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담당 폭행 100건 중 83건이 집유·벌금형 그쳐 [민원폭탄에 신음하는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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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원폭탄에 신음하는 대한민국 - ‘솜방망이 처벌’에 동네북 신세

법원, 초범·합의 등 이유 참작
민원 현장에서 법치 붕괴 우려

법원이 ‘민폭’(민원폭력)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을 반복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법부의 안이한 처벌 등으로 인해 ‘민원 공무원은 만만하다. 소리 지르고 욕해도 된다’는 인식이 뿌리 깊게 형성돼 민원 현장에서부터 법치가 무너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16일 민폭 취재팀이 대법원 판결문 열람시스템 등을 통해 2020년부터 최근까지 민원 담당 공무원에 대한 민폭 범죄 1심 판결문 100건을 분석한 결과, 100건 중 83건에 대해 징역형의 집행유예·벌금이 선고됐다. △초범 △피해자와의 합의 △피고인의 반성 등이 벌금형 선고의 이유다. 무방비 상태의 공무원을 향한 중대 폭력 행위에 대해 엄중 처벌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100건 중 실형 선고는 17건에 불과했다. 공무집행 방해 혐의 외에 다른 혐의가 중첩됐거나 과거 범죄·동종 범죄 이력이 있을 때, 집행유예 기간에 범행을 저질렀을 때 등에 한한 경우다.

구청장 등 공무원 4명의 공무집행을 방해했지만 벌금형이 선고된 사례도 있다. 지난해 1월 5일 A 씨는 전자파 소음 관련 민원을 하러 서울의 한 주민센터를 찾았다. 마침 해당 구의 구청장이 신년인사차 이 주민센터를 찾았는데, A 씨는 다짜고짜 구청장의 다리를 여러 번 걷어찬 뒤 옷에 침을 뱉으며 밀쳤다. 이어 A 씨는 자신을 말리는 공무원을 밀치고, 또 다른 공무원의 얼굴도 2회 때린 데 이어, 구청장 수행비서 얼굴도 1회 때렸다. 그의 형량은 벌금 500만 원에 그쳤다. 서울북부지법은 양형 이유에 대해 “죄질은 좋지 않으나 초범이고 피해자와 합의한 점을 참작했다”고 밝혔다.

2021년 1월 4일 울산의 한 주민센터를 찾은 B 씨는 코로나19 관련 발열 체크를 하던 공무원에게 “XX야, 마스크 벗어라. 죽어라”라며 그의 몸을 수차례 발로 차고 머리채를 손으로 잡아 흔들었다. 옆에 시민이 이를 만류하자 시민의 배와 다리도 찼다. 또 다른 공무원이 말리자 B 씨는 공무원의 얼굴을 할퀴며 마스크를 잡아당겼다. 공무원, 시민 등 3명을 연이어 폭행한 것이다. 울산지법은 “피고인이 반성하고 있고, 처벌전력이 없다”며 벌금 100만 원을 선고했다.

흉기를 지닌 채 공무원을 때린 사건에 대해서도 벌금형이 선고됐다. C 씨는 지난해 1월 7일 서울 종로구청에서 주거지원비 환수 민원 중 격분해 공무원 3명을 폭행했다. 당시 그는 안주머니에 과도를 지닌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중앙지법은 “피고인이 반성하는 점, 경제적으로 어려운 점, 건강이 좋지 않은 점 등을 고려했다”며 벌금 400만 원을 선고했다.

손기은 기자 s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