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산림경영’ 시대… “‘숲길 인프라’ 확충해 보존하며 활용하자”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시림 속에 조성된 임도가 양 갈래로 널찍하게 뻗어 있다.

■ 국토녹화사업 50년… ‘임업 선진국’으로 가려면

임목 축적은 경쟁력 갖췄지만
원목수출 등 산업 사실상 전무

임도 밀도 獨의 14분의1 수준
숲 경제적 활용 기반시설 빈약

우량나무 선별 벌목으로 소득
유럽선진국 임업 방식 배워야

프랑크푸르트·그라츠=글·사진 김창희 기자 chkim@munhwa.com

국토녹화사업이 50주년을 맞는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황폐산림 녹화에 성공한 유일한 국가로 한국을 평가할 만큼 숲이 울창해졌다. 하지만 독일, 오스트리아 등 중부유럽의 세계적 임업선진국들처럼 값비싼 아름드리나무가 빽빽한 양질의 우량림에서 산주들이 대대손손 소득을 올리며 지속 가능한 산림경영을 유지하는 비중은 아직 높지 않다. 반세기 동안 이룬 녹화 성공 성과를 바탕으로 향후 산림 비전 100년을 잘 설계하기 위해서는 유럽 임업선진국들의 경험과 노하우를 배울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유일 녹화성공국·원목 수출입 격차 1만 배 ‘명암’ = 중부유럽 국가들은 세계적인 임업경쟁력을 갖췄다. 산림청에 따르면 각국 우량림 보유 척도인 임목 축적(㎥/㏊)이 독일 321·오스트리아는 299 등인 반면 한국은 165 수준이다. 한국과 산림 여건이 비슷한 오스트리아의 경우 연간 벌채량이 1984만㎥이지만 한국은 474만㎥이다. 중부유럽 3개 국가의 국내총생산(GDP) 중 임업 비중이 0.8%인 반면 한국은 0.1%에 그친다. 한국의 지난해 원목 수출량은 240㎥로, 사실상 제로 수준이다. 반면 수입량은 260만7000㎥로, 수출보다 1만862배나 많은 구조다. 연간 6조 원 넘는 외화가 목재 수입에 쓰인다. 세계적인 녹화 성공국이라는 성취가 크지만 목재 자급률은 17% 수준으로, 경제적 가치가 높은 숲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독일 티티제 흑림 지역에 지름 1m가 넘는 아름드리 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있다.

◇임도 인프라 부족 가장 큰 문제 = 임업 분야에서 중부유럽 임업선진국들과 한국이 가장 큰 격차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 임도 밀도다. 독일의 임도 망 평균 밀도는 54m/㏊로, 한국(3.9m/㏊)의 14배다. 임도는 인력과 차량의 산림 출입을 가능하게 하고, 임산물의 운반을 원활히 하기 위해 인공적으로 만든 도로로, 선진 임업의 필수요소다. 독일·오스트리아 등에서 임도는 산림의 일부로 간주 된다. 국민도 임도의 존재를 당연시한다. 임도가 산림순환경영의 기초시설이기 때문이다. 임도는 임업기계화와 선택적 벌목(택벌)의 필수시설로, 지속 가능한 산림경영과 숲 경관 보호에 도움을 준다. 실제로 유럽 국가들은 산림마다 거미줄 같은 임도 망을 구축하고, 이를 통해 기계화된 임업을 실행하고 있다. 기후변화로 급증하는 산불과 산림 내 병충해 대응에도 임도가 필수다. 산림에서 휴양을 즐기려는 국민의 접근성을 높이고, 트레킹, 산악자전거, 산악승마 등 각종 레포츠를 즐길 수 있게 하는 것도 임도의 주요 기능이다. 독일 헤센주 산림공사(HessenForst) 요하네스 슈베드 팀장은 “산에 있는 나무와 숲을 손대지 말고 그냥 서 있도록 놔둬야 한다는 주장은 바보 같은 소리”라며 “과거에는 경제적인 목적 위주로 임도를 만들었지만 이제는 산림을 보호하고 재해를 예방하며 국민 여가 휴양 등을 위해서라도 임도를 만들어야 한다. 한국의 진정한 임업 선진화를 위해서는 임도를 대폭 확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내 임업 전문가들은 한국의 적정 임도 밀도가 10.3m/㏊ 수준이라고 말하며 현재 3.9m/㏊ 수준에서 2.5배 이상 증설이 필요한 것으로 보고 있다.

◇천연하종·소면적 택벌·보속 경영…유럽 임업에서 배우는 지혜 = 유럽 임업선진국에서는 임업의 긴 자본회전 기간(대경재 수확 시 60년)의 한계극복을 위해 매년 나무가 자라는 양 만큼 우량나무를 선별해 수확하는 택벌이 일반화돼 있다. 산주가 매년 균등하게 목재 수확을 하면서 소득을 올리고 산림도 영구적으로 존속하도록 하는 소위 ‘보속 경영’이 정착되면서 산주 이익과 산림생태가 공존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오스트리아의 경우 산주별 평균 소유면적이 23.4㏊로, 대부분 산림경영으로 소득을 올리고 있다. 어린나무의 수고생장(높이 위주 생장) 촉진을 위해 나무 간 간격을 좁혀 촘촘하게 자라게 하는 밀식과 숲 가꾸기 주기를 15년으로 장기화하는 점도 유럽형 임업의 특징이다. 대면적을 일시에 베어내는 개벌은 병충해 고사림이 아니면 거의 채택하지 않는다. 박수규 한국임업진흥원 박사는 “우리나라 산림토양은 50년간의 국토 녹화사업 덕에 이제 유기질이 풍부한 양질의 토양이 돼 우량 후계목 생육에 적합하다”며 “다기능 임도 망 확충 등을 통해 임업을 선진화하고 대형 산불 등 산림 재해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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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족산 ‘맨발 황톳길’ 年 100만명 관광… 동해안 임도는 산불 방어선 역할

■ 국내 임도 조성 성공사례

덜 알려져서 그렇지 국내에도 잘 조성된 임도가 수두룩하다. 임도가 지역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효자 관광명소로 변신하거나 수백 년 키워온 국가자산을 지켜내는 등 제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대전 계족산 임도(사진)는 ‘맨발 황톳길’로 명성을 얻으면서 연간 100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전국적인 유명 관광지로 자리 잡았다. 14.5㎞에 이르는 계족산 임도는 지난 1992년 사명감 강한 한 대전시 산림 공무원의 열정 덕에 개설돼 오늘날 명소로 탈바꿈했다.

대전시 녹지직 공무원이던 이상희 사무관(이후 대전시 환경녹지국장 역임)은 하루가 멀다 하고 산림청을 찾아 예산 배정을 호소해 이후 4년간 14㎞ 임도 예산을 지원받는 데 성공했다. 지역 기업인 ‘맥키스’가 이 임도에 주목해 맨발 걷기가 가능한 황톳길을 조성했고 이후 전국 최초의 테마 건강여행길로 알려지면서 대박이 터졌다.

지난해 3월 소중한 국가 자산인 울진 금강송 숲을 초대형 산불로부터 지켜낸 것도 임도다. 당시 울진·삼척 산불은 장장 9박 10일(213시간 43분)간 계속되면서 역대 최대의 산림 피해(1만6302㏊)를 냈다. 500년 이상 된 금강송 보호수·멸종위기식물·산양이 서식하고 있는 산림생태계의 보고가 잿더미로 변할 위기에서 지난 2020년부터 조성된 산불예방임도 10.3㎞가 수호신 역할을 했다. 34억 원을 투입해 새로 개설한 5m 노폭의 산불예방임도를 따라 수천여 명의 진화대를 배치해 최후 방어선을 구축하고 고성능 소방차 10대를 진입시켜 밤새도록 임도 위 절토면에 고압수를 살포해 주불의 기세를 잡을 수 있었다.

김창희 기자 ch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