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편향 혁명史의 균형 잡기[뉴스와 시각]

  • 문화일보
  • 입력 2024-02-20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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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회경 전국부장

우리나라 사람들은 프랑스혁명을 봉건적 신분제를 타파하고 시민사회와 자본주의의 발전을 위한 토대를 마련한 전형적인 시민혁명으로 이해하고 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세계사 검인정 교과서 내 프랑스혁명 기술과 평가를 보면 표준적인 프랑스혁명사를 확인할 수 있는데, 대부분 긍정 일변도이고 좀 더 나아가 혁명 예찬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다. 이는 프랑스 마르크스주의 역사학 프레임에 여전히 갇혀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정통주의적 해석이 다소 철 지난 인식이라는 점이다. 마르크스주의에 바탕을 둔 정통주의는 프랑스혁명을 하나의 목적(사회주의 혁명)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으로 인식했다. 즉 사회주의 혁명은 1917년 러시아혁명으로 실현됐으니 러시아혁명을 예고하는 혁명으로, 프랑스혁명을 사회주의 혁명 전 단계인 부르주아 혁명으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농업국가였던 구체제 프랑스에서 부르주아 혁명이 가능할 수 있었는지 의문의 여지가 많다.

혁명 과정에서 발생한 과도한 폭력 역시 문제다. 불과 1년의 공포정치 기간에 50만 명이 투옥되고 3만5000∼4만 명이 처형됐다는 사실은 프랑스혁명의 또 다른 얼굴이다. 수정주의 역사학자 프랑수아 퓌레는 “공포정치는 전쟁이라는 상황에서 발생한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혁명 과정에서 생겨난 필연적인 현상”이라며 “러시아혁명은 공포정치를 구현한 자코뱅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이어받았다”고 주장했다. 프랑스혁명은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위대한 실험인 것은 분명하나, 민중이 계몽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진행된 혁명은 엄청난 부작용을 낳을 수밖에 없었고 이후 소련, 나치 독일 등 전체주의 체제의 젖줄 역할을 했다는 가혹한 평가까지 받은 것이다. 수백 년간 정통주의의 아성이었던 프랑스혁명사는 20세기 후반 이후 수정주의 해석의 거센 개입으로 어느 정도 균형을 찾았다 할 수 있다. 공포정치는 그동안 누려왔던 상대적 면책의 혜택을 상실했고, 농민들이 혁명정부가 성직자들을 교회에서 쫓아내고 자신들을 강제 징집하는 데 반발해 반란을 일으켰다가 대거 학살당했던 ‘방데 전쟁’ 역시 반(反)혁명 프레임에서 벗어난 것이 대표 사례다.

이승만 대통령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이 화제다. 이 대통령은 현재의 우리나라를 있게 한 주인공이면서도 수십 년 동안 프랑스혁명과 마찬가지로 커다란 오해에 휩싸여 있었다. 공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채 과에만 모든 관심이 집중돼 형편없는 취급을 받았다. 더 나아가, 안심하고 서울에 남으라고 연설한 뒤 한강 다리 폭파해 민간인을 희생시켰다는 이른바 ‘런(run)승만’ 등 다양한 누명까지 뒤집어썼다. 이 대통령에 대한 폄훼는 애국심 저하로도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적지 않다. ‘건국전쟁’의 김덕영 감독은 “우리가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을 객관적이고 건조한 사실에 기초해 이야기하니 사람들이 충격을 받은 것 같다”며 “그동안 문화 콘텐츠가 모두 그의 과오에만 치우쳐 있었기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 애썼다”고 말했다. 이번 기회에 우리나라에서도 역사의 균형이 잡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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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회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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