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반복 고소장에 행정 소모… ‘악성’ 걸러내야”[민원폭탄에 신음하는 대한민국]

‘친애하는 나의 민원인’ 펴낸
정명원 대구지검 상주지청장
“허위고소도 일일이 결과통보”

검찰이 허위 고소장 제출 등의 민원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수사 인력이 한정된 상황에서 악성 민원 사건을 처리하느라 진짜 범죄 피해자 보호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 사이를 가로지르는 서울 서초동 반포대로엔 종종 자신의 고소·민원을 각하한 검사들 실명·사진을 크게 담은 명예훼손성 대형 현수막도 눈에 띈다.

6일 검찰에 따르면 한 지방검찰청은 1년 동안 140회가량 허위 고소장·진정서 등을 제출한 여성 A 씨를 명예훼손과 무고 혐의로 지난 3일 기소했다. A 씨는 지난해 중순부터 8개월간 평소 알고 지낸 병원장이 자신을 추행하고 휴대전화를 해킹하고, 이를 담당한 경찰서장 등이 진술 조서까지 위조했다며 허위 진정을 낸 혐의 등을 받고 있다. 검찰은 전국 검찰청에서 접수된 해당 여성의 고소·진정·신고 800여 건을 전수조사하고, 관련 내용이 모두 허위인 것을 확인했다.

검찰 관계자는 “전국 검찰청별로 ‘고소·고발왕’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과거부터 악성 민원 문제가 심각했다”며 “불필요한 고소·고발로 수사력이 낭비되고 상대방 명예훼손 등의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전국 검찰청에 접수된 고발 사건은 2021년에 비해 27% 증가했다. 대검은 2021년 8월 불필요하게 남발되는 고소·고발 사건을 신속하게 처리하기 위한 지침을 시행하기도 했다. 인권보호관 점검과 검찰시민위원회 심의 등을 거쳐 수사 개시 여부를 결정하도록 한 것이다.

검사 생활 16년 동안 줄곧 형사부 등 일선 부서에 근무하며 다양한 민원인을 접한 정명원(45·사법연수원 35기) 대구지검 상주지청장은 “악성 민원·허위 고소는 오히려 진정한 민원이 건강하게 받아들여지고 작동할 기회를 뺏는다”고 밝혔다.

정 지청장은 자신을 찾아온 피해자·민원인·피고인·증인 등의 사연을 담아 2021년 ‘친애하는 나의 민원인’ 책을 내기도 했다. 정 지청장은 “검찰 민원 시스템은 접수부터 통지까지 체계화됐고 민원 직원들도 친절하게 응대하도록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며 “그러나 민원인들은 이런 것을 악용해 더 많은 것을 반복적으로 요구하고 (민원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결국 진정한 민원을 잘 듣고 반영하기 위해선 그런 악성 민원들이 걸러져야 한다”며 “어떤 분은 반복적으로 한 달에 30건씩 같은 고소장을 내는데, 그것을 처리하고 처분 결과를 다 통지를 해드려야 하는데 행정력이 많이 소모된다”고 강조했다.

염유섭 기자 yuseob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