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물풍선이 쏘아 올린 ‘북한 민주화’[시평]

고상두 연세대 명예교수

평화통일은 반세기 이상 소요
첫 단계는 북한 개혁정권 수립
北주민이 주역 南은 간접 지원

정보 유입 대상 크게 확대하고
정부는 메시지 관리 집중해야
‘통일공공외교센터’ 필요하다

통일은 어렵다. 평화통일은 더 어렵다. 독일의 경험에 비춰볼 때, 남북한 합의 통일을 하려면 북한 주민들이 통일 의사를 자유롭게 결정하고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누리려면, 북한 헌법 제67조로 보장된 ‘언론, 출판, 집회, 시위와 결사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를 묵살하는 정권의 교체가 필요하다.

지난 70여 년 동안 남한에서는 몇 차례의 정권교체가 있었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정권이 무너졌다. 하지만 한국적 민주주의는 아직 완벽하지 않으며, 계속 공고화의 길을 가고 있다. 북한이 민주화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반세기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이며, 평화통일은 그 후에나 가능할 것이다.

북한 민주화의 첫 번째 단계는 개혁·개방 정권의 탄생이다. 북한 내부에는 중국·베트남과 같은 방식의 사회주의 모델을 선망하는 계층이 있다. 그들은 개혁·개방이 이뤄지면 북한 주민의 일차적 인권인 생존권은 최소한 보장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북한 정권교체의 사명은 북한 주민의 몫이다. 외부에서 이식된 민주주의보다 자력으로 쟁취한 민주주의가 체제 변화의 역행과 같은 회귀적 현상을 잘 이겨낼 수 있다. 한국이 할 수 있는 일은 과거 민주화 과정에서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은 것처럼 북한 주민을 간접적으로 돕는 것이다.

탈북민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해 북한의 김여정은 오물풍선을 보내며, 표현의 자유라고 정당화했다. 국군은 확성기 방송으로 대응했다. 남북한이 서로 맞대응을 하면서 표현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냉전 시대 자유유럽방송은 언론의 자유가 없는 소련 공산권 주민에게 대안 언론의 역할을 했다. 폐쇄적인 국가의 주민은 외부 소식을 통해 당국의 선전 선동이 허위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정권을 불신하게 됐다. 동서독 분단 시절 동독 주민은 서독의 방송을 시청했다. 그들은 낮에는 사회주의, 밤에는 자유주의 생활을 했다.

일반적으로 민주화의 촉발 요인은 집단적 시위이지만, 동독의 경우에는 시위와 탈주라는 두 가지 변수가 함께 작용했다. 1989년 여름 동유럽 국가에서 휴가를 보내던 동독 주민들이 대량 탈주하면서 몇 달 만에 베를린 장벽이 붕괴했다. 동독 공산당은 주민들이 원하는 이동의 자유를 허용하는 대신 정권을 지키려고 했다.

대북 전단이나 확성기로 북한 주민에게 알 권리를 제공하는 노력을 해외 거주민을 대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외부 세계에 있는 외교관, 무역일꾼, 파견 근로자, 유학생 등이 탈주해 북한의 폐쇄성을 침식시키면, 북한 정권은 내부 주민을 달래기 위해 폭압적 통치를 완화하는 ‘애민정책’을 펴게 되고, 이것은 북한 주민의 인권을 개선하는 간접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정보란 국내외 여론을 움직이는 힘이며, 오늘날 군사·경제·외교에 더해 국력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가 되고 있다. 소프트 파워 시대를 맞아 북한 주민과 국제사회에 한반도 통일의 당위성과 유용성을 전파하는 통일 공공외교가 필요하다.

오늘날 정보의 전달 환경이 다원화하고 있다. 방송·전단·확성기 외에 소셜미디어(SNS)와 유튜브 등 전달 매체가 다양해지고 있다. 전달 주체 또한 정부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와 개인까지로 다변화하는 등 1인 미디어 전성시대가 도래했다.

변화하는 정보 환경 속에서 정부는 메신저 역할을 하기보다 올바른 메시지 관리를 하는 것이 적절하고, 이를 위해 ‘통일공공외교센터’를 설립할 필요가 있다. 이 센터의 역할은 자유와 인권에 기반한 통일 담론을 개발해 국내외 메신저들에게 제공하고 그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것이다.

인간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 정보 취득권도 인간이 누려야 할 기본권이다. 그러므로 북한 당국이 주민의 눈과 귀를 막는 인권 억압 정책을 외부의 노력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북한 주민에게 중국과 베트남 주민의 삶이 개혁·개방 이후 어떻게 달라졌는지, 구동독 주민이 얼마나 통일에 대해 만족하는지 알려줘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럼 없는 세상’이라고 선전하면서 고문과 공개처형을 자행하는 폭압적인 북한과 연일 시위와 집회가 일어나지만 자유롭고 풍요로운 남한의 체제적 차이를 알려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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