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군, 용병 반란 못막았나 안막았나… 히틀러도 못 뚫은 모스크바 뚫릴 뻔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 그룹의 병사들이 24일(현지시간) 남부 러시아 로스토프나도누에서 철수하기에 앞서 한 소녀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러 정규군 늑장 대응에 의문 제기… “美, 반란 움직임 6월 중순부터 파악”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 그룹의 무장 반란이 하루 만에 극적으로 막을 내렸다. 그러나 수도 모스크바까지 교전에 휩싸일 뻔한 이번 사태와 관련해 용병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밀리기만 한 러시아 정규군의 대응을 두고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25일 외신 등에 따르면, 바그너 그룹은 23일(현지시간) 러시아 국경 검문소를 넘어선 뒤로 그야말로 파죽지세로 모스크바를 향해 내달았다. 그너 그룹은 모스크바에서 500㎞ 떨어진 보로네시주, 350㎞ 거리의 리페츠크주까지 단숨에 치고 올라갔고 모스크바 200㎞ 밖에서 진격을 멈췄다.

바그너 그룹은 러시아 정규군과 간헐적인 교전을 벌이면서도 불과 하루 사이에 1000㎞ 가까운 거리를 진격했다. 이에 따라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의 나치 독일군도 뚫지 못한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내몰리기도 했다.

이 때문에 러시아 정규군의 허술한 대응을 두고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 불만을 품은 군부가 이번 사태에 미온적으로 대처한 게 아니냐는 얘기다.

로스토프주 군 사령부에 ‘무혈입성’했다는 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주장도 이러한 분위기를 뒷받침한다. 프리고진은 텔레그램을 통해 “(로스토프주) 사령부를 접수할 때 총알 한 발도 쏘지 않았고, 어느 누구의 업무도 방해하지 않았다”며 “누구도 죽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 그룹의 장갑차가 24일(현지시간) 남부 러시아 로스토프나도누에서 이동하고 있다. 타스 연합뉴스

일각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선에 러시아 정규군 병력이 집중되면서 본토 방어에 구멍이 난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모스크바는 대테러 작전 체제를 발령하고 각종 보안 조처를 강화했으나, 당일 오후가 돼서야 서남부 외곽에 기관총 포대를 설치하는 등 뒤늦게 경계를 강화하는 모습이었다. 영국 국방부는 일일 정보보고에서 러시아 정규군 중 일부가 “바그너 그룹을 묵인하며 소극적인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하기도 했다.

러시아 정규군의 뒤늦은 대응과 달리, 미국 정부는 이미 지난 21일부터 프리고진이 러시아군 수뇌부를 겨냥한 군사행동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보도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24일(현지시간) “미국 정보기관은 6월 중순 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러시아 국방 기관에 대한 무장 조치를 계획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백악관과 다른 정부 기관에 긴급 보고했다”고 익명의 당국자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백악관 외에도 미 국방부, 국무부, 의회 고위 관계자들이 지난 2주 사이 보고를 받았다. 익명의 당국자는 “지도부에 뭔가가 일어났다고 말할 만한 충분한 신호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준비됐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미국은 푸틴 대통령이 권력을 유지할 것인지, 러시아 핵무기 통제에 불안정이 야기될 것인지 큰 우려를 갖고 있었다고 WP는 지적했다. 미 당국자는 “그 선상에서 많은 질문이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미국은 이것이 러시아 내전으로 비화할 지에 대해 가장 큰 우려를 갖고 있었다고 WP는 덧붙였다.

미국 정보기관은 푸틴 대통령도 프리고진이 무언가 꾸미고 있다는 정보를 받았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미 정보기관 관계자는 “푸틴 대통령이 언제 그 보고를 받았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최소 24시간 이상 전이라는 것”이라고 추측했다.

러시아 정규군의 대응 태세가 논란이 됨에 따라, 프리고진이 이번 반란을 일으키며 축출을 요구한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의 거취도 주목된다. DPA 통신에 따르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쇼이구 장관에 대한 푸틴 대통령의 태도 변화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오남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