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보다 진한 ‘남남’사이…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다[작가의 서재]

  • 문화일보
  • 입력 2023-11-10 09:11
  • 업데이트 2023-11-10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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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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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는 물보다 진하다.” 언어에는 한 사회의 문화와 관습이 깃들어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자주 떠올리는 관용구 중 하나다. 표현에 동의해서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특징을 저만큼 잘 드러내는 말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친밀한 사이를 두고 ‘가족 같다’고 하거나, 가족 구성원끼리 심각한 갈등을 겪을 때 ‘남보다 못하다’고 일컫는 것 또한 마찬가지.

저런 표현과 마주칠 때마다 가족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곤 했다. 미디어에서는 재산 분배나 보험금 수령과 같은 특정 상황에서 뒤늦게 찾아와 돈만 받고 떠나는, ‘남보다 못한’ 가족의 사연이 종종 소개되곤 한다. 한편 누구보다 가깝고 신뢰하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법적 관계가 아니라는 이유로 어려움을 겪는 ‘가족 같은’ 이들의 사연 또한 자주 등장한다. 사실상 가족임에도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 실질적 타인임에도 혈연이라는 이유 하나로 가족으로 묶여버린 이들. 이러한 상황에서 은서란의 ‘친구를 입양했습니다’(위즈덤하우스)는 가족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지, 그러한 가족의 역할이 실제 그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의 삶과 이어지기 위해서는 어떤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저자는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귀농하지만, 보수적인 시골 마을에서 비혼 여성 홀로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음을 경험한다. 그러던 중 우연히 같은 마을에 살며 가까워진 이웃에게도 비슷한 고충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함께 살기로 한다. 다른 듯 닮았고 성향과 의식이 비슷했던 두 사람은 그렇게 5년간 함께 생활하며 실질적 가족이 된다. 서로를 믿고, 의지하고, 책임지고, 돌보면서.

그러나 그와 같은 ‘실질적’ 관계에는 어디까지나 한계가 존재했다. 저자가 건강상의 문제로 응급실에 가게 됐을 때, 사실상의 보호자였던 동거인에게는 어떠한 권리도 없었던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저자는 비상 상황에서 법적 인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서로의 건강과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동거인과 법적으로 관계를 맺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아직 이들처럼 ‘남남’인 사이를 묶어줄 제도나 장치가 전무한 현실. 결국 고심 끝에 자신보다 50개월 어린 동거인이자 친구 ‘어리’를 입양한다.

젊은 비혼 여성이라는, 농촌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희귀한 처지의 그가 귀농하기까지의 사연과 준비 과정에서 겪은 에피소드가 가벼운 미소와 함께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한편, 친구를 입양하기까지의 연유와 과정은 읽는 이들에게 가족에 관한 중요하고도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점차 변화해 가는 가족의 모습과 그걸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는 어떤 형태여야 하는지, 출생률이 하락하는 것을 넘어 0으로 수렴하는 현재 우리 사회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활동반자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오래전부터 존재했으나 입법까지는 여전히 요원해 보이는 현실이다. 책이 입법을 앞당기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한승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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