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쪽 같았지만 담백했던… 당신의 삶은 밝은 햇살이었습니다[그립습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1988년 제가 군 복무를 할 때 면회 오신 아버님(왼쪽)과 함께 찍은 사진.

■ 그립습니다 - 나의 아버지 박상준(1934∼2024)

늘 조용히 미소로 삶의 여정을 걸어오신 아버님은 지난 5월 9일 하느님 곁으로 가셨습니다. 한평생 아버님께 사랑만 받고 자라왔지만 저는 결혼도 안 하고 아버님께 해드린 것이 없습니다. 아버님의 선종 한 달 전, 폐암 3기인 것을 알아야 했던, 폐렴으로 돌아가시게 한 불효자인 저로서는 좀 더 아버님께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 것이 죄송합니다.

아버님에게 동국대 사학과 김창수 명예교수님은 동국대 1년 선배님이셨습니다. 아버님은 동국대 재학 중 사회에 반감을 느껴 자퇴하시고 조용히 동대문에서 옷 장사를 하셨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군부대의 수사를 받는 고초를 겪으셨는데, 그 후 억울함을 인정받으셨는지 퍼시픽 호텔에서 60세까지 일하시며 저희 형제를 뒷바라지하셨습니다.

저는 아버님이 뼈 아픈 시대를 묵묵히 이겨오신 발걸음을 응원합니다. 젊은 시절 무엇 하나 할 수 없었던 군부독재 시절, 교사의 길이 싫으셨던 것이 아닌지 또는 유난히 대쪽 같으신 기질은 아니셨는지 생각해 봅니다.

제가 군대에 입대하게 되었을 때 아버님의 걱정은 크셨습니다. 아버님은 처음에 군에 가셨을 때 대학생이라고 사단장님 당번병으로 차출되어 편하게 군 생활을 하시다가 일반병으로 내려와 생활이 힘드셨던 기억을 떠올리셨습니다. 그래서 내성적인 데다가 학교생활에 주눅 들어 한 제가 어떻게 적응할까 하시는 걱정이 크셨습니다. 군 생활 초기 한 달에 한 번씩 면회 오신 아버님께 감사드립니다. 어려운 생활 살림에 저를 살뜰히 보살펴 주셨음을 감사드립니다.

평생 아버님과 한집에 살았지만 무언가 말할 추억이 없는 건 저의 무심함 때문일까요. 유독 아버님은 텔레비전만 보시고 별말씀이 없으셨던 것 같습니다. 2020년쯤 어머님이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 눈물을 흘리시며 “내가 먼저 가야 하는데…”라고 하셨던 아버님. 어쩜 저희에게 의무감을 갖고 사셨던 건 아닌가 싶습니다. 아버님을 잘 이해하지 못한 점 죄송합니다.

아버님은 2019년 치매 판정을 받으셨습니다. 2021년 말 저는 퇴직하고 아버님을 잘 모시려고 했으나, 집에 불이 날 뻔한 사고가 세 번이나 일어난 탓에 2022년 6월에 요양원으로 모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1년 10개월 만에 아버님은 떠나셨습니다.

올해 아버님이 병원에 입원하시기 전, 어머님이 T6 압박골절을 당하셨습니다. 저는 어머님을 집에서 간호하고 있어서 동생이 아버님을 모셔야 했지요.

아버님 장례식 첫 이틀간 제가 식장에 함께하지 못했던 건 어머님의 종합병원 진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발인 날엔 사촌 누님이 어머님을 돌봐주셔서 제가 발인절차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아버님을 천주교 서울대교구 용인공원 묘원 봉안담에 모실 때 밝은 햇살이 내리비쳤습니다. 그걸 보며 아버님의 삶이 축복의 삶이셨다는 깨달음을 받았습니다.

서울 종로구 명륜동의 토박이로서 인생을 담백하고 깨끗하게 살다 가신 모습을 사랑합니다. 장모님의 작은 아버님이 김상옥 의사님이시라며 아내를 고생 안 시키시려고 노력하신 삶을 저의 마음에 새깁니다.

아버님은 제가 구글에서 ‘park jin ho poet’으로 검색되는 것을 자랑스럽고 행복하게 여기셨습니다.

아버님, 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아들 박진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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