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말고 내 님 찾아… 청춘 남녀 “나는 절로”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16일 충남 공주 한국문화연수원에서 진행한 ‘나는 절로’의 참가자들이 아침 산책 데이트를 즐기고 있다. 조계종사회복지재단 제공

■ 조계종 ‘만남 템플스테이’ 인기

남녀 30명 1박2일 단체 미팅
일곱 커플 성사돼 ‘역대 최다’
불교 신자 아니어도 신청 가능

발우공양·아침산책 데이트
저녁엔 술자리 대신 ‘불멍’
“짧은 시간이지만 호감 충분”

‘아, 그냥 돌아갈까.’

지난 15일 오전 충남 공주의 한 수련원에 모여든 청춘 서른 명의 얼굴엔 언뜻 이런 기색이 스쳤다. 단체 버스를 타고 오면서 자기소개를 했지만, 여전히 어색하다. 안내에 따라 웰컴센터에서 명찰과 일정, 법복을 배부받는다. 사찰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에게 제공되는 법복으로 갈아입고 나서는 약간 ‘체념’한 듯한 분위기.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며 슬금슬금 다른 참가자들을 살피기 시작한다. 가볍게 대화도 나눈다. 문득, 기대감이 생긴다.

‘인연을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아.’

‘나는 솔로’ 촬영장인가 싶지만, 아니다. 여기는 수행 문화 대중화를 위해 대한불교조계종이 운영하는 한국문화연수원. 긴장과 설렘이 교차하는 이 젊은이들은 ‘나는 솔로’를 표방한 조계종 단체 미팅 프로그램 ‘나는 절로’에 참가한 20∼30대들이다. 명찰에 쓰인 이름은 주최 측이 정해준 가명. ‘옥순’ ‘영철’ 등 ‘나는 솔로’의 참가자들이 사용하는 ‘유명한’ 이름도 눈에 띈다. 이들은 1박 2일 동안 다양한 활동을 펼치며 ‘제짝’ 찾기 모험에 나섰고, 이번 편에선 총 14명이 인연을 만나 마침내 활짝 웃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커플 매칭에 성공한 참가자 주영(이하 가명) 씨와 옥순 씨. 조계종사회복지재단 제공

조계종사회복지재단에 따르면, 일곱 커플의 탄생은 역대 최다 매칭률이다. 참가자 호영(가명) 씨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지금 감정 그대로 밖에서도 잘 이어 나가려 한다”며 소감을 전했다.

조계종은 2012년부터 ‘만남 템플스테이’란 이름으로 청춘 남녀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이 행사를 진행해왔다. 지난해부터 ‘나는 절로’로 이름을 바꿨고, 최근엔 불교 신자뿐만 아니라 일반에까지 널리 알려져 화제 몰이 중이다.

조계종사회복지재단 관계자는 “인연에는 종교가 중요하지 않다. 애초 신청서에 종교를 적지 않아 불자 등 특정 종교 신자의 비율은 알 수 없다”고 전했다. 또, ‘나는 절로’로 개편 후 문의 및 접수가 급증했다. 이 관계자는 “2012년 프로그램 시작 당시엔 스무 명을 채우기도 힘들었지만, ‘나는 절로’로 개편 후 첫 회 모집 때엔 담당자 전화가 마비될 정도였다”고 덧붙였다.

보건복지부와 협력한 이번 편은 남녀 각 15명씩 30명을 모집했는데, 총 248명이 지원해 8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선발 기준은 사연의 간절함. 결혼, 출산 않는 시대라지만, 진중한 만남을 갈망하는 청춘들 역시 많다는 증거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이후 쉼, 마음챙김, 명상 등이 시대의 키워드가 되면서 템플스테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나는 솔로’ 예능이 주목 받으며 ‘나는 절로’의 흥행을 견인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최근 3년간 템플스테이 예약자를 살펴보면, 20∼30대가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또, 20대 예약자의 비율이 전체의 33%(2023년 기준)로 가장 높았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만남 첫날의 풍경.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조계종사회복지재단 제공

참가자들은 1박 2일 동안 총 세 번의 1 대 1 대화 혹은 데이트 시간을 가졌다. 첫날 상대를 바꿔가며 진행한 차담 시간에 대화를 통해 서로를 파악했고, 이후 여자들의 선택으로 저녁 공양 데이트, 이튿날 산책 데이트를 했다. 이번 행사의 특징은 첫날 ‘저출산 대응 인식 개선’ 교육부터 받고 시작한다는 것. 또, 최근 ‘힙’한 사찰로 유명한 홍대 선원의 준한스님 지도로 조계종이 ‘K-명상’으로 내세우는 선명상도 체험했다. 하이라이트는 술 없이 고요한 모닥불 ‘불멍’ 타임. 이때 일곱 커플의 마음이 ‘통’했다. 진행 요원에게 보내는 문자로 서로에게 호감이 있는 상대방을 확인했다.

16일에는 산책과 마곡사 참배가 이어졌다.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참가자들은 자연스럽게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었다는 평이다. 또 다른 참가자 수희(가명) 씨는 “큰 기대 없이 신청했는데, 예상보다 잘 짜인 프로그램 덕에 소중한 경험을 하고 좋은 분도 만났다”면서 “사랑은 쟁취, 용기, 타이밍이라는 걸 깨달은 1박 2일이다”고 전했다.

재단 대표이사 묘장스님은 “저출산 고령화 문제는 우리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 앞으로도 다양한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나는 절로’의 다음 편은 8월 중 진행된다. 자세한 내용은 조계종사회복지재단 누리집(www.jabinanum.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