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은 1945년 춘천간호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간호장교로 자진 입대했다. 1952년 군의관으로 근무하던 을지재단 설립자 범석 박영하 박사와 전쟁터에서 부부의 연을 맺고, 오늘날의 을지재단을 함께 일궈왔다. 1953년 대위로 예편한 전 회장은 남편과 함께 1956년 서울 을지로에서 을지재단의 시초인 박 산부인과 병원을 개원하며, 헌신적인 내조로 을지재단의 성장에 기여했다. 후학양성을 위해 1997년 10억 원의 개인재산을 출연, 재단법인 범석학술장학재단을 설립하기도 했다. 2010년에는 사재 37억 원을 사회에 환원했으며 2013년 남편 박 박사가 타계하며 남긴 전 재산 172억 원을 학교와 재단에 기부했다. 유족으로는 아들 박준영 을지재단 회장, 딸 박준숙 범석학술장학재단 이사장, 사위 최원식 을지대 의대 석좌교수, 며느리 홍성희 을지대 총장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 노원을지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3일 오전 11시.
고인은 1945년 춘천간호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간호장교로 자진 입대했다. 1952년 군의관으로 근무하던 을지재단 설립자 범석 박영하 박사와 전쟁터에서 부부의 연을 맺고, 오늘날의 을지재단을 함께 일궈왔다. 1953년 대위로 예편한 전 회장은 남편과 함께 1956년 서울 을지로에서 을지재단의 시초인 박 산부인과 병원을 개원하며, 헌신적인 내조로 을지재단의 성장에 기여했다. 후학양성을 위해 1997년 10억 원의 개인재산을 출연, 재단법인 범석학술장학재단을 설립하기도 했다. 2010년에는 사재 37억 원을 사회에 환원했으며 2013년 남편 박 박사가 타계하며 남긴 전 재산 172억 원을 학교와 재단에 기부했다. 유족으로는 아들 박준영 을지재단 회장, 딸 박준숙 범석학술장학재단 이사장, 사위 최원식 을지대 의대 석좌교수, 며느리 홍성희 을지대 총장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 노원을지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3일 오전 11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