 하나의 무언가가 폭발해 파편적으로 공존하는 것이다. 그리고, 집은 그 실체이자 증거. 최 작가가 말한 ‘그런 집’ 말이다. 혹시, 그것을 발견한 걸까. 지난해 제주로 거취를 옮겼다는 최 작가를 최근 제주 한림읍의 작은 카페에서 만났다. 최 작가의 남편이 운영하는 ‘무한의 서’다. 가게까지 냈으니 당분간은 머물 것 같지만, 사실은 여전히 떠도는 중이라고 했다. “삶과 더불어 죽음까지 함께하고 싶은 집”은 아직 찾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공간에 정을 주지 말자’며 살고 있다지만, 제주 생활 그 자체는 만족스럽다. 하늘이 많이 보이고, 창밖으로 날씨의 흐름을 즉각 알 수 있다. 또, 바다를 보며 산책할 수 있어서 좋다. 그는 “산책과 풍경, 날씨는 내게 아주 중요하다”면서 “‘글을 쓰지 않을 때의 최진영’의 컨디션이 좋아야 ‘글 쓸 때의 최진영’도 유지가 되기 때문에 제주의 풍경은 집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제주에 푹 빠져 지내던 최 작가는 지난 2월 오랜만에 서울을 찾았다. 제46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하기 위해서다. 그는 수상과 관련해서는 “부채감을 느낀다”고, 또 “더는 거론되지 않기를 바라는 작가들도 있을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40년 넘는 역사의 이상문학상은 국내 대표 권위의 문학상이다. 그러나 2020년 저작권 양도 등 계약 사항이 문제가 됐고, 몇몇 작가가 수상을 거부하며 논란이 됐다. “깨끗하고 단정한 계약서를 받았다”는 최 작가의 수상 당시 소감에서 알 수 있듯, 이후 상은 대대적으로 정비됐고 차츰 과거의 영광을 찾아가는 중이다. “내게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의심하다 보면 죄책감이 스며들고, 행운이 나에게 온 이유를 곰곰이 찾아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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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작가가 이상문학상을 받은 후 가장 흥미로운 현상은 2015년에 쓴 ‘구의 증명’이 종합 베스트셀러 20위권에 오를 정도로 판매량이 급증했다는 것이다. 죽은 연인의 몸을 먹으면서 죽음을 애도한다는 기괴한 설정의 로맨스 소설로, 사실은 2∼3년 전부터 10∼20대들을 중심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쭉쭉 판매량이 오른 ‘역주행’ 작품이다. 출판계도 그 인기 비밀을 알 길이 없는데, 다만 가난과 상처로 얼룩지고 늘 쫓기는 20대 남녀 주인공에 지금의 청춘들이 공감한 것 아니겠냐는 분석 정도다. 최 작가는 “어리둥절하다”면서 “그 비결을 알면 베스트셀러를 또 썼을 것이다”라며 웃었다. “앞으로도 쓰고 싶은 글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저는 그 이유를 모르고 싶습니다. 그저 이 책을 통해 젊은 독자들이 한국 문학에 진입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히 기쁘고 보람찹니다.”

최 작가는 애인을 씹어먹는 상상을 하다가 ‘구의 증명’을 쓰게 됐다고 했다. 기발하고 파격적인 상상을 많이 하냐고 물으니, 요즘은 그보다 ‘죽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고 했다. 오늘도 내가 살아 있네, 지금도 살아 있구나, 내일도 살아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현재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죽으면서 어떤 생각을 하면 잘 떠날 수 있을까. 후회 없이 떠나고 싶은데 그러려면 어떻게 살면 될까. 그러다가 ‘홈 스위트 홈’을 쓰게 된 것 같아요.”

‘현재’에 집중하는 그가 오래전부터,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좋아하는 건 ‘사랑하는 일’과 ‘쓰는 것’이다. 그는 언제나 “사랑을 전하기 위해 쓴다”고 말해 왔다. 작가는 그 두 가지가, 그리고 그것만이 ‘더 나은 사람이 되자’고 노력하는 마음을 품게 해준다고 믿는다. “몇 번을 물어도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어요. 가장 소중하고 좋아하고, 그래서 잘하고 싶은 것. 사랑과 소설뿐입니다.”

최 작가는 요즘 장편 소설을 준비 중이다. 죽어서도 사랑을 말하고(‘구의 증명’), 죽음을 앞두고 미래를 기억하더니(‘홈 스위트 홈’), 이번에는 천년을 사는 나무가 사람에게 수명을 나눠주는 이야기다. 사람의 것과 다른 나무의 윤리와 기준, 삶과 죽음은 어떤 풍경일까. 제주의 사계절을 온몸과 마음으로 살아낼 최 작가의 다음 작품이 몹시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