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부 R&D 예산 늘렸지만 기술 더 뒤처져… “긴축편성 원칙 공개해야”[창간 32주년 특집]

■ 창간 32주년 특집 - 新 부민강국 6대 키워드

尹정부 ‘제로베이스’ 예산 강조
방만재정→ 건전재정 전환 목표
108개 사업 통폐합 내년 3.4조↓

윤석열 정부가 내년도 예산안 편성 과정에서 ‘제로베이스’를 강조한 이유는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한 연구·개발(R&D) 예산의 집행 실적이 부진했기 때문이다. 특히 모든 사업을 처음부터 다시 평가해 예산 배분을 결정하는 제로베이스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방만 재정에서 건전 재정으로 전환하려는 현 정부의 국정 철학이 담긴 개념으로 꼽힌다.

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송언석(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지난 정부에서 R&D 예산은 큰 폭으로 증가했지만 이를 받은 기관들은 제대로 집행조차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송 의원 측이 2022 회계연도 국회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문위원 검토 보고를 파악한 바를 보면, R&D 예산 관리를 위해 만들어진 연구비통합관리시스템(통합이지바로 등)에 기록된 지난해 R&D 전문기관이 받은 정부 출연금(16조3450억 원) 중 2조5463억 원(15.58%)이 미집행 잔액으로 남았다. 특히 기업 연구소 중심의 실용 연구와 관련한 정부 출연금(8조1865억 원) 중 2조5228억 원(30.82%)이 미집행됐다. R&D 예산은 늘었는데도 중국과의 기술 격차가 좁혀지고 일본과의 격차는 벌어지는 등 예산 투입 대비 효과가 크지 않다는 잡음도 끊이질 않았다. 이 때문에 현 정부는 1983년 도입됐던 제로베이스 방식을 통해 108개 사업을 통폐합하는 방식으로 내년도에 3조4000억 원을 줄였다.

제로베이스는 모든 재정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 효율성과 타당성을 따지는 덕분에 정부의 재정상태를 개선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 연평균 9%가 넘는 초고속 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1∼2차 석유파동과 중화학 공업 육성 정책 등으로 인플레이션이 지속하고, 경상수지가 갈수록 나빠지는 바람에 체질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당시에 제기됐다. 결국 1983년 김재익 경제수석의 건의로 전두환 정부는 제로베이스 원칙에 따라 1984년 예산을 동결해 물가를 낮추고, 일반회계 재정수지를 적자에서 흑자로 돌렸다. 이후 1987∼1988년 통합재정수지(총수입-총지출)가 흑자를 기록하는 계기가 됐고, 노무현 정부에서는 한 발 더 나아가 재정통계를 정비해 2005년부터 ‘총지출 증가율’을 예산안에 적용했다.

제로베이스를 통해 내년도 총지출 증가율(2.8%)은 2005년 이후 2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달성했지만, 재정 건전성 강화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내년도 예산안이 건전 재정 기조에 부합한다고 보기는 어려운데 그 이유는 정부와 여당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나라살림) 적자 비율을 3% 이내로 유지하겠다고 했지만 내년도 예산안에서 이 수치는 3.9%로 예측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석 교수는 “정부가 내년도 세입을 너무 낙관적으로 추산했는데, 경기가 강하게 반등하지 않으면 내년에도 세수 결손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재량 지출 증가율(3.5%)을 더 줄여 관리재정수지 적자 폭을 낮춰야 한다”면서 “R&D 예산은 그동안 많이 증액됐다는 점에서 긴축 재정에 맞춰 줄여야 하지만 편성 원칙과 삭감 기준을 명확히 공개해 논란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전세원 기자 jsw@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