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소통의 달인… 천국서도 名대변인 기대합니다[그립습니다]

  • 문화일보
  • 입력 2023-04-25 09:23
  • 업데이트 2023-04-27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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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립습니다 - 윤창로 장군(1940∼2018)

“천국에서 대변인을 공모하는가?” 윤창로 장군님의 별세 소식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이런 외마디가 흘러나왔다. 아직은 너무 빠른데 윤 장군님을 부르다니….

돌이켜보면 장군님은 소통의 달인이셨다. 전방 사단 참모 시절, 윤 장군님께 전화를 드렸다. 보좌관은 지금 부재중이라고 했다. 그런데 잠시 후 장군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부재중이니 다시 하라”는 보좌관 응대가 일반적이던 시절 아닌가? 그러나 장군님은 꼭 메모하게 하시고 전화를 건 사람에게 반드시 전화를 해주셨다. 그것도 소령에게 말이다. 분명 시대를 앞서가는 소통의 달인이셨던 거다.

장군님은 타고난 대변인이셨다. 육군의 대변인, 국방부 대변인, 재향군인회 대변인을 지내셨다. 특히 국방부 대변인은 세 번이나 역임하는 특이한 이력을 갖고 계신다. 국방이 어려울 때마다 대변의 달인 윤 대변인을 찾았기 때문이다.

전시에는 모든 군인이 싸우지만, 평시에도 전투 중인 병과가 있다. 바로 정훈병과다. 정훈은 평시에도 심리전을 담당하지 않는가! 전·평시 전투병과, 이렇게 정훈인의 긍지를 높여주셨다.

월남전에 뛰어들어 안케 전투의 현장에서 1신을 타전하셨던 장군님은 결국 고엽제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현역 때는 상시 전투병과 정훈인으로서 싸웠고, 전역 후에는 안보 제2역군으로 재향군인회에서 싸웠고, 마지막에는 고엽제 후유증과 싸우다 돌아가셨다. 결국은 전투 중에 순직을 하신 것이다.

장군님은 선배들에게는 재롱둥이 후배였고, 아우들에게는 믿음직한 형님이셨다. 윤 장군님을 사랑하는 선배들은 대부분 “어이 윤창로” 이렇게 불렀다. 후배인 나를 부를 때는 꼭 “유찬 아빠”라고 하셨다. 군의 선배·후배라기보다는 형님·동생·전우·친구로 살았던 장군님은 출신 불문 화합과 공생의 표상이었다.

윤 장군님의 트레이드 마크는 배꼽 잡는 유머다. 필자가 1군단 정훈 과장 시절, 무장탈영병이 총기를 들고 서울로 잠입한 사건이 있었다. 나는 국방부 기자실에서 브리핑을 하게 됐다. 이때 모 기자가 돌발 질문을 했다. “병사들 외출외박제도가 언제부터 있었나요?” 나는 갑자기 머리가 하얘져서 머뭇거리는데 당시 대변인이신 윤 장군님께서 즉각 받아쳤다. “그건 임진왜란 때부터 있었다.” 좌중에서는 폭소가 터졌고, 덕분에 나는 급박한 상황을 벗어날 수 있었다.

말끝마다 “내가 직접”이라고 하면서 ‘직접’을 좋아하시는 선배님이 계셨다네요. 그 선배님이 돌아가셨는데 문상을 마치고 나오면서 윤 장군님 왈 “이번에는 선배님이 ‘직접’ 돌아가셨구만”. 조문을 마치고 나오는 자리지만 배꼽을 잡고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어떤 모임에나 장군님이 안 계시면 팥이 없는 팥빵이었다.

장군님 자택에는 “잘 믿고 잘 가자”는 족자가 걸려 있었다. 마지막까지 잘 믿고, 잘 사는 길을 걸으셨으니 가시는 길도 잘 가셨겠지요. 이 땅에 남아 있는 많은 이들은 이렇게도 서운하지만, 천국에서는 성대한 환영식이 열렸을 테니 말입니다. 천국에서도 대변인 임명을 받으셨겠네요. 날마다 천국 백성들을 웃게 하는 명대변인 근무를 기대합니다. 후배요, 전우이며, 아우인, 유찬 아빠가 드립니다.

예비역 육군대령 이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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