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시간 견디지 못하고 자꾸 취미 만들어요[마음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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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상담소

▶▶ 독자 고민

아이들이 크면서 예전보다는 여유로워졌는데 빈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계속 무엇인가를 해요. 퇴근해서 혼자 가만히 멍하게 쉴 수 있다면 참 좋겠는데, 가만히 쉴 수가 없네요. 주 3회는 수영을 다녀오고, 주말에는 성가대를 하고 아이를 학원에 데려다줄 때는 유튜브 경제 동영상을 들어요. 주변 사람들은 왜 그렇게 쉬지를 못하냐면서 취미 중독 아니냐는 말도 합니다. 그게 정신 건강에 좋지 않다고들 하더라고요.

사람들은 제가 쉬지 못한다고 자꾸 뭐라고 하는데, 저는 인생이 그냥 흘러가 버리는 것이 두려운가 봐요. 제가 고등학교 때 비교적 젊은 나이에 엄마가 암에 걸려 돌아가시던 것과 친구가 교통사고로 떠난 상황을 떠올려보면 인생이 허무하고 짧다는 생각이 들어서 수영에서 진도를 나가거나, 재테크로 푼돈이라도 버는 것처럼 성과가 있어야 인생이 의미 있는 것 같아요.


쓸 수 있는 돈· 허락된 시간 고려…‘작은 성취’ 이루는 건 좋아

▶▶ 솔루션

평소 생각이 많거나 걱정이 많은 사람의 경우, 그저 비어있고 쉬는 시간보다는 다른 상황에 몰입해서 시간을 줄이는 것이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쉬는 것보다는 능동적으로 노는 것이 더 좋은 사람도 있고요. 앉아서 마음을 비우는 명상보다는 걷기명상이 더 맞는 사람도 있지요. 아이들을 보면 수업 시간에는 모두가 같은 수업을 듣지만, 쉬는 시간에는 각자 원하는 다양한 모습으로 시간을 보냅니다. 어른도 마찬가지입니다.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일하는 시간 이외의 삶은 각자 다릅니다. 이솝우화에서 나오는 황새와 여우의 이야기처럼 각자에게 맞는 그릇이 있습니다. 나에게 좋은 것이라고 타인에게 좋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지요. 쉬는 게 좋다고 한들, 나에게 좋을지는 의문인 것입니다.

인생에서 성취가 중요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큰 성취에만 목을 맨다면 오히려 불행해질 수도 있습니다. 능력이 있으면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도 그만큼 높기 때문에, 자기 마음에 드는 만큼 성취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 점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작은 성취를 반복적으로 하는 것은 괜찮은 선택이라고 봅니다.

이러한 기질은 타고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머니나 친구와 관련된 트라우마가 나의 기질을 발견하는데 영향을 줬고, 불안의 기본값을 높여서 생각을 깊게 하는 상황이 더 괴로워졌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트라우마로 인해서 꼭 그렇게 됐다고 보기는 어렵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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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작은 성취를 지향함에 있어, 현실과의 타협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자녀 문제처럼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일에 집착하거나 처지에 맞지 않는 성취를 하려고 하면 스스로와 주변이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취미의 성취는 좋지만, 내가 쓸 수 있는 돈, 허락된 시간을 고려해야 합니다.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범위에서 작은 성취를 이루는 게 좋습니다.

하주원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홍보이사·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