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백병원 마지막 진료… “반백년 단골인데 어디로 가나”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마지막 대기 82년 만에 폐원되는 서울백병원의 마지막 진료가 이뤄진 31일 오전 본관 신경과에서 환자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백동현 기자

1941년 백인제외과병원 개원
최근 20년 1745억 적자 누적

“두 아이 모두 여기서 태어났고
나도 암치료 받았는데 당황”

직원들, 폐원 효력정지 가처분

“서울백병원 50년 단골 환자입니다. 50년 전 자궁 수술을 받고 13년 전에는 유방암 수술까지 받았는데, 저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죠?”

31일 모든 환자 진료를 중단하는 서울 중구의 종합병원 서울백병원에서 만난 김옥연(86) 씨는 이날 ‘마지막 진료’를 받고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두 번의 큰 수술 이후 13년째 두 달 간격으로 경기 수원시에서 한 시간 거리의 서울백병원을 찾아왔다. 김 씨는 이날 다른 병원 이전을 위한 진료의뢰서만 받고 간단히 진료를 마칠 수밖에 없었다. 아들 신주현(62) 씨는 “폐원 소식을 뉴스를 보고 처음 알았다”며 “이제 어느 병원으로 가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1941년 ‘백인제외과병원’으로 문을 연 서울백병원이 이날 오후 5시부로 진료를 종료한다. 82년 만의 폐원이다. 지난 6월 학교법인 인제학원은 서울백병원 폐원을 의결했다. 서울 도심 한가운데 위치해 상주인구가 줄어들고 대형 대학병원의 출현과 최근 20년간 누적된 적자(1745억 원) 등으로 더 이상 운영이 불가피하다는 이유에서다. 서울백병원은 외과로 시작돼 종합병원으로 성장했으며 역사만큼이나 오랜 환자들이 주로 내원하고 있다. 특히 인접한 중구 을지로에 인쇄소가 많았던 1960∼1970년대에는 작업을 하다 다친 노동자들이 많이 찾았으며, 팬데믹 기간에는 주변 도심 직장인들의 코로나19 검사 등을 책임지는 코로나 전담병원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서울백병원의 오랜 환자들과 소속 직원들은 평생을 함께해 온 병원의 갑작스러운 폐원 결정을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30년간 이 병원에 가족들의 건강을 맡겨왔다는 박석용(68) 씨는 “1985년, 1987년 두 딸 모두 이 병원에서 태어났고 4년 전에는 이 병원에서 암 진단을 받고 현재도 다른 치료를 받고 있다”며 “너무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의정부시에서 온 오현경(40) 씨는 “2년간 이 병원에서 부인과 정기진료를 받았지만 3주 전 갑자기 병원이 문을 닫는다는 문자를 받고 황당했다”며 “주변에 좋은 의사를 찾기가 어려운데 병원 재단이 환자를 외면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조영규 가정의학과 교수는 “인제대병원 82년 역사가 여기에서 시작됐고, 코로나19 등 감염병에 대응해왔던 중요 기관”이라며 “새 이사진이 폐원을 결정한 것은 역사 지우기와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중환자실과 병실은 지난주부터 비었다.

의사 24명과 직원 200여 명은 서울중앙지법에 이사회의 폐원 의결에 대한 효력 정지 가처분 소송을 내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교수들은 지난 28일 기자회견을 열고 “적자를 과장해 폐원이 불가피한 것처럼 위장했고 직원 전보에 대한 협의를 진행하지 않는 등 근로기준법을 무시했다”며 인제학원에 대한 교육부 감사를 촉구하기도 했다. 서울백병원 관계자는 “당분간 의무기록과 영상CD 등 일반 서류 발급을 위한 통합발급센터는 계속 운영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강한 기자 str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