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반란 땐 행방 묘연하던 푸틴…연일 공개활동 나서며 ‘태세 전환’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이 28일(현지 시간) 다게스탄의 데르벤트를 방문해 시민들과 사진 촬영하고 있다. 이날 외신은 푸틴 대통령이 세계 곳곳에 구축된 바그너 그룹의 용병 사업 네트워크를 접수하기 위해 조치에 나섰다고 밝혔다. AP·연합뉴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바그너그룹 수장인 예브게니 프리고진(왼쪽 사진)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타스·EPA·연합뉴스

23년 통치 이래 최대 치명상…외부 행보 건재 과시용으로 해석
언론인들과 비공개 간담회도…여론 조성용 ‘메시지 단속’ 관측


용병기업 바그너 그룹의 무장 반란 사태가 수습 국면에 접어드는 가운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연일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어 주목된다. 푸틴은 지난 23년간 러시아를 통치해왔지만, 무장 반란 사태로 통치력에 치명상을 입을 정도로 최대 위기를 맞았다는 평가가 나오는 만큼, 빈번한 노출을 통해 자신의 통치력이 건재함을 과시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29일(현지 시간) 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무장 반란을 일으킨 직후부터 이날에 이르기까지 푸틴 대통령의 행보를 날짜별로 정리해 보도했다. 푸틴 대통령이 자신 앞에 닥친 위기를 풀어가는 방식을 상세히 풀어 보여줌으로써, 의도와 숨은 의미를 짚었다.

먼저 24일 프리고진이 용병들을 이끌고 러시아 남부 로스토프나도누의 군사령부를 장악한 뒤 모스크바로 진격하던 때다. 이때 푸틴 대통령은 직접 대중 앞에 나서는 대신 5분간의 ‘TV 연설’을 통해 프리고진을 반역자로 규정하고 반란자들을 처벌하겠다고 밝혔다. 프리고진의 진격과 푸틴 대통령의 강경 대응 입장이 맞부딪히며 그야말로 모스크바를 둘러싼 긴장이 최고조에 달한 시점인데, 일부 소셜미디어에선 푸틴 대통령이 반란을 피해 전용기를 타고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출발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현지 언론에 "대통령은 크렘린궁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며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나섰다.

그로부터 몇 시간 후 프리고진은 푸틴 대통령의 측근인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의 중재안을 받아들여 사면과 망명을 대가로 반란을 중단하기로 했다.

분위기가 급반전됐지만, 다음날인 25일에도 푸틴 대통령은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국영 로시야 TV와 사전 녹화한 인터뷰를 통해 우크라이나 전쟁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 게 전부였다. 푸틴 대통령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지적 속에, 러시아 정권 수뇌부를 두고 평론가들 사이엔 의문이 제기됐다.

푸틴 대통령이 브라운관을 통해서나마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 건 26일 밤에 이르러서다. 당시 TV 연설에 나선 푸틴 대통령은 프리고진의 반란을 "협박"이라고 깎아내리며 "사태 처음부터 대규모 유혈 사태를 피하도록 지시를 내렸다"고 말했다. 자신의 지도력 덕분에 상황이 더 악화하지 않았다고 강조한 셈이다. 동시에 그는 "러시아 사회 전체가 정부를 중심으로 단결했다"면서 반란에 가담한 자들에겐 선처를 베풀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남부 캅카스 지역의 다게스탄 자치공화국을 방문해 세르게이 멜리코프 공화국 정부 수장과 면담하고 있다. 이날 푸틴 대통령은 민간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의 반란 기간에 전 국민이 자신과 정부를 지지할 것으로 확신했다고 밝혔다. AP·연합뉴스

프리고진의 반란이 중단된 지 사흘 만인 27일 푸틴 대통령은 드디어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레드 카펫이 깔린 크렘린궁의 야외 계단을 밟고 내려와 광장에 마련된 무대에서 보안군, 국가근위대 등을 상대로 공개 연설을 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여러분이 격변에서 조국을 구했고 사실상 내전을 막았다"며 그들의 공로를 치하했다. 28일엔 정상 업무에 복귀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모스크바를 떠나 반란 사태 후 첫 현장 행보에 나서기도 했다. 같은 날 러시아 국영 매체는 푸틴 대통령이 데르벤트 시내에서 자신을 환영하는 군중들에게 다가가 악수하고 함께 사진을 찍는 영상도 공개했다. NYT는 이 같은 행보를 두고 푸틴 대통령이 여전히 대중의 지지를 받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의도한 이미지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프리고진이 일부 러시아 도시에서 주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은 것을 의식한 장면이라는 해석도 있다.

이후 푸틴 대통령은 크렘린궁에서 러시아 언론인들과 비공개 간담회를 가졌는데, 자신을 전면적인 통제권을 가진 지도자로 내세우며 언론 단속에 나섰을 거란 추측이 제기됐다. 뒤이어 푸틴 대통령은 모스크바에서 열린 국내 기술 박람회에 참석해 새로운 안면 인식 기술과 첨단 프린터를 둘러보기도 했다. NYT는 "오랫동안 러시아의 안정을 보장해 온 푸틴 대통령이 평소와 다름없는 이미지를 보여주면서 여론을 통제하기 위해 점점 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곽선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