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윤 정부 길들이기 차원서 거친 발언… 여야 대립상황도 잘 알고 활용” [현안 인터뷰]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규형 전 주중대사가 15일 문화일보 현안인터뷰를 마친 뒤 인근 길을 걷고 있다. 이 전 대사는 인터뷰에서 “윤석열 정부가 ‘가야 할 방향’으로 외교 정책을 택했다”며 “원칙과 상식에 벗어나지 않는 외교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현안 인터뷰 - 이규형 전 주중대사

싱하이밍 발언, 개인 의견 아닌
본국 지침·허가 거친 걸로 봐야
알아서 기는 정부 대하다 바뀌자
중국 정부 견해 터프하게 밝힌 것

중국, 때로 한국 주권 무시하듯 행동
여야 싸우면 중국 얼마나 좋겠나

큰나라 상대 외교엔 용기 필요
국익이란 관점서 최선 따져야

우크라전에 푸틴 인기 더 올라
경험 따르면 러 사람들 ‘체념적’

인터뷰 = 민병기 정치부 차장 mingming@munhwa.com

글로벌 질서 재편이 급속히 일어나고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 변화도 숨 가쁘다. 한·미·일 삼각 협력 구도는 빠르게 복원되고 이를 지켜보는 북한과 중국, 러시아의 심기는 편치 않다. 한국을 겨냥한 중국의 가시 돋친 발언의 기저에도 이런 불안이 깔려 있다.
노무현 정부에서 외교부 차관을 지내고 주러대사에 임명돼 이명박 정부까지 이어진 임기를 마무리 짓고, 다시 주중대사에 임명돼 박근혜 정부에서 물러난 이규형 전 주중대사는 이를 두고 “중국 입장에서 알아서 기는 지난 정부를 대하다가 이번 정부는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에 대한 길들이기”라고 말했다. “우리끼리 싸우는 게 결국 남에게 요리하기 좋은 환경을 제공해 준다”며 외교·안보 분야에서의 여야 간 대립 구도를 지적하기도 했다. 외교관 생활을 마치고는 민간 분야에서도 활동한 이 전 대사에게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서 윤석열 정부의 외교 방향에 대해 물었다. 잘 정돈돼 있으면서도 균형 잡힌 답이 돌아왔다. 인터뷰는 지난 15일 문화일보 사옥에서 이뤄졌다.

―2012년 한·중 수교 20주년 때 주중대사였다. 지난해 수교 30주년이 됐는데 한·중 관계는 협력보다는 갈등 국면에 있다.

“2012년 8월 베이징(北京)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習近平) 당시 국가 부주석을 주빈으로 모시고 수교 20주년 행사를 주관했다. 이후 10년 동안 각자 내부의 변화, 국제정치와 경제 환경의 변화가 양국 관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한·중 양국이 주권평등, 상호존중의 정신하에 좋은 이웃국가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양국 정부와 국민이 이해의 폭을 넓히고 소통을 강화해야 하는 상황이다.”

―싱하이밍(邢海明) 주중 한국대사가 한국 정부를 겨냥한 수위 높은 발언을 한 배경은.

“개인적인 견해가 아니고 사전에 본국의 지침과 허가를 받아 행해졌다고 봐야 한다. 중국의 경우 철저하게 대사의 발언, 행동 하나하나를 보고하고 허가를 얻어야 한다. 한국 정부에 터프하게 중국 정부의 견해를 밝힌 것이다.”

―한·미·일이 가까워지는 상황에 대한 불만과 위협으로 보인다.

“중국 입장에서 일부 측면에선 굴종적으로, 중국말 잘 듣는, 알아서 기는 지난 정부를 대하다가 이번 정부는 그렇지 않고 또 윤석열 정부가 한·미 동맹에 가치를 두고 강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경고도 하고 ‘자기들에게 이렇게 해줘야겠다’는 희망을 내놓고 있다. 윤석열 정부에 대한 길들이기랄까, 자기들이 생각하는 바대로 움직이길 희망하는 관점에서 센 이야기를 한 것이다.”

―결국 한·미·일 중 한국이 상대적으로 약한 고리다.

“우리로서는 남북 분단이 어쩔 수 없는 문제다. ‘그래도 한국은 우리한텐 함부로 할 수 없잖아’라는 자신감이랄까, 때로는 한국의 주권을 무시하는 듯 행동한다. 한자문화권을 공유하고 있어서 다른 나라와 달리 한자로 표현된 중국의 정책에 더 민감한 측면도 있다. 또 중국은 우리 국내 분열상, 정치 대결이 첨예하다는 걸 잘 알고 있고 언론이 어떻게 반응할지 잘 알고, 그런 점도 잘 활용한다.”

―야당 의원들을 중국으로 부른 것도 그런 전략인가.

“중국은 전략적인 마인드, 전략적 사고를 습성화하고 있다. 바둑에서도 몇 수를 내다보듯. 또 팃포탯(Tit for tat·맞대응) 전략을 하는 움직임도 있다.”

―우리도 대통령이 직접 나서는 모양새는 별로 좋지 않아 보인다.

“중국 외교부에서 국장도 제대로 안 해본 싱 대사를 상대로 대통령이 직접 나서는 것 같은 모습은 적절하지 않다.”

인터뷰가 이뤄진 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중국을 방문했다. 뚜렷한 성과는 없었지만, 미국과 중국이 으르렁대기만 하는 건 아닌 상황이다. 이 전 대사는 단 한마디로 중국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국내총생산(GDP)이 18조 달러, 세계 2위다.”

―우리의 전략은 어떠해야 하나.

“대사할 때 부총리를 했던 쩡페이옌(曾培炎)이라는 사람을 찾아갔더니 ‘한·중 관계는 숙명적 관계’라는 말을 했다. 바로 옆에 있는데 어떻게 하겠나. 4000년 역사를 공유했다. 14억 인구 시장을 어떻게 방기하겠나. 물론 내가 떠난 10년 동안 중국의 변화를 보면 마냥 ‘좋은 이웃’이라 말할 수는 없다. 그래도 우리도 스스로를 너무 작게 생각하면 안 된다. 한반도 평화 안정에 중국이 역할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지금 대중외교를 하는 후배들한테 조언 한마디 하신다면.

“원칙과 상식에 벗어나지 않는 외교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큰 나라를 상대로 외교를 할 때는 용기도 필요하다. 옳은 이야기를 분명하게 전하는 자세가 필요하고 또 상대가 대응할 것에 대해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결국 원칙, 국제법 같은 것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미·중 간 대립 분위기가 강화되면 우리 입지도 더 어려워질 것은 분명하다.”

―가치 중심으로 세계가 재편되는 상황에서 단순히 중국이랑도 친하게 지내자는 상황과 달리 관계의 질적인 전환이 필요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외교적 판단의) 가운데에 우리가 있어야 한다. 우리 입장에 비춰 맞다고 생각하면 그대로 추진해야 한다.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 4자 안보협의체)에 인도가 들어 있다. 브릭스(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신흥경제 5개국)에도 인도가 들어 있다. 인도는 양쪽에 다 관여하고 있다. 북한과의 관계도 있어 제약도 많고 어려운 환경인 것은 분명하다. 국익이라는 관점에서 뭐가 최선인지를 따져야 한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여야 대립이다. 물론 배경 설명을 하고 이해를 구하려는 노력은 정권을 가진 쪽에서 해야 한다. 사실 여야가 싸우면 중국이 얼마나 좋겠나. 중국뿐만이 아니다. 미국도, 일본도 그렇다.”

이 전 대사의 직업외교관 주요 경력에는 주러대사도 있었다. 유엔과 일본에서도 근무한 경력이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어떻게 끝이 날까.

“가까운 장래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서로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있겠나. 내 생각에 전쟁은 좀 더 길어질 것이다. 러시아는 이번 기회를 이용해 국내적으로 추진하고자 하는 혁신적인 조치를 일부 취했다고 하지 않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인기는 여전할 거라고 본다. 죽어나는 건 양측의 무고한 시민이다. 경제적으로 더 어려워야 전쟁이 멈추는데 지난해까지만 해도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평가가 있다. 물론 올해는 더 나빠질 것이란 관측이다. 주러대사로 일했던 경험에 따르면 러시아 사람들은 체념적이다. 어려움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안에서부터 불만이 분출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유엔에서 근무하실 때 우리나라가 안보리에 가입했다.

“내가 참사관으로 유엔에 가서 마지막 교섭을 1년 정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1995년에는 스리랑카가 출마를 포기해 아·태 지역에서 단독 출마해 첫 번째 비상임이사국으로 당선됐다.”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이 되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나.

“안보리는 국제기구 중 유엔이 평화를 유지하는 측면에서 유일한 역할을 한다. 물론 미국 같은 우방국이 한국 입장을 잘 대변해 줬지만 우리 문제를 분명히 직접 제시할 수 있게 됐다. 앞으로 2년 동안 여러 국가의 다양한 이슈를 다루게 될 것이다. 그만큼 대외 관계에서의 프레스티지(위신)가 생긴다.”

―한·일 관계에서 윤석열 정부가 잘하고 있다고 보나.

“지난 정부와 정반대다. 결국 한·일 관계는 이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믿는다. 역사를 잊을 순 없지만 결국 가치를 공유할 필요가 있다. 중국의 패권적 부상이 예상되고 북한 문제 해결 필요성을 생각해서도 그렇다. 사실 일본의 행동이 우리 국민 마음을 거슬리게 할 때가 많았다. 내가 일본에 있을 때 일주일에 두 번쯤 일본 외무성 동북아 과장이랑 싸웠는데, 그때 한국 GDP가 일본의 20분의 1에 불과했다. 지금은 일본의 3분의 1 정도로 따라잡았다. 이게 한·일 관계에 굉장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본다. 그동안은 ‘너희들 못 살아서 좀 봐줬는데 이제 그런 거 없다’는 거다.”

―북핵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하나.

“북한 핵문제를 30년 이상 끌고 왔다. 제네바 합의 이후 북한은 최근 핵탄두 운반체까지 다 만들었다. 어느 정권을 막론하고 실패다. 북한이 핵을 쓰면 자신들이 없어진다는 인식을 할 필요가 있다. 핵 보유국인 미국과 중국, 러시아로부터 공개적으로 약속을 받아내는 것도 해법이 될 수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1년, 외교 분야에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가야 할 방향을 택했다. 국가 안보와 지속적 성장, 국제 사회에서의 기여 관점에서 보면 미국과는 동맹을 강화해야 하고 일본과는 관계를 정상화시켜야 한다. 다만 우리가 곧 미국이 아니고, 일본과도 다르기 때문에 미국·일본도 철저히 자기 국익에 합당한 부분에 맞춰 움직인다는 것을 늘 인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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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규형 전 대사는…

러 · 중 대사 거친 정통외교관… 중국서 8일만에 ‘초고속 아그레망’ 화제되기도

이규형 전 주중대사는 그보다 앞서 주러대사로도 활동한 이력을 가졌다. 한반도 주변 소위 ‘4강’으로 여겨지는 중국과 러시아에서 대사직을 경험한 외교관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이 전 대사는 주중·주러대사 외에 주방글라데시 대사까지 지낸 바 있어 이례적으로 3개국 대사를 거친 정통 외교관으로 꼽힌다. 그는 최근까지 10년째 한러대화(KRD·Korea Russia Dialogue)의 조정위원장으로서 한·러 관계의 다양한 현안을 두루 들여다보고 있다.

이 전 대사는 “코로나19가 확산한 이후 한국과 러시아를 직접 오고 가는 일은 멈췄지만 비대면 화상회의 형식으로 정치, 경제, 문화 등 6개 분과의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면서 “최근에는 한·러 경제통상 관계를 주제로 양국 학자와 전문가, 기업인들이 참여하는 화상 회의를 가졌다”고 말했다. 2019년부터는 박경리문학제를 통해 한국과 러시아 사이의 문화 교류를 위한 노력도 이어가고 있다.

이 전 대사는 주중대사에 내정된 지 8일 만에 중국 정부로부터 아그레망(주재국 동의)을 받아 외교가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일반적으로 한 달 이상 중국 정부의 아그레망 절차가 걸렸던 것에 비하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는 2011년 5월 19일 베이징(北京)에 부임해 사흘 만인 21일 일본 도쿄(東京)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의 관련 업무를 시작으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집권 1기 시작을 지켜봤고 이듬해에는 한·중 수교 20주년을 챙겼다.

이 전 대사는 외교관 근무 시절 두 권의 시집을 펴내기도 했다. 외교부 대변인으로 일하던 2005년 8월 ‘때로는 마음 가득한’이란 제목의 첫 번째 시집을 냈다. 주러대사로 일하던 2009년 4월에는 두 번째 시집 ‘또다시 떠나면서’를 출간해 글재주를 발휘했다. 두 번째 시집에 수록된 60여 편의 시들 중에 20편은 러시아어로도 번역돼 한·러 사이 문화 가교의 역할을 했다.

△부산(71) △서울고 △서울대 외교학과 △외무고시 8회 △외교부 유엔과장 △외교통상부 대변인 △외교통상부 2차관 △주중국 공사 △주방글라데시 대사 △주러시아 대사 △주중국 대사 △삼성경제연구소 고문 △한러대화 조정위원장(현)

김유진 기자 klu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