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로 40년전 ABBA 재현…동공 움직임까지 똑같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전성기 모습 보러왔다” 3000명 운집 디지털 휴먼으로 재탄생된 그룹 아바는 무대 위에서 실제로 춤추고 노래를 불렀다. 1970∼1980년대 아바에 열광했던 60∼80대 관객들은 스탠딩석에서 선 채로 90분에 걸친 공연을 만끽했다. Johan Persson 제공

■ ‘아바 보이지’ 英공연 직접 보니

70대 멤버들 전신 스캔해 변환
관객 3D안경 안쓰고 공연 즐겨
특수효과 등 제작비 2300억원

‘맘마미아’ 포함 명곡 20곡 불러
고령의 팬들 울고 웃으며 ‘떼창’

런던=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지난 12일 영국 런던 퀸 엘리자베스 올림픽 파크의 공연장. 40년 전 은퇴한 전설적인 그룹 아바(ABBA)를 보기 위해 3000명이 운집했다. 잠시 후 무대 아래에서 올라온 이들이 40년 전 발표한 은퇴곡 ‘더 비지터’(The visitors·1981)로 복귀 인사를 전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넷의 외모는 30대 중반. 사실 이들은 ‘아바 보이지’(ABBA Voyage) 프로젝트로 구현된 디지털 휴먼(Digital Human)이다. 하지만 이들은 춤추고 라이브 연주에 맞춰 노래하며 대화도 나눈다. 직접 보지 않으면 믿을 수 없는 광경이다. 3D 안경 따위는 착용하지 않는다. 첫 곡을 마친 후 키보드 주자 비에른 울바에우스가 걸어 나왔다. 비에른은 이제 70대 중반이지만 무대 위 그는 창창한 30대다. “오랜만이다. 지금 이 나이가 제게 가장 잘 어울리지 않느냐”는 농담에 관객들은 박수로 답했다.

흔히 스크린 위 컴퓨터 그래픽이나 홀로그램 쇼 정도를 생각하기 쉽지만 무대 위 3차원 인물뿐 아니라 무대 좌우 대형 스크린 속 모습 또한 사람과 진배없다. 머리칼이 흩날리고, 움직임에 따라 의상이 접힌다. 노래를 부를 때 입속 혀의 움직임, 동공의 섬세한 변화까지 잡아내고, 고음을 낼 때 살짝 잡히는 미간의 주름도 선명하게 보인다. 국내 매체 최초로 이 공연을 취재한 문화일보도 공연 초반, 의심의 눈으로 지켜봤지만 불신의 물음표가 확신의 느낌표로 바뀌는 데는 한 곡이면 족했다. 그 뒤엔 오롯이 재림한 아바 무대에 빠져들게 된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디지털 휴먼을 만드는 소스를 얻기 위한 ‘모션 캡처’ 촬영 전 특수 의상을 입고 있는 70대 아바의 모습.

이 ‘디지털 아바’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아바타’와 ‘반지의 제왕’에서 쓰인 모션 캡처 기술로 만들어졌다. 70대 아바 멤버들을 전신 스캔해 이를 30대로 변환한 후 무대 위 3차원 디지털 휴먼으로 완성했다. ‘스타워즈’ 시리즈를 연출한 조지 루커스의 특수효과 기법도 힘을 보탰다. 제작비만 1억4000만 파운드(약 2300억 원).

이날 공연에서 아바는 ‘워털루’ ‘김미 김미 김미’ ‘페르난도’ 등 주옥 같은 자신들의 명곡 20곡을 불렀다. 초반 하이라이트는 ‘맘마미아’였다. 아바의 손짓에 관객들이 일제히 일어났고 떼창이 시작됐다. 비에른이 봉으로 연결된 키보드를 360도 돌리는 특유의 퍼포먼스로 환호를 끌어냈고, 두 여성 보컬 안니프리드 륑스타드와 앙네타 펠트스코그는 경쾌한 안무와 함께 시원시원한 가창력을 뽐냈다. 안니프리드는 “우리가 40년 만에 돌아올 거라고 누가 생각했을까”라고 물었고, 자기 젊음의 한 시절 아바에 열광했던 관객들은 입으로 웃고 눈으로 울었다. 마지막 곡 ‘댄싱퀸’(Dancing Queen)이 나올 때 모두가 최고의 댄서가 된 듯 몸을 흔들었다.

이어진 앙코르 요청에 다시 무대에 오른 아바의 선택은 ‘더 위너 테이크스 잇 올’(The Winner Takes It All)이었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전성기 모습으로 무대에 선 스스로를 향한 찬사 같았다. 잠시 후 퇴장하려던 관객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무대 옆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기 때문이다. 70대 아바였다. 서로 껴안고 격려하며 “공연 잘 봤느냐”고 묻자 관객은 또 한 번 환호했다. 그런데, 그들 역시 디지털 휴먼이었다. 실제로 진짜 아바 멤버들이 개막 공연을 비롯해 간간이 아바 보이지를 찾지만 그들과 디지털 휴먼을 단박에 구분해내는 관객은 드물다는 후문이다.

아바 보이지는 지난해 5월에 시작해 매주 6∼7회 공연 중이다. 누적 관객 수는 100만 명을 넘어 이미 제작비를 벌써 회수했다. 1972년에 데뷔한 혼성 그룹 아바는 비틀스 이후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그룹으로 2010년에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