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오부치 선언’ 확장 나설 때다[시평]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25년 전 21세기 韓日 파트너십
월드컵 공동개최와 한류 토대
文 시절엔 퇴행, 尹정부가 복원

美 매개 없는 양자관계도 중요
입국 간소화 등 체감 정책 펴고
글로벌 사우스 개발 협력 필요

1998년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이 지난 8일로 25주년을 맞았다. 당시에는 많은 반대가 있었던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일본의 식민지시대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사죄를 바탕으로 미래 지향적 한일 관계의 이정표를 만들었다. 이 선언으로 2002년 월드컵 공동 개최와 한류 붐이 확대되면서 양국의 우호적 관계는 강화됐다. 그러나 그 후에는 과거사 문제를 둘러싸고 다시 대립과 갈등이 되풀이됐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강제징용 문제로 한일 관계가 최악의 시기를 겪기도 했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이 강제징용 문제를 결단함으로써 한일 관계는 정상화되고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렇다고 한일 관계의 우호적인 기반이 탄탄한 것은 아니다. 한일 갈등은 언제든지 또 되풀이될 수 있다.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영향으로 일본이 사죄와 반성을 되풀이하는 것에는 거부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가슴이 아프다’는 발언으로 한국에 다가왔지만, 일본 정치권에는 사죄와 반성은 더는 해서는 안 된다는 분위기가 여전히 남아 있다. 반면, 한국은 일본의 사죄와 반성이 한일 관계의 전제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상반된 인식으로 인해 과거사 문제는 언제든지 대립할 수 있는 시한폭탄이 될 수도 있다.

또한, 국내외 환경도 한일 관계의 개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내년 미국 대선 결과는 한미일 협력의 방향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등장하면 한미일 협력이 계속될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또한, 기시다 정권의 향방도 한일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기시다 총리는 국내 기반이 확고하지 않아 정치권의 요구에 휘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국내외 환경의 변화는 한일 관계에 긍정적인 요인으로만 작용하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한일 양국은 지속 가능한 우호적인 관계를 정착시키기 위해 더욱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업그레이드된 한일 공동선언(김대중·오부치 2.0 선언)이 필요하다.

첫째, 한일 관계 개선을 통해 양국 국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정책들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많은 한국인이 일본을 방문하지만, 여전히 일본 입국 절차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입국 절차를 간소화하기 위해 양국은 라이선스를 발급하는 방안도 생각해봄 직하다. 또한, 과거 정부 때 악화한 한일 관계 때문에 민간 교류의 규모가 축소된 적이 있다. 이전 정부 시절에 중단됐던 교류를 하루빨리 재개하면서 교류를 더 많이 활성화해야 한다. 그리고 오는 2030년 부산엑스포에 대한 일본의 지지도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부산엑스포는 2025년 오사카엑스포와 연계해 한일 관계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둘째, 한미일 협력의 제도화를 통해 불투명성을 줄이는 데 노력해야 한다. 한미일 안보 협력의 발전 가능한 범위는 한일 간 안보 협력이 어디까지 가능한지에 달려 있다. 한미, 미일 사이는 동맹 관계지만, 한미일 3자는 동맹 관계가 아니다. 결국 한미, 미일 동맹의 동력으로 한일 안보 협력에서 난도(難度)를 낮추고 갈등을 가능한 한 줄이는 방향으로 협력을 이뤄 가야 한다. 미국이 주도해 한미일 협력의 동력을 만들어 나가기보다는 한일이 서로 협력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내는 노력이 계속될 때 한미일 안보 협력도 바람직한 결실을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 글로벌 공급망에서 한일 경제안보는 시급히 협력해야 할 부분이다.

셋째,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한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인·태 전략과 관련해 한일은 해양안보와 경제안보 및 ‘글로벌 사우스’의 지원과 협력에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한일 양국이 서로의 전략을 일치시키기 힘들지만, 그 중점을 해양안보에서 경제안보 및 글로벌 사우스의 개발 전략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글로벌 사우스에 대한 한일 협력은 국제사회에서 자유민주주의를 확대하는 데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다.

이제, 한일 양국이 감정의 대립을 넘어 실질적인 협력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윤석열·기시다의 한일 공동선언(김대중·오부치 선언 2.0)의 기반을 확실히 다져나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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