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크 마인드’끼리 글로벌 경제블록 이합집산… 모호성 유지, 도움 안돼”[현안 인터뷰]

  • 문화일보
  • 입력 2023-10-11 09:05
  • 업데이트 2023-10-11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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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시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이 지난 9월 26일 세종시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집무실에서 진행된 문화일보와 인터뷰에서 앞으로의 국제 경제 질서에 대해 “‘비슷한 가치를 지닌’ 국가끼리 이합집산을 통해 새롭게 형성이 될 것”이라며 과거처럼 모호한 입장을 취하는 것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곽성호 기자



■ 현안 인터뷰 - 이시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

다자 FTA 문제있다면 개정
양자·소다자 협력 활용해야

韓 · 美 공조 명확한 시그널
中과의 실용적 접근도 필요

안보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대외 경제정책 펼쳐나가야


인터뷰 = 박정민 경제부 차장 bohe00@munhwa.com
정리 = 전세원 기자 jsw@munhwa.com

최근 국제정세는 오리무중 그 자체다.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전쟁을 벌인 러시아는 북한과 밀착하며 국제 안보에 긴장을 불어넣고 있다. 안보가 우선시되며 경제적 친소 관계도 안보개념에 따라 이합집산하고 있는 모습이다. 윤석열 정부도 지난 8월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를 통해 3국 공조에 방점을 확고히 둔 상태다.

국제정치의 ‘합종연횡’은 경제 분야로까지 번지고 있다. 각국은 미·중 간 ‘디커플링(탈동조화)’을 우려하면서, ‘디리스킹(위험제거)’으로 나아가고 있다. 특히 미·중 갈등은 무역·수출 규제를 넘어선 기술·전략 경쟁으로까지 격화됐다. ‘경제안보’ 시대 도래에 한국의 안미경중(安美經中, 안보는 미국·경제는 중국)도 위기에 처했다. 동맹의 가치를 우선시하되, 한국 대외무역의 20% 비중을 차지하는 중국 시장을 무시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한국의 대외경제 정책은 어디로 향해야 할까.

지난 9월 26일 세종에 위치한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에서 만난 이시욱 원장은 향후 글로벌 경제블록이 “라이크 마인드(Like minds·유사입장국)를 통해 이합집산할 것”이라면서 “기존의 다자 자유무역협정(FTA)이라도 핵심 자원의 문제가 있다면 개정을 할 때며, 양자뿐 아니라 소다자 협력체도 활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이 원장은 “과거엔 모호성이 중요했지만 이제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면 국익에 도움이 안된다”면서 한국은 안보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대외경제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KIEP는 글로벌 거시경제 및 통상에 대해 특화된 국책연구기관이다.

―미·중 간 반도체 패권 경쟁이 심화하고 있다. 미국의 의도와 중국의 대응, 어떻게 진행될 것으로 전망하나.

“미·중 패권경쟁은 다들 알다시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무역 관세 분야에서 패권경쟁을 시작한 것에서 비롯됐다. 그러다 경제안보 개념이 포함되며 기술경쟁으로 중심축이 넘어왔다. 지금은 미국이 비슷한 가치를 갖고 있는 국가(라이크 마인드)와 동조하면서 중국의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이다. 디커플링을 얘기하다 디리스킹을 얘기하고 있다. 주의할 점은 유럽연합(EU)과 미국의 디리스킹은 성격이 다르다는 점이다. 유럽은 공급망을 다변화하자는 의미지만, 미국은 ‘셀렉티브(selective) 공급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공급망을 전부 다 바꿀 수는 없으니 첨단산업 위주로 반도체와 2차전지 등의 기술, 기후문제 등에 대해 중국을 규제하면서 디커플링해야 한다는 취지다. 미국 주요 인사들의 발언을 보면 셀렉티브 디커플링 기조는 계속 갈 것이다. 과거에는 정부의 군사기술을 민간으로 이전했지만 지금은 민간 기술을 정부가 군사용으로 쓰고 있다. 이를 ‘이중용도 목적기술’이라고 한다. 이런 기술의 수출을 통제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전문적인 인력의 제약도 시행하는 등 압박 수위를 점차 높일 것이다. 중국의 경우, 반도체 분야를 예로 든다면, 중국의 경쟁력은 여전히 많이 떨어진다. 최근에는 화웨이가 7나노급 반도체를 생산했다.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미국의 산업 전반에 대한 규제 자체가 중국이 이 같은 성장을 지속하는 것을 어렵게 할 것이다.”

―향후 국제 통상질서는 어떻게 재편될 것으로 보는가.

“향후 국제 통상질서는 미·중 간 양극체제에서 점차 이해집산형 다극체제로 전환될 전망이다. 중국도 상하이 포럼 등을 통해 외연을 넓히고 있다. 지금 다자적 협의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채널은 주요 20개국(G20)이다. 인류 공동·공급망 교란·기후 협약 등 협력 분야가 많기 때문에 G20을 채널로 쓰면서 이끌어 가는 형태가 돼야 한다. 세계무역기구(WTO)가 유명무실화됐고, 전체적으로 봤을 때 G20이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힘 있는 국가들이 모이기 때문이다.”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은 답보 상태인데 가입 필요성이 있나.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와 같은 새로운 경제 협력체는 어떻게 활용해야 하나.

“과거에는 자유무역 전성시대였고 신의성실 원칙에 따라 사람들이 룰을 지켰다. 그런데 최근에는 다자간 무역에서 지정학적 고려가 들어가고 경제안보라는 개념이 생겼다. 경제적 이익과 혼재되며 다자간 협력할 수 있는 기존 WTO 체제는 유명무실해졌다. CPTPP, RCEP와 같은 메가 FTA는 관세·비관세 철폐, 서비스·투자 시장 개방 등 시장 접근 확대에 초점을 두는 반면, IPEF는 디지털 전환, 공급망 교란, 기후변화 등 변화하는 국제환경에 부응하는 국제규범을 정립하는 데 목적을 둔다는 점에서 차이점이 존재한다. 즉, 무역확대를 기본 목표로 하는 FTA와는 달리, IPEF는 공정하고 회복력 있는 무역질서를 구축하는 것이 주요 목표다. 그러므로 IPEF는 기존의 FTA를 대체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이를 보완하는 협의체라고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IPEF에서 우리에게 유리한 통상규범을 도출하는 동시에 CPTPP 가입을 통해 경제영토를 넓히는 방향으로 통상정책의 방향을 이끌어 가야 할 것이다.”

―KIEP는 10월 경제 성장률 수정 전망 때 중국 성장률은 낮추고 세계 경제 성장률은 높일 예정이라고 알려졌는데 주요국 경제가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은.

“국내 경제 예측은 하지 않지만 대외여건을 정성적으로 평가하자면, (정부가) 상저하고를 이야기할 때는 중국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을 전제한 것이다. 그러나 중국 지방 부채는 물론 내수도 좋지 않다. 청년실업도 있는 만큼 중국이 쉽게 살아나지 않는 상황에서 상저하고는 여전히 이슈다. 긍정적인 점은 미국이 생각보다 너무 견조하다. 미국 4분기에 성장률을 새로 바꿨는데 고용시장이 안정적이고, 미국 쪽으로 우리의 수출도 좋다. 중국에서 좋지 않은 부분을 미국에서 만회하고 있다. 우리 경제에선 세 가지 이슈가 있다. 하나는 중국 경기 회복 여부다. 8월 수치를 보면 전면 부양책은 아니지만 부동산 분야 규제를 완화해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 중국이 건설 투자 등 부동산 위주로 발전했는데 과연 신산업 분야에서 어떻게 모멘텀을 유지할지가 경기회복의 관건이다. 또 다른 하나는 인플레이션과 고금리다. 미국 고용시장이 안정화됐지만,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목표치인 물가 2%는 멀었다. 고금리가 이어질수록 우리 수출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마지막은 국세수입이다. 올해 세금이 덜 걷혀 내년엔 일시적으로 국내 수요를 제약할 수도 있다. 세입 여건이 좋지 않으면 정부도 재정투입을 많이 못 하니까 정부 지출이 악화한다.”

―윤석열 정부에서 한·미·일 정상회의 공조를 강화하고 있다. 향후 협력은 어떻게 진행돼야 하나.

“실용적인 접근이 중요하다. 과거엔 국제경제에서 안보적 성격이 없어 전략적 모호성을 띠는 게 중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안보가 경제개념에 들어온 상황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에서 안보는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다. 안보협력 파트너는 당연히 미국이다. 지난 한·미 정상회담은 외교 안보에서 명확한 시그널을 줬다. 국제사회에서 예측 가능성을 높여줬고, 이젠 동북아에서 인태 지역으로 확대했다. 또 한·미·일 정상회담 자체가 외교·안보 측면에서는 중요한 계기였다. 협력을 전제로 해서 경제협력뿐 아니라 기술협력까지 외연을 확장한다는 의도로 이번 정부에서 한·미·일 정상회담을 추진한 것으로 보인다. 안보는 협상할 수 없는 중요한 기본 전제다. 중국도 안보를 놓고 한국과 협상할 수 없을 것이다. 중국도 그런 측면에서 인정할 것이다. 다만 현 정부 들어 안보에서 중국은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가 거론됐었는데 이제는 중국도 중요하다. 시진핑 주석이 우리나라에 온다는 얘기도 있고, 안보 문제에 있어 협력도 가능해졌다.”

―재임 기간 중 달성하고 싶은 목표는.

“1990년에 KIEP가 설립됐다. 당시 소련이 붕괴하고,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이 이뤄질 때인데, 자유무역 전성시대가 도래해 무역통상이 중요해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과 자유무역협정(FTA) 등에 대해 KIEP가 연구를 했고, 세계 각 지역 연구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세상이 바뀌었다. 국제 거시 부분이 특화된 곳은 국내에서 한국은행 이외 여기밖에 없다. 통상 질서의 불확실성이 고조되고 있어 우리 연구원 역할이 커졌다. 전반적으로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하고 시너지 내는 부분을 중심으로 조직 개편도 단행했다. 지금은 가장 중요한 것이 경제 안보다. 책임감을 갖고 어려운 통상 환경에서 국가가 어떻게 중장기적으로 방향을 잡아야 할지에 대해 역할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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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사우디 개입해 확전 땐 ‘글로벌 인플레이션 확대·금리 인상’ 악순환”

■ ‘이-팔 전쟁’ 영향은

美 호황·글로벌 시장 불안
‘强달러’ 당분간 지속될 것


이시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은 글로벌 금융시장에서의 달러 강세는 당분간 유지될 것이며 지난 7일 발생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이 같은 ‘강(强)달러’ 현상은 더욱 장기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최근 결정된 미국의 대중 수출규제에서 중국 내 우리 반도체 기업에 대한 규제 완화에 대해서도 “한·미·일 정상회담의 성과”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라고 평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에 대한 이 원장의 의견은 인터뷰 이후 10일 추가 질의를 통해 보완했다.

이 원장은 이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에 대해 “양국 모두 산유국이 아니므로 유가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다”고 전제했다. 하지만 전쟁이 얼마나 길어지느냐에 따라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클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이번 전쟁의 전개방식에 따라 향후 유가 및 국제금융시장에 파급력이 매우 클 수도 있다”며 “가령 2014년이나 2021년의 경험처럼 양자 간 무력 충돌이 비교적 단기간에 종료될 경우 유가나 국제금리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겠지만, 이란·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거대 산유국들이 직접 개입하는 방식으로 전쟁이 확전되거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사례처럼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중동발 지정학적 위험 확대로 글로벌 인플레이션 확대와 금리 인상의 악순환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2014년 7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조직 하마스는 가자지구에서 무력 충돌한 적 있지만, 그 기간은 한 달 반 정도에 불과했다. 2021년 5월에도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충돌했지만 단기간에 마무리가 됐다. 하지만 지금의 충돌은 전면전을 예고하고 있어, 글로벌 원유·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은 전쟁의 전개 과정에 따라 점차 확대될 것이란 게 이 원장의 전망이다.

이 원장은 글로벌 금융시장의 강달러에 대해서도 미국의 호황과 현시점의 시장 불안을 근거로 당분간 지속될 것이란 분석을 내놨다. 그는 “견조한 경제 여건에 따라 고금리를 유지하는 미국과는 달리, 중국·일본 등은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고 있어, 당분간 달러 강세가 유지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한편 미 행정부가 수출통제 당국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경제안보대화 채널을 통해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중국 내 반도체 공장을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로 지정해, 별도 건별 허가 없이 수출통제 적용이 무기한 유예됐음을 통보한 것에 대해서도 “유예가 확실했다”고 전했다. 미국 정부의 이 같은 결정으로 국내 반도체 업체들은 미국산 반도체 장비를 중국 공장에 별도 허가 절차나 기한 없이 공급이 가능하게 됐다. 이 원장은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정상들이 상호 공조가 중요하다는 입장을 확인했었고, 기술동맹을 강화하는 측면에서 우리 측의 이 같은 리스크를 해소했다고 볼 수 있다”고 의미를 설명했다.

◇이시욱(56)

△서울 출생 △서울고 △연세대 경제학 학사 △프랑스 파리 9대학 응용경제학 석사 △미 미시간대 경제학 박사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KDI국제정책대학원 기획처장 △한국국제통상학회장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

박정민 기자 bohe00@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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