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의 ‘투자 가치’만 좇는 유목민 시대 막 내린다[기고]

■ 기고 - 김추동 인천도시공사 주거복지본부장

집은 단순히 ‘주거’라는 물리적 공간을 넘어 휴식, 문화 등 삶 전반의 장소다. 시대와 인구구조의 변화로 주거 패러다임은 바뀌고 있고 투자처인 집의 시대가 저물며 우리는 그 경계의 끝에 있다. 집은 화폐로 직접 교환이 가능한 경제 자본의 지위에서 사람의 실제 삶의 가치를 증명하는 문화 자본으로 변화한다. 투자 네트워크는 건재하지만 주거를 삶으로 이해하며 경관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궤적도 확인할 수 있기에 집의 관념을 경제뿐 아니라 사회, 문화, 육체와 정신을 품는 장으로 환원할 수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여전히 정주 가치가 붕괴한 주거의 투자화로 서울은 국가 내에서 초국적 지위를 갖는다.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어떤 장소에 살거나 머물고 평화롭게 기거하며 만족해하거나 편안해야 한다”며, 집이 뜻하는 ‘본래적 거주’로써 인간 자신의 존재 구현을 강조했다. 그러나 현실은 경제적 가치를 좇아 늘 이동을 생각하는 유목민이고 집은 잠시 체류하는 몽골 초원의 게르다. 거주지에 대한 숭고함은 상실했고 아련한 고향 같은 정주 열망도 사라졌다. 경관은 지난 세대가 오랫동안 거주하며 남긴 삶과 일에 관한 무언의 흔적이 만들어낸 풍경이다. 여행자는 정주자다. 그들은 거주지를 확보하고 타인의 공간을 가로지르며 행복을 경험한다. 하지만 유목민은 행선지 없는 영원한 순례자일 뿐이다. 진정한 주거지는 여행을 떠났다 돌아와 휴식할 수 있는 기대 공간이다. 그리고 정주는 삶의 체계 속에서 이동을 예측하며 위험 없는 삶을 반복할 수 있는 토대다. 이동은 전쟁, 가뭄 등을 피해 ‘더 나은 안정된 삶’을 찾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정주를 열망하면서도 끊임없이 더 큰 몫을 좇는 유목이 우리의 모습이다. ‘살아갈 집’의 부재와 돈을 좇는 ‘이동’에 삶은 무질서하고 불안하다.

4차 산업혁명, 직업, 주거환경, 가정과 국가의 변화로 정주의 개념 또한 변화 중이다. 포틀랜드시멘트로 상징된 건설의 패러다임이 3D 프린팅, 사물인터넷(IoT)의 결합, 태양광과 풍력 등을 통한 지속 가능 주거로 바뀌고 있고 인공지능(AI)이 건축물의 가격을 낮출 것이란 전망도 우세하다. 주거의 개념이 전복되는 시점에 대한민국은 여전히 투자 주거에 포섭돼 추세를 놓치고 있다. 지상파 TV가 당연했던 때 유튜브 시청이 요원하게 여겨졌듯, 기술의 발전에 따라 지금은 당연한 소유의 주거를 넘어 접속 서비스, 리좀(rhizome)적 구독 개념으로 주거가 대체될 시대도 생각할 수 있다. 서둘러 우리는 집을 소유하는 개념의 소멸과 투자를 위한 집의 인식 변화의 경계에서 주거와 삶의 미래에 관한 진지한 사유를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