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친구 아들의 결혼식을 보며

  • 문화일보
  • 입력 2023-03-24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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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우 영화배우

내 결혼식 주례 목사 떠올려
“이 혼인 안되는 이유 있나요”

“어?” 순간 나는 아득해졌고
“무효” 누군가 외칠 것 같았다

“아! 내가 영화 많이 본 거야”
고개 저으며 현실로 돌아온다


며칠 전 친구의 아들 결혼식이 있었다. 친구는 사회적으로 활동이 많아 그 커다란 식장이 꽉 찼고, 돌아간 하객도 제법 있었다고 한다. 사회자가 “신랑 입장”을 외치자 부친을 닮아 평소 붙임성이 좋은 신랑은 두루두루 하객들을 살피며 아는 얼굴에게는 인사도 챙기면서 단상 쪽으로 걸어간다. 입장을 마친 신랑은 주례 목사님에게 깍듯이 인사를 하고 돌아서며 만면에 여유로운 미소까지 띤 얼굴로 하객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하는데, 영화의 한 장면처럼 멋지다. 먼 발치여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떨려서 바짓가랑이가 흔들리는 것 같지는 않았다. 어디서 저런 여유가 나오는 걸까. 요즘 젊은 친구들 참 세련된 것 같다.

그 모습을 보며 오래전 내 결혼식이 떠올랐다, 아주 생생하게. 내가 결혼을 준비할 때는 나는 이미 여러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서 제법 많은 ‘신랑 입장’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상당히 여유 있게, 멋지게 등장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결혼식 날 나의 발걸음은 두꺼운 스펀지 위를 걷는 듯 꽤 흔들거렸다. 그뿐만 아니라, 긴장감에 몸이 조금씩 경직되어 가는 느낌이 들기까지 했다. 연기(演技)와 현실은 정말 달랐다.

내가 신랑 입장을 마치고 돌아서서 음악에 맞춰 입장하는 그날의 주인공인 신부를 기다리고 있는데, 자꾸 다리에 힘이 빠지며 떨려 오는 바람에 하객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다리에 힘을 주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던지…. 식이 끝나고 아무도 얘기하지 않은 걸 보면 내 바짓가랑이가 눈에 띄게 후들거리지는 않았나 보다. 그날 참 이상했다. 결혼식 날 떨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도대체 왜 긴장을 했을까. 나의 결혼식은 3월 20일이었는데, 예식을 한 식장은 교회의 지하 예배당이었고 명색이 때가 봄이니 난방을 하지 않은 탓과 필경 얇은 예복을 입었으니 아마 추워서 떨렸던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니 마음은 편하다.

친구 아들인 신랑에 이어 친구의 며느리가 될 신부가 친정아버지의 손을 잡고 입장을 하고 있다. 내가 결혼하기 전에는 친구 결혼식에 가면 신랑은 뒷전이고 신부도 뒷전이고 신부의 친구들에게만 그리도 관심이 가더니, 이제 내 시선은 신랑과 신부에게서 떠난 지 꽤 되었다. 특히, 우리 딸이 결혼 적령기(?)에 접어들면서부터는 그날의 주인공보다 신부 아버지의 몸가짐에 온 신경이 집중되어 있다. 신부인 딸의 손을 잡고 걷는 걸음의 속도는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입장할 때 표정과 시선은 어떤지. 그러면서 신부의 아버지가 울먹이는지, 눈에 눈물이 고였는지 유심히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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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나에게도 때가 되어서 딸의 가녀린 손을 잡고 입장해 그 손을 신랑에게 건네는 순간, 그간 키우면서 있었던 수많은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가면서 딸과 예행연습을 하며 울지 말자고 그렇게 다짐, 다짐, 다짐했건만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주책스럽게 오열하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눈가가 촉촉해지는 정도는 애교로 봐 줄 수 있겠지 하는 여지를 나 스스로에게 남기며….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딸아이의 결혼식 날짜가 정해진다면 신랑 신부 두 사람이 손을 잡고 동시에 입장하는 것을 권해야지 하는 계략(?)을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 은밀히 숨겨 놓고 있기도 하다.

며칠 전의 친구 아들 결혼식 날 목사님의 주례는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특별한 주례의 말씀이 없었고 순서지에 인쇄되어 있는 성경 구절을 읽는 것으로 대신했는데 참 신선했다. 역시 그분은 명불허전이었다.

언젠가 친구들 모인 자리에서 주례사 얘기가 나왔다. 내가 주례사와 학창시절 월요일 아침이면 들었던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은 정말 기억나지 않으니 짧은 게 좋다고 얘기를 보탰다. 그랬더니 “학생들에게 할 얘기를 얼마나 깊이 생각하고 준비하는 줄 아느냐”면서 얼굴을 붉히며 짜증을 ‘확’ 내는 친구가 있었다. 아! 실수였다. 그 친구는 퇴직한 교장 선생님이었다. 주례사만 갖고 얘기할 걸, 좀 더 재미있자고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을 덧붙인 게 화근이었다. 지나친 건 모자람만 못하다는 ‘과유불급’이라는 사자성어가 친구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질 때까지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친구 아들의 결혼식장에 흐르는 축가를 들으면서, 갑자기 오래전 나의 결혼식 날 내 등골에 식은땀을 흘리게 했던 주례 목사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목사님은 미국에서 오래 생활하신 분이셔서 그곳 결혼식에서는 그렇게 하나 보다 했다. 하지만 여기는 한국이고 위험을 감수하면서 그런 질문을 하객에게 던질 필요는 없었다는 나의 생각은 지금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결혼식 날. 신랑인 나와 그날의 주인공인 신부가 입장을 마치고 목사님 앞으로 돌아섰고 결혼식이 시작되려는데, 목사님은 우리 어깨너머로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을 던지셨다. “이 결혼이 이뤄져서는 안 되는 이유를 갖고 계신 분은 지금 말씀해 주세요.” “어?”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하객들도 나처럼 당황해서 뒤를 돌아보려는지 식장이 약간 술렁였다. “이 결혼, 무효예요!” 영화에서처럼 곧 누군가가 상기된 얼굴로 문을 벌컥 열고 뛰어들 것만 같았다. 주례 목사님께서 하객에게 묻고는 잠시 대답을 기다리던 그 몇 초의 시간. 궁금해서 뒤돌아보고 싶은 충동을 참느라 얼마나 힘들었던지! ‘아! 내가 영화를 많이 본 거야.’ 고개를 가로저으며 현실로 돌아온다.

30여 년 전 내가 함을 져 주었고 이어 나의 함을 져 주었던 오랜 친구의 아들인 오늘의 주인공 신랑과 신부가 예식을 잘 마치고 하객들의 축복의 박수 소리와 환호에 답하며 세상 가장 행복한 얼굴로 퇴장하고 있다. 33년 전 우리 부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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