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나한테 바라는 게 없는데… 왜 이렇게 힘겹지?[소설, 한국을 말하다]

  • 문화일보
  • 입력 2023-10-30 09:05
  • 업데이트 2023-10-30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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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일러스트 = 의자 작가



AI(인공지능)는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꿀까. 가속하는 저출산과 고령화, 사교육 광풍, SNS가 발신하는 끝 모를 욕망 속에서 한국인은, 또 한국 사회는 어디를 향해 가는가.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이 이 질문에 답한다. 9월 4일부터 연재에 들어간 문화일보의 ‘소설, 한국을 말하다’는 문단에서 가장 첨예하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소설가 15명이 들여다 본 ‘지금, 한국’을 짧은 소설에 담았다. 매주 월요일 한 편 씩 공개되며, 12월까지 계속될 예정.

(8) 김화진
번아웃 - 빨강의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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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우연은 몇 주째 시뻘건 음식을 먹고 있다. 검붉거나 시뻘건 것. 어떻게 봐도 맑지는 않고 용암 같은 것을. 불닭볶음면이나 엽기떡볶이, 마라탕과 국물 닭발과 열라면을 번갈아 고른다. 그것은 출퇴근 길 멍하니 보기 좋은 유튜버들이 곧잘 선택하는 메뉴로, 우연은 그 외 메뉴를 떠올리지 못한다. 빨간색이 아니면 식욕이 작동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 것을 먹으면 식도부터 대장까지 긁히는 느낌이 든다. 그 느낌은 뜨거운 동시에 어딘가 시원해서, 후련한 것인가 하는 착각이 든다. 그런데 후련한 게 맞나? 까져서 피가 나는 살갗을 손톱으로 긁는 느낌에 가깝지 않나? 우연은 생각한다.

저녁에 매운 것을 먹고 아침에 화장실 거울 앞에 서면, 움직이는 얼굴을 본다. 얼굴이 스스로 움직인 지도 몇 주 째다. 별다른 신호가 없다가도 하루에 몇 번이고 눈 아래 근육이 불쑥불쑥 떨렸다. 그때마다 사무실에 있는 손거울을 들어 비춰 보면 스스로 움찔거리는 근육이 보였다. 눈 아래가 보이지 않는 포크에 찔린 듯이 움푹 들어갈 때도 있었고 미세하게 찌르르 떨릴 때도 있었다. 며칠 지나면 사라지겠지 하고 뒀던 증상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고 우연은 그것이 무척이나 신경 쓰였다. 혼자서 불쑥거리는 눈 밑을 보고 있자면 깊은 곳에서 화가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이상하게 씰룩이는 얼굴을 갖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요즘엔 자꾸 이런 사소한 것으로부터 화가 났다. 맹렬한 화도 아니었다. 작은 성냥불 같은 화. 작은 마찰로 몇 초 사이에 붙어 버리고 짧은 나무를 다 태우지도 못한 채 혼자 푸시시 꺼지고 마는. 아무에게도 옮겨붙지 못하고 혼자만 태우는 화. 눈 밑이 이렇게 성가시게 된 게 언제부터였나. 그리고 도대체 언제까지 이럴까. 요즘 우연이 가장 많이 생각하는 문장은 ‘도대체 언제 끝나나’ 하는 것이다. 그 질문은 우연의 입버릇이 되었다. 우연은 제발 뭔가가, 자신의 상태를 줄곧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들이 끊어지고 사라지길 바랐다.

우연은 눈 밑 경련이 최근 자기 상태를 나타내는 것 같았다. 별거 아니지만 사람을 참 짜증스럽게 하는. 병원에 달려가면 유난스러운 사람이 되는. 그런데 또 잘 낫지도 않아 지지부진 사람을 괴롭히는. 피로와 피곤의 상태. 성가심과 불편감의 상태. 우연을 지치게 하는 것은 작은 것들이었다. 우연은 핸드백을 만드는 회사에 다녔지만, 우연이 하는 일은 일정 체크 및 온갖 심부름, 손님맞이에 필요한 일이었다. 주차와 입장 안내, 모임 장소 프린트해 회사 곳곳에 붙이기, 대표의 스피치용 피피티와 대본 만들기, 음식 케이터링 예약, 손님들이 가지고 갈 기념품과 선물 포장. 우연은 회사 대표의 두 번째 비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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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이 회사를 굴리는, 메인 상품을 만드는, 이 회사에서 이삼십 년간 근무하고 있는 바느질 장인들은 번아웃을 호소하지 않았다. 그들은 진짜 질병을 호소했다. 눈의 피로, 시력 저하, 손 떨림, 근육통, 디스크. 그러나 우연은 아니었다. 우연이 호소할 수 있는 건 중압감, 불안감, 강박증, 조바심 같은 것이었다. 사람들에게 보일 수 있는, 증명할 수 있는 통증 같은 건 없었다. 아주 가끔 행사를 위해 신은 구두에 뒤꿈치가 까져 흐른 피? 행사 준비를 위해 정신없이 뛰어다니다가 어딘가에 부딪혀서 든 멍? 있다면 그 정도였다. 동료들에게 보여주면 어유 어떡해, 하고 잠깐 동정을 받을 만한 것들.

우연은 마침 읽은 책에서 자신과 똑같은 상태를 발견한다. “나는, 정말로 중병을 앓으며 어리광을 부리기에는 너무 건강하고, 뭔가 쓸모 있는 일을 하고 다니기에는 너무 녹초가 되어 있다.”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 속 문장이었다. 녹초. 우연은 그것이야말로 자기 상태를 완벽히 설명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출근해서 수첩에 오늘 해야 할 일만 적었을 뿐인데도 녹초가 되고 만다. 해내야 하는 일과 관련된 모든 것을 떠올리면 머리부터 가슴까지 짓눌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은 점점 더 거세지면서…… 우연을 터뜨려 버릴 듯이……. 하지만 그건 상상일 뿐이었고 존재하는 몸은 아무런 변화 없이, 그저 눈가만 조금 떨릴 뿐 여느 때와 같았다. 터지지도 찌부러지지도 않았다.

그럴 때면 임우연은 숨을 잘 쉬어봐. 심호흡을 해. 그렇게 스스로에게 말을 건다. 스스로에게 말을 걸면 스스로가 대답을 하는데 그 목소리는 무척 짜증스럽다. 숨이 막힌다니까? 목구멍이 꽉 막힌 것 같다고! 엄마가 입혀 준 스웨터 아래에 내복이 말려 올라간 불편감을 설명할 수 없어 답답해 죽겠다는 어린아이의 목소리 같다. 서른이 넘은 뒤 누구에게도 그런 식으로 말할 수 없지만, 스스로에게는 할 수 있다. 투덜거리고 찡얼거리고 웅얼거린다. 업무 시간이 끝나고 비서실 불을 끄고 나오며 우연은 언제나 스스로와 대화한다. 웅얼거리는 말투, 울먹이는 목소리로.

아무도 나한테 바라는 게 없는데 대단한 게 되라고 하지 않는데 왜 이렇게 힘겹지? 버거워서 다 떨어뜨릴 것 같고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 같은데 아슬아슬 넘어지지 않고 있다. 금방이라도 헛디딘 발을 바로잡지 못하고 쿠당탕 넘어져 이마와 코와 이빨을 다 박살 낼 것 같다. 손바닥과 무릎이 시뻘겋게 까질 것 같다. 그런데 뭐……. 까진다고 별일 있나. 없잖아. 그런데 왜 이렇게 두렵지. 넘어지면 다치는 게 아니라 넘어진 자리가 뻘이라서 넘어진 채 가만히 있으면 코와 입과 귀에 온통 진흙이 차서 숨 막혀 죽을 것 같은 기분이야.

대표나 선배 비서에게 지적이라도 들은 날이면 우연은 그 한마디를 내내 생각한다. 찌푸린 미간과 불퉁한 목소리를. 퇴근길에 다 잊으려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지하철을 타고 역에 내려서 집으로 가는 길에 하늘 한번 쳐다보지 않고 휴대폰에 코를 박고 웃지도 않은 채로 수많은 인간과 동물과 음식이 나오는 동영상을 보다가 집에 도착해서 문을 열고 들어서면 허겁지겁 매운 걸 먹고 드디어 침대에 늘어지는데, 가만히 누워 있다가 또 그 생각을 한다. 내가 나를 지치게 해. 나는 왜 이럴까? 임우연이 도저히 모르겠다 너란 애는 왜 이렇게 생겨먹었냐? 하고 물으면 임우연이 그것도 모르냐? 그것도 몰라? 하고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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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한테 왜 바라는 게 없어. 너한테 온통 바라지. 네가 필요할 때마다 있길 바라지. 하찮아 보이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을 조용히 해내길 바라지. 걸리적거리지 않고 불필요한 소리를 내지 않고 불필요한 표정을 짓지 않고 불필요한 몸짓을 하지 않고. 네가 하는 일은 특별하고 멋진 일이 아니라 못하면 티가 나는 일. 그런데 너는 너에게 그런 걸 기대하는 게 싫어. 네가 그런 직업을 가졌지만 싫어. 그 분열이 너를 지치게 해. 작은 게 쌓이고 쌓여서 널 높은 데로 올린 거야. 그냥 걷다가 넘어지는 게 아니라 외발자전거로 외줄을 타다가 떨어지는 거라 무서운 거야. 이게 우리가 올라탄 고리야. 임우연과 임우연은 한숨을 푹 내쉰다.

사실 그만두면 아무것도 아니야. 우연은 그렇게도 생각해 본다. 그러나 그만두고 싶지 않지. 우연은 사실 잘하고 싶었다.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네 명의 비서 중에서도 잘한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그런데 잘한다는 것은 누군가의 입속의 혀처럼 구는 일. 우연은 그런 일을 잘하는 편이 아니었다. 익숙해지기는커녕 갈수록 버거웠다. 더 노력해야 하나? 여기서 더? 나는 잘하는 회사원이 되고 싶기도 하지만 뚜렷한 내가 되고 싶기도 한데. 회사가 바라는 나와 그냥 나 사이에서 이렇게 괴로운 건 보통인가? 모두 그런가? 자아는 스트링 치즈처럼 몇 갈래로 찢어지는 것이군. 갈래갈래 찢긴 임우연들이 임우연을 피곤하게 만든다. 퇴근길 임우연이 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생각은 스트링 치즈, 불닭볶음면에 올려 먹으면 맛있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주 피곤해도 다시 생각해 보자. 영혼은 찢어져도 아직 몸은 찢어지면 안 돼. 독수리한테 심장을 쪼이며 피를 철철 흘려도 계속 사는 건 신이고 나는 인간이니까. 우연은 어떤 분열을 멈출 수 없다면, 올라탄 고리에서 내려올 수 없다면 다른 고리라도 끊어야 하지 않는가 생각한다. 이를테면 유튜브를 보고 선택하던 빨간 음식의 역사는 좀 잘못되었다…… 항상 목구멍이 부은 것 같고 위장에 뜨거운 용암이 출렁거리는 것 같고 이런 것은……. 그런 게 모여 눈가의 경련이 되고 경련이 일 때마다 임우연은 자신이 어딘가 뒤틀린 사람이 된 것 같다고 느낀다. 그런 걸 느끼지 않기 위해 새로 쓸 수 있는 것은 빨강의 역사뿐이다, 라고 우연은 생각한다.

나 자신의 역사를 바꾸기엔 지금 좀 기력이 없고. 지금 가능한 것은 조금 다른 빨강, 입맛은 돌지만 너무 맵지 않고 담백하고 단순한 빨강을 먹는 일. 메뉴를 생각하려 애쓰는 동안 퇴근길 몇 개의 지하철역이 지나간다. 집에 가까워질수록 초조해졌지만 임우연의 목소리가 임우연에게 명령한다. 침착할 것. 속으로 치읓을 발음하는데 침샘에서 침이 솟는 게 느껴졌다. 메뉴가 떠올랐다. 적당히 시고 달고 짠 붉은 토마토 스파게티. 토마토와 루꼴라와 치즈가 들어가는. 그 모든 재료에서 신선한 맛이 나는. 단순한 빨강을 먹자. 몸속에 맑은 빨강이 돌도록. 우연은 슈퍼에 들러 사야 할 재료를 중얼거리며 나머지 역을 지난다. 토마토, 루꼴라, 치즈, 하고 반복해서 생각하는 동안은 떨리는 눈가가 신경 쓰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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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잔잔하게 스트레스가 쌓이면 더 무섭죠”

■ 작가의 말


회사 일로 녹초가 된 채 집으로 돌아와 시뻘건 음식을 먹는 우연에게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는 독자들이 많을 것 같다. 위를 괴롭히며 식도염을 달고 사는 이들 중엔 작가 김화진도 포함이다. 소설가이자 직장인인 그는 퇴근 후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음식을 주문해 허겁지겁 먹고 침대에 눕는다며, “다른 분들은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 비슷한지 어떤지 궁금한 마음에” ‘빨강의 자서전’을 썼다고 이야기한다.

우연을 지치게 하는 건 작은 것들이다. 겉으로 보이지 않는, 진단될 수 없는. 작가의 눈길은 그 작은 것들에 가닿는다. “작고 잔잔한 스트레스가 쌓이는 게 더 무섭다”는 생각에서다. 작가의 바람은 단순하고 솔직하다. “더 적게 일했으면 좋겠어요. 그렇다고 제가 소설에 주 4일이 시행됐다, 야호! 하고 쓰면 또다시 그 환경에 걸맞은 다른 서글픔이 소설에 침투할까 봐 일단은 스스로를 챙기는 사람을 써봤습니다. 그것이 제가 아직 도달하지 못한 모습이기도 해서요.”

■ 김 작가는…

1992년생. 2021년 등단. 소설집 ‘나주에 대하여’와 ‘공룡의 이동 경로’를 냈다.

박세희 기자 saysa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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