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인 것이 불행할 때 앓는 병, 거식증[시인의 서재]

■ 시인의 서재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은 일정 기간 일부러 굶거나 폭식하는 사람이다. 그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은 그로 인해 고통받는 자를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겠노라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이다. 그는 사는 동안 불안이나 불행에서 비켜난 운 좋은 자거나 타인의 고통에 무감한 사람일 게다. 그런 자에게는 이 책을 권하고 싶진 않다. 읽어도 이해하기 힘들지 모른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 ‘이해하고 싶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식습관은 한 존재가 살아가는 태도를 보여준다. 식습관 때문에 건강하거나 건강하지 않은 게 아니라, 건강하거나 건강하지 않기에 비로소 식습관이 생긴다. 해들리 프리먼의 ‘먹지 못하는 여자들’(아몬드)은 거식증으로 고통받아온 화자가 자기 경험을 토대로, 거식증에 걸린 사람들의 심리를 면밀히 톺아본 책이다. 저자는 아홉 번의 입원과 퇴원을 거치며, 청소년기에 시작해 성인이 되어 서서히 회복하기까지 일들을 회고 형식으로 기록한다. 이 과정에서 다른 중독에 빠지거나 불안과 강박증세를 보이기도 하지만 자기 병증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며 나아진다. 거식증은 보통 완치가 어렵고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저자는 거식증이 단순히 음식이나 다이어트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거식증의 원인은 “더 뿌리가 깊고 감춰져 있으며 복합적”이다. “나는 내가 아니고 싶고, 나인 것은 불행해. 나는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48쪽)

거식증은 존재 불안에서 기인하고, 불안을 통제하려는 욕망으로 위독해지며, 자기혐오로 지속된다. 거식증 환자는 섭식을 통제함으로써 내면의 힘을 감지한다고 믿는다. 음식을 먹지 않는 일을 해내며 성취감까지 느낀다. 이때의 성취가 진짜 성취가 아닐지라도 순간의 불안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믿는다. 거식증 환자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일 능력이 없을 때, ‘다른 나(먹지 않아 마른 나)’를 만드는 데 몰두하며 현실을 회피한다. 알코올 의존이나 다양한 강박증세를 보이는 병증과 겹쳐지는 부분이 있다.

책을 읽으며 인간이 얼마나 불안에 취약하며 타인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에 빠질 수 있는지, 자신을 보호하는 동시에 징벌하는 방식으로 나빠질 수 있는지 생각했다. 거식증이 대부분 청소년기에 발병하며 환자 중 90% 이상이 여성이란 점, 발병 전 대부분이 유순하고 ‘착한 아이’였다는 점은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사회가 아이들에게 어떤 인간형(여성형)을 공교히 요구하고 있는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박연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