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뒤 아기 맡기면 ‘보호의무 다했다’ 판단 유기혐의 적용 안 해

8년간 베이비박스 1400여명
일각에선 “유기 정당화” 우려

지난 2015년부터 8년간 ‘출생 미신고 영아’ 2236명의 존재가 드러나면서 이중 상당수가 베이비박스에 맡겨졌다는 사실도 함께 주목받고 있다. 이 기간 베이비박스에 맡겨진 아기는 1400여 명에 달한다. 현행 형법상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두는 것은 ‘영아 유기’에 해당하지만 지난해 베이비박스의 ‘보호 기능’을 인정한 첫 무죄 판결이 나오면서 처벌 기조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맡기는 행위는 영아 유기 등의 혐의로 처벌받을 수 있다. 형법 272조는 영아를 유기한 때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돼 있다. 주사랑공동체교회는 민간기관이기 때문에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맡기더라도 유기 혐의 적용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다만 출생 미신고 영아를 수사 중인 경찰은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맡긴 부모를 모두 처벌하지는 않는다는 방침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관계자와 상의해 인계했다면 처벌 대상이 아닐 수 있다”고 했다. 관리자 상담 후 인계 등 아기에 대한 보호 의무를 끝까지 다한 경우에는 범죄 혐의가 없다고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수사에서 이런 이유로 ‘혐의 없음’으로 사건이 종결되는 사례가 잇따르는 이유다. 법원에서도 베이비박스 관리자와의 상담 여부 등 인계 당시 상황을 고려해 유·무죄를 판단하고 있다. 지난해 7월 서울중앙지법은 영아 유기 혐의로 기소된 친모 A 씨에 대해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교회에 아기를 돌보고 구호하기 위해 항상 사람이 상주했고, 친모가 담당자와 상담을 거쳐 맡긴 사실이 인정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베이비박스의 보호 기능을 인정하지만 처벌하지 않을 경우 베이비박스가 영아 유기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김규태 기자 kgt90@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