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대기업 다니는 것 자랑하신 아버지… 오늘도 혼자 계시네요[그립습니다]

  • 문화일보
  • 입력 2023-04-26 09:08
  • 업데이트 2023-04-26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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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립습니다 - 임운식(1960∼2013)

아버지가 췌장암 말기 선고를 받는 순간, 그 자리에서 다리가 풀려 한참이나 일어나질 못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그 광경을 내가 따라 하는 것이 돼버렸다. 그렇게 서울의 한 대형병원 암 병동에서 아버지의 병원 생활은 시작됐고, 병동 안의 여러 환우와 가족들과도 제법 친해졌다.

동병상련이랄까. 그곳은 전국의 말기 암 환자들이 모두 모여 있는 곳이었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라 툭하면 통곡 소리가 빗발쳤고, 우리는 서로를 위로해주곤 했다. 수술이 잘돼서 퇴원한 환우들도 계셨는데, 두어 달 만에 전이가 돼 결국 사망했다는 소식도 곧잘 들을 수 있었다. 세상 모든 슬픔이 집결된 장소이다.

내 나이 33살 되던 해였던 것 같다. 다니던 회사에서는 일꾼 격인 대리 직급 정도 됐었는데, 아버지는 병원에서 간호사들을 비롯해 같은 병동 사람들에게 “우리 아들 유명 대기업 본사에 다녀요” 하며 늘 자랑하셨다고 한다. 나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 참 행복했다. ‘내가 우리 아버지의 자랑이 될 수도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며. 그래서 생각을 해봤다.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아버지께 내가 무엇을 해드릴 수 있을지. 그러다 아버지가 당시 토론 프로그램을 즐겨보시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서 나는 망설임 없이 시사토론 대표논객으로 지원했다. 이력서가 통과되고 며칠 뒤 여의도로 가서 담당 PD와 면접도 봤다. 나는 당시 여당 편에 섰고, 상대는 사법시험 준비생이었는데 야당 편에서 서로 논쟁을 했다.

나는 아버지한테만 사전에 얘기했다. “아빠, 나 오늘 생방송 시사토론에 나오니까 이따가 TV 꼭 켜봐!” 방송은 무사히 끝났고, 다음 날 ‘TV 잘 봤다’며 곳곳에서 연락이 왔다. 분명 아버지한테만 말씀드렸는데, 아버지가 지인분들께 모두 연락을 한 것이었다. 실없는 웃음이 나왔지만, 아버지가 좋아하시니 나도 그저 좋았다.

그렇게 1년여 시간이 흘렀고, 보험 적용이 안 되는 병원비 때문에 나는 퇴직금까지 모두 당겨쓰고 신용카드는 연체가 누적돼 수천만 원의 빚더미에 앉게 됐다. 뭐 상관없었다. 살아있는 내가 열심히 벌어서 감당하면 될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은 이제 보름 정도 남았으니 준비를 하라고 하셨다. 나는 아버지를 모실 납골당을 여기저기 알아보고 장례식장도 둘러봤다. 눈물이 바다가 된다는 말을 나는 그때 처음으로 실감했다. 살아있는 아버지 묻을 곳을 천하의 몹쓸 자식인 내가 알아보고 있는 것이었다.

마지막 일주일. 나는 아버지의 투병 시간을 함께한 이야기를 글로 써서 어느 의학 매거진에 보냈다. 이후 편집장이 소정의 원고료까지 보내주며 1면에 내 글을 실어 주었다.

나는 매거진을 사 들고 아버지한테 갔다.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지한 채, 이제 눈도 못 뜨시는 아버지께 말이다. 마지막 자랑거리를 가지고 왔는데,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보고 싶었는데, 아버지는 그렇게 며칠 동안 인공호흡기에 의지하다가 끝내 돌아가셨다. 머리맡에 매거진이 놓인 채, 그렇게 평온하게 가셨다. 우리 가족은 병실 바닥에 엎드려 소리 내어 울었고, 봄날의 햇살은 창틈으로 들어와 아버지를 은은하게 비추었다.

그 후 8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그간 많은 일이 일어났다. 아버지가 안 계신 세상에 덩그러니 남은 우리 가족은 어느덧 일상을 찾았고 각자의 위치에서 또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며칠 전, 오랜만에 납골당을 찾아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술 한잔을 올려 드리고 왔다. 문득 드는 생각은, 이제 나까지 옆에 없으면 찾아오는 사람 하나 없는 우리 아버지 외로워서 어쩌나 싶은 거였다.

“아버지, 10년이 지난 오늘도 한이 서릴 만큼 당신이 많이 보고 싶습니다. 발걸음마다 묻어나는 초록들이, 올봄에는 아버지가 사시는 세상에도 가득하길 어디에서나 기도할게요. 못난 아들은 이렇게 또 아버지를 혼자 두고 갑니다. 편히 쉬세요, 아버지.”

임기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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