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재팬’ 조례 27건… ‘친일 프레임’ 무서워 수수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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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자체 ‘일본’ 관련 조례 298건

화성, 전범기업 제품 구매 막아
시흥, 매년 거래현황 실태조사
인천·울산 등 친일 상징물 제한
규칙·강제성없어 실행력 미미
한일 관계 개선에 악영향 지적

인천=지건태 jus216@munhwa.com·화성=박성훈 기자

최근 ‘한·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 간 상호 발전을 위한 관계 개선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는 가운데 과거 반일 정서에 편승해 제정된 지방자치단체의 ‘정치성 강한’ 조례가 이 같은 노력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지방 의회 차원에서 정비가 이뤄져야 하지만 ‘친일’ 프레임이 덧씌워질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11일 전국 지자체와 행정안전부 등에 따르면 2019년 한·일 무역 분쟁 당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확산하면서 일본 제국주의 상징물의 공공사용과 전범 기업과의 수의계약 등을 제한하는 조례가 잇따라 제정됐다. 행안부 자치법규시스템에서 ‘일본’을 키워드로 검색한 지자체 조례 298건 가운데 일본의 침략전쟁 전범기인 욱일기 등 제국주의 상징물의 공공사용을 제한하거나 전범 기업이 생산한 물품 등을 구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례가 27건에 달했다. 특히 이들 조례는 한·일 간 무역 분쟁을 또다시 불러올 수 있는 민감한 내용이 담겨 해당 지자체도 의회 차원의 개·폐정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경기 화성시는 ‘일본 전범 기업 제품 등 공공구매 제한에 관한 조례’에서 일제강점기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에 피해 배상을 하지 않은 일본법인과 이들 법인이 50% 이상 투자하거나 주식을 보유한 법인이 생산하는 제품이나 제공하는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같은 조례 제1조(목적)는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세우고 올바른 역사 인식 확립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했다. 또 경기 시흥시는 ‘항일독립운동 계승 조례’에서 일본 전범 기업을 명시하고 시 산하 공기업 및 출자 출연기관이 이들 기업과의 거래 현황 등에 대해 매년 실태를 조사할 수 있도록 했다. ‘독도의 달’ 조례를 제정한 경북도는 매년 10월 한 달간은 소속 공무원과 출자·출연기관 임원의 공무상 일본 방문을 규제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밖에 인천, 울산, 충남도 등이 친일 상징물의 공공사용을 제한하는 조례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조례가 실제 일본 제품의 불매 등 실행에 옮겨졌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하물며 해당 지자체의 실무 부서 공무원조차 이 같은 조례의 존재 여부를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한 지자체 공무원은 “관련 조례에 따른 시행 규칙도 없고 강행 규정도 아니어서 관심을 두지 못했다”며 “의원 발의로 제정된 조례인 만큼 의회 차원에서 정비해야 하지만 ‘친일’ 프레임이 덧씌워질 것을 우려해 나서는 의원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의회는 ‘노 재팬’ 운동이 일자 의원 발의로 ‘일본 전범 기업의 수의계약 제한 조례’를 제정하려 했지만 심의 과정에서 외교·통상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는 이유로 보류하기도 했다. 홍승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치적 구호나 선언적 의미의 사문화된 조례라도 엄연한 자치 법규인 만큼 양국 지자체 간 우호협력사업, 또는 국가 간의 관계 회복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