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도 스승… 스승이란 존재 따로 없어[김헌·김월회의 고전 매트릭스]

  • 문화일보
  • 입력 2023-05-15 09:35
  • 업데이트 2023-08-07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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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카페 - 김헌·김월회의 고전 매트릭스 - (26) 스승의 날

이지 ‘분서’

나음도 못남도 배움의 계기
스승을 정해 놓을 필요 없어
누구든지 진보에 도움된다면
그를 스승으로 삼을줄 알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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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를 작성해야 한다. 주제는 내가 잘 모르는 분야다. 생성형 인공지능(AI)에 관련 어휘를 몇 개 넣었다. 이윽고 필요한 자료와 정보가 잘 정돈된 채로 제시되었다. 여기에 내가 더 조사, 분석한 것을 보태어 리포트를 완성하여 제출하였다. 제법 뿌듯해졌다. 상사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아서이기도 하지만 리포트를 작성하며 내 역량이 늘었기 때문이다. 생성형 AI 덕분이다. 참으로 스승 같은 존재다.”

이번 학기 들어 대학에서도 생성형 AI 활용이 교수자, 학습자 할 것 없이 본격화되고 있다. 하여 위와 같은 상황을 가정해보았다. 그런데 생성형 AI는 분명 도구다. 그러한 생성형 AI가 스승이 될 수 있을까? 만약 그럴 수 없다고 한다면 그 근거는 무엇일까? 그러니까 스승의 조건을 따져보자는 얘기다.

가령 공자는 옛것을 잘 알고 새것도 잘 익혀야 스승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맹자는 사람들의 병폐는 남의 스승 노릇하기를 좋아하는 것이라고 꾸짖었다. 이로 보건대 맹자는 ‘꼰대’이면 안 된다는 것을 스승의 조건으로 꼽았음을 알 수 있다. 당대 대문호였던 한유는 신분, 나이를 따질 필요 없이 도를 깨친 자가 바로 스승이라고 선언했다. 학식과 인격을 두루 갖추어야 스승이 되는 거라고 보지도 않았다. 그는 장인들은 자기보다 나은 기예를 지니고 있으면 그가 누구든 간에 배우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면서 지식인들은 왜 이러한 태도를 배우지 않느냐고 탄식했다.

스승의 조건을 따지기에 앞서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진정인지를 먼저 짚어봐야 한다는 주문이다. 배우고자 하는 바람이 참되다면 누구냐를 따질 것 없이 열린 자세로 스승 삼을 줄 알게 된다는 충고다. 그러면 나보다 나을 바가 없는 대상에서조차 배우게 된다. 공자는 “셋이 길을 가면 그중엔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게” 마련이라고 단언했다.

셋 중에 선한 이가 있다면 그를 본받고, 그렇지 못한 이가 있다면 그를 반면교사로 삼아 자신을 고쳐나가면 된다고 했다. 나보다 나음은 물론 나보다 못함도 모두 나의 진보에 디딤돌로 활용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렇듯 누구든지 다 배움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면 굳이 스승을 정해 놓을 이유가 없게 된다. 자신은 유가였지만 도가인 노자에게도 가르침을 청했던, 그렇게 어디에서든 늘 배웠기에 “정해 놓은 스승(常師)”이란 없었던 공자처럼 말이다. 또한 누군가의 스승 되기에 멈추어 있지도 않는다. 배울 이가, 배울 바가 도처에 존재하기에 설령 누군가의 스승 노릇을 할지라도 배우는 자로서의 정체성을 놓지 않는다. “교학상장”, 그러니까 가르치면서 배움이 성장한다는 유가 경전 ‘예기’의 말처럼, 나의 배움을 촉발해주는 학생을 스승으로 삼을 줄 안다. 벗도 마찬가지다. 명대의 대표적 양명학자 이지의 말이다.

“스승과 벗은 본래 하나인데 둘로 여겨진다. 세상 사람들은 벗이 곧 스승인 줄 모른 채 학업을 전수해주는 이만을 절하며 스승이라 한다. 또한 벗이 곧 스승인 줄 모른 채 교유하며 친한 자만을 벗이라 부른다. … 벗이라고 하면 스승이 그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분서’)

이지는 누가 자기를 스승이라 부르는 것을 몹시 싫어했다. 애초에 스승이란 존재가 따로 있지 않았고, 배움은 수평적 관계인 친구 사이에서도 너끈히 이뤄질 수 있는 활동이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자기에게 배웠다는 이유 하나로 자신을 스승이라 부르며 ‘스승-제자’라는 수직적 관계를 맺으려 하니 이를 단호하게 거부했던 것이다.

결국 상대가 누구든지 그가 나의 진보에 도움이 된다면 그를 스승으로 삼을 줄 아는 정신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누군가를 가르칠 때는 벗으로서의 스승 곧 ‘스승-벗’이어야 하고, 학생과의 관계에서는 자기 정체성을 스승으로 한정해서도 안 된다는 얘기다. 그래서 스승의 날은 없다. 있다면 그것은 ‘스승 삼는 날’일 따름이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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