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할 때 가장 행복하다며 언제든 불러준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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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현역’ 현미 별세

80세에 신곡 ‘내 걱정…’발표
국내 최고령 신곡 취입 기록

“운명 전날에도 노래교실 무대
늘 긍정적이고 씩씩한 모습”

“집안에 경사 있으면 연락해요. 언제든 노래 불러줄게.”

얼마 전 신년 안부 전화통화를 나눌 때도 이렇게 호언장담하던 가수 현미(85·본명 김명선)가 4일 오전 세상을 떠났다.

평소 현미는 ‘영원한 현역’이라 불렸고 ‘영원한 현역’이길 자처했다. 지난 2017년에는 80세에 신곡 ‘내 걱정은 하지 마’를 발표하며 ‘국내 최고령 신곡 취입가수’라는 기록을 남겼다. 눈을 감기 전날인 3일에는 KTX를 타고 대구 노래교실 공연을 다녀오기도 했다. 하지만 “2027년, 데뷔 70주년 공연을 갖겠다”던 그의 바람은 꿈으로 남았다.

현미가 말하는 건강의 비결은 항상 ‘노래’였다. 그는 연초 전화 통화에서 “열심히 노래하고 다니니 아픈 곳이 없다. 바쁘게 다니는 게 건강 비결이다. 노래 부를 때 가장 행복하다”면서 “언제든 집안에 경사가 있으면 연락하라.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노래밖에 없다. 언제든 불러줄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항상 에너지가 넘치는 현미에게도 아픔은 있었다. 자녀들이 미국에서 거주하고 있는 터라 “혼자 밥 먹을 때가 제일 외롭지”라고 말하곤 했다. 남다른 성량이 대단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유독 더 목소리에 힘이 넘쳤던 이유는 실은 청력이 저하돼 보청기를 착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변의 소리가 작게 들리니 자연스럽게 더 목소리를 키웠다. 현미는 전화통화 중 “잘 안 들린다. 조금 더 크게 말해달라”면서도 “내가 보청기를 끼고 있다. 그래도 평생을 무대 위에서 살았는데 지금 나이에 이 정도면 괜찮은 편”이라며 항상 긍정적이고 씩씩한 모습을 보이곤 했다.

현미는 1938년 평양에서 8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후, 6·25전쟁 당시 남한으로 내려와 피란 생활을 했다. 비교적 넉넉한 가정에서 성장해 덕성여대 가정과에 다니다 중퇴한 후 1957년 미8군 무대를 통해 무용수로 데뷔했다. 이곳에서 발군의 노래 실력을 인정받아 현시스터즈를 결성했고, 운명의 상대인 작곡가 이봉조(1932∼1987)와 만났다. 1962년에는 미국 가수 냇 킹 콜의 ‘It’s A Lonesome Old Town’을 이봉조가 편곡하고 현미가 한국어 가사를 붙인 ‘밤안개’가 큰 성공을 거두며 스타덤에 올랐다. 트로트가 득세하던 시절, 세련된 멜로디와 특유의 풍성한 보컬이 어우러진 ‘밤안개’는 대중에게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한편 고인은 4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촌동 자택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팬클럽 회장 김모(73) 씨가 경찰에 신고, 인근 병원으로 옮겼으나 사망 판정을 받았다. 이자연 대한가수협회장은 이날 “전날 저녁에도 지인과 함께 식사하셨더라. 건강하셔서 100세까지 끄떡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소식에 당황했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유족으로는 고인과 이봉조 작곡가 사이에서 낳은 두 아들 이영곤(61), 영준(58)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중앙대학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