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여당 대표의 숙명과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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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기 정치부 차장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를 보면 11년 전 국민의힘 계열 정당 대표를 지낸 황우여 전 대표가 오버랩 된다. 둘 다 서울대 법대를 나와 판사 생활을 거쳐 정치에 입문했다. 특정 계파 색채가 짙지 않고 원만하고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정치인이다. 원내대표를 무난하게 마친 뒤 당 대표에 도전했다. 당 주류의 지원을 등에 업고 비교적 낙승했다. 그리고 반드시 승리해야 할 선거를 앞두고 있다. 황 전 대표는 이명박 정부에 이어 정권 재창출이 걸린 대통령선거를 치렀고, 김 대표는 내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다. 총선에 지면 윤석열 정부는 식물 정부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황 전 대표는 대선에 승리해 박근혜 정부를 만드는 데 일조했고, 2년 임기를 채우고 물러났다. 취임하자마자 ‘박근혜 대세론’에 맞서 비박(비박근혜)계 후보들이 집단행동을 하고 불복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지만 어르고 달래서 무사히 경선을 치렀고, 박근혜 후보를 만들었다. 대선이 끝난 뒤 정권의 핵심이 된 강성 친박(친박근혜)계 인사들이 황 전 대표를 ‘물렁하다’ ‘답답하다’고 비판하는가 하면, 대놓고 무시하기도 했지만 황 전 대표는 버텼다. 결과적으로 박근혜 정부 초반 안정적인 당·청 관계를 유지하고 당내 분란과 갈등을 조정했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 ‘박근혜’만 보이고 당 대표 ‘황우여’는 가려지는 상황도 개의치 않았다. ‘정권 초 여권은 대통령이 끌고 가는 것. 마음껏 일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여당의 역할’이라는 게 황 전 대표의 지론이었다.

한 비박계 핵심 의원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고 청와대발(發)로 (이명박 정부에서) 정권 교체가 됐다는 말을 많이 한다”며 “여전히 당내엔 친이(친이명박)계 혹 비박계가 많으니 당·청 간 불협화음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황우여가 그래도 내분을 막고 조율을 잘했다”고 말했다. 4대강 사업과 관련, 친박계의 비판에 친이계가 울컥하던 2013년 중반 미처 기사에 담지 못한 발언이다. 비슷한 때 한 친박계 중진 의원은 “그냥 대선 무사히 치르라고 대표 시켜 놨더니, 황우여한테만 가면 되는 일이 없다”고 역정을 냈다. 친박계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에 당선됐지만, 마냥 친박계의 뜻대로만 움직이지는 않았다. 수차례 친박계발 ‘황우여 조기퇴진론’이 나온 배경이다. 황 전 대표는 최근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중도, 개혁, 소장파를 끌어안으려 노력했다”고 밝혔다.

야당과도 스스럼없이 만났다. 2013년 6월엔 김한길 당시 민주당 대표와 콩나물국밥집에서 아침을 함께 먹었다. 여야 대표가 둘만 따로 만난 건 2004년 정동영(열린우리당)-박근혜(한나라당) 이후 9년 만이었다. 야당과 회동에서 뚜렷한 성과를 거두진 못했고, 야당의 대선 불복성 발언에 울컥하기도 했지만, 대표 간 꾸준한 만남은 박근혜 정부 초반 높은 국정 지지도의 밑거름이 됐다.

대통령 한 발 뒤에서, 친박과 투덕투덕하며, 권력 핵심의 눈칫밥을 먹어가며, 야당에 뒤통수 맞아가며, 황우여는 그렇게 2년을 보냈다. 묵묵히 대통령을 돕고, 권력 핵심에 끌려가지 않으며 야당과 대화의 끈을 놓지 않았다. 1997년 한나라당 출범 후 2년 임기를 무사히 마친 대표는 박근혜·강재섭·황우여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