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 철통보안 - 은밀한 범죄 온상… 두 얼굴의 ‘비밀 메신저’[10문10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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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문10답 - CEO 체포로 논란 ‘텔레그램’

한쪽서 지우면 메시지 삭제
수시로 서버 옮겨 추적 어려워
10년새 이용자 3500만→9억

검열·수사 요청에 비협조적
성착취·마약거래 등 범죄 악용
‘딥페이크’ 사태로 다시 조명

‘표현의 자유’ vs ‘대중의 안전’
플랫폼 규제 놓고 갑론을박
러-서방 갈등 확산 가능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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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 메신저의 대명사로 잘 알려져 있는 텔레그램이 전 세계적으로 각종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그 발단은 파벨 두로프 텔레그램 창업자 겸 CEO가 텔레그램을 통한 다수의 범죄 연루 의혹으로 프랑스 정부에 의해 예비 기소된 사건이다. 이후 국내를 비롯한 세계 각국이 텔레그램을 통해 벌어지는 딥페이크 등의 성범죄, 마약 밀매, 테러 등에 대한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텔레그램 활용도가 높은 가상화폐 시장이 요동치기도 하고, 러시아 태생의 두로프 CEO를 체포한 프랑스와 러시아 간의 정치 갈등 조짐도 나타나는 등 후폭풍도 거세다. 첨단기술인 암호화 기술 자체에 대한 찬반 논란도 나타나고 있다.

1. 텔레그램 어떻게 탄생했나

러시아 태생의 니콜라이 두로프·파벨 두로프 형제가 개발, 2013년 8월에 처음 출시했다. 현재는 부분 유료화이지만, 텔레그램은 출시 후 오랜 기간 유료기능이나 광고가 없는 비영리 정책을 유지했다. 이는 러시아 억만장자 파벨 두로프가 서버 유지비용과 개발비용을 충당했기 때문이다. 파벨 두로프는 2006년 러시아의 페이스북으로 불리는 소셜업체 ‘브콘닥테’를 설립해 유니콘 기업으로 발전시킨 기업인이다. 두로프는 브콘닥테 운영 과정에서 러시아 정부로부터 콘텐츠 검열과 사용자 데이터 제공 요구를 받으며 갈등을 빚었고, 이후 브콘닥테를 떠나 만든 게 보안과 프라이버시에 초점을 맞춘 텔레그램이다. 두로프는 이후 독일 망명을 거쳐 2021년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다. 현재 텔레그램 본사는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있다.

2. 어떻게 인기를 얻었나

텔레그램이 인기를 끌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특정 국가에 서버를 두지 않고 강력한 암호화 방식을 쓰는 등 강도 높은 보안 정책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특히 비밀대화 메시지에는‘종단간 암호화’ 기술이 적용되는데, 수신자와 발신자 외에는 대화 내용을 알 수 없고, 메신저 업체의 서버에도 내용이 남지 않는다. 또한, 메시지 삭제 기능이 있는데 대화자 한쪽에서 메시지를 삭제할 경우 상대방 앱에 있는 메시지도 삭제가 된다. 아울러 텔레그램의 본사 위치는 공개되지만 정확한 서버 장소는 알려진 바가 없으며, 수시로 서버를 옮기고 있다. 또 텔레그램은 ‘검열’ 반대로 시작된 기업이라 자체 검열뿐 아니라 각국 정부의 수사 요청에도 비협조적이다. 두로프 CEO는 2015년 “정부를 포함한 제3자에게 단 한 자(字)의 데이터도 공개하지 않는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3. 전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얼마나

시장조사업체에 따르면 텔레그램의 2014년 월 활성 사용자는 3500만 명이었지만, 2024년 기준 9억 명을 넘어섰다. 현재 일 이용자는 5520만 명에 달하며, 하루 150억 개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페이스북, 왓츠앱, 인스타그램, 틱톡, 위챗과 함께 세계 최대의 소셜미디어 및 메신저 플랫폼 중 하나로 꼽힌다. 유럽은 물론 아시아에서 인기를 얻고 있으며, 특히 러시아에서는 일반인은 물론 정부 기관과 군에서도 폭넓게 사용하는 ‘범(汎)국민 메신저’로 평가받는다. 두로프 CEO는 올해 초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글로벌 펀드 등 잠재적 투자자에게서 300억 달러(약 39조 원) 이상의 기업가치를 평가받았다”고 주장했다.

4. CEO 긴급체포 왜

두로프 CEO가 지난달 24일 프랑스에서 체포된 것은 텔레그램이 범죄에 악용되고 있음에도 두로프 CEO가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서 프랑스 검찰이 미성년자 성 착취물과 관련한 사건을 수사하면서 텔레그램에 용의자의 신원을 알려 달라고 요청했지만, 텔레그램이 응답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두로프 CEO가 텔레그램 운영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음에도 최소한의 관리 책임조차 방기해 이용자 기본권을 침해했다는 게 프랑스 수사 당국의 논리다. 두로프 CEO는 텔레그램에서 아동 성 착취물 유포, 마약 거래, 사기, 자금 세탁 등 각종 불법적인 콘텐츠를 방치해 범죄 환경을 조성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체포에 이어 지난 28일 기소된 두로프 CEO는 관련 혐의들이 유죄로 인정되면 최대 10년 이상의 징역형과 50만 유로(7억4400만 원)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현재는 500만 유로의 보석금을 내고, 매주 두 번씩 경찰 출석 및 출국 금지를 조건으로 석방된 상태다.

5. 후폭풍 어디로

두로프 CEO 체포 사건을 계기로 표현의 자유와 대중의 안전 중 무엇이 우선인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또 SNS 기업 수장에게 온라인 플랫폼상에서 벌어지는 범죄에 대한 형사 책임을 대신 지우려 한다는 점에서도 전 세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동영상 플랫폼인 럼블의 크리스 파블로브스키 CEO는 프랑스 정부를 겨냥해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킨다고 비판했고, 페이스북 모회사인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 CEO는 과거 미국 정부의 특정 콘텐츠 삭제 요구를 들어준 것을 후회한다며 날을 세웠다. 이번 사건으로 서방과 러시아 간 갈등이 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민간 모두 텔레그램 사용 의존도가 높은 러시아는 ‘두로프 수사’가 서방의 정치 공작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11월 대선을 앞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텔레그램 장악을 위해 배후에서 프랑스에 이 사건 수사를 사주했다는 불만도 함께 드러내고 있다. 다만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전혀 정치적 결정이 아니다”라며 정부의 개입을 부인하고 있다.

6. 다른 국가 텔레그램 대응 어떻게

두로프 CEO에 대한 프랑스 검찰의 기소 후, 유럽연합(EU)은 곧바로 텔레그램의 이용자 수 통계조작 의혹 조사에 착수했다. EU 집행위원회는 텔레그램이 정확한 사용자 수를 제공하지 않았다면서 EU 디지털서비스법(DSA)을 위반했을 가능성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DSA에 따르면 EU 내 월간 이용자 수가 4500만 명 이상인 플랫폼은 ‘초대형 온라인 플랫폼(VLOP)’으로 지정돼 가짜·유해 콘텐츠 확산 방지를 위한 더 엄격한 의무가 부여된다. 위반 시 전 세계 연간 매출의 최대 6%까지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 텔레그램은 VLOP 지정을 피하기 위해 지난 2월 월간 이용자가 4100만 명이라고 보고한 뒤 추가적인 보고를 하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7. 가상화폐 시장 요동

비트코인을 비롯한 주요 가상화폐 시장은 두로프 CEO 체포·기소를 악재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세계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인 바이낸스에 따르면 비트코인 가격은 지난 28일 5.84% 하락한 이후 6만 달러 선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 경제지표 호조에 힘입어 지난달 30일 일시적으로 6만1144달러까지 올랐으나, 다시 내림세를 타고 2일 현재 5만7000달러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이는 텔레그램의 높은 보안성과 은밀성 등 강점이 두로프 CEO 체포로 인해 퇴색될 수 있다는 우려에 기인한다. 보안과 은밀을 중시하는 가상화폐 시장 특성상 대부분 투자자가 텔레그램 이용자들로, 텔레그램을 활용해 만들어진 각종 코인이 10여 개에 이를 정도로 텔레그램에 의존해 왔기 때문이다. 텔레그램이 자체적으로 발행한 ‘톤코인’의 경우 두로프 CEO 체포 전 6달러 선에서 거래됐으나, 체포 직후 전일 대비 20% 이상 하락해 현재는 5달러대에서 거래되고 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두로프 텔레그램 CEO.

8. 한국에서도 논란이 된 이유는

텔레그램상 사이버 범죄는 최근 한국에서도 딥페이크 성 착취물 제작·유포 사건을 계기로 재조명되고 있다. 지난달 한 대학 여학생들의 딥페이크 합성물을 공유하는 텔레그램 방이 운영된 사실이 알려졌는데, 이 대학뿐 아니라 지역·학교별 텔레그램 대화방이 다수 개설되고 방마다 수백에서 수천 명이 참여 중인 사실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이들은 ‘겹지(겹치는 지인)방’이란 이름으로 함께 아는 지인의 정보를 공유하며 딥페이크 기술로 성 착취물을 만들어 유포한 것으로 나타났다. 돈을 내고 사진을 보내면 나체를 합성해 준다는 한 텔레그램 ‘봇’에 22만 명 이상이 참여한 것으로 나타나, 이 중 한국인이 얼마나 포함돼 있는지를 두고 정치권에서 공방이 벌어지기도 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지난달 28일부터 7개월 동안 딥페이크 성범죄 특별 집중단속에 들어갔다. 그러나 해외 플랫폼인 텔레그램에선 협조 요청에 일절 응하지 않고 있어, 향후 수사에 어려움이 따를 거란 전망도 나온다.

9. 과거 텔레그램 논란 사건은

텔레그램 속 디지털 성범죄가 논란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9년부터 2020년까지 이어진 ‘N번방 성 착취물 제작 및 유포 사건’은 텔레그램 대화방을 통해서 불법 성 착취물이 유포·거래되는 현실이 공론화되는 계기가 됐다. 조주빈(박사)이 징역 42년 4개월을, 문형욱(갓갓)이 징역 34년을 선고받는 등 가해자 상당수가 검거돼 복역 중이다. 그러나 N번방 사건 이후 4년 동안 오히려 성 착취물 유통은 더 교묘한 형태로 진화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인공지능(AI)과 딥페이크 기술이 보급되면서 누구나 손쉽게 합성물을 만들 수 있게 됐지만, 방지나 추적 장치는 이를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울대 졸업생들이 후배들의 얼굴 사진을 합성해 유포한 ‘서울대 N번방 사건’ 역시 텔레그램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처음 신고됐을 때 수사기관에선 텔레그램상 피의자를 특정하기 어려워 수사를 중단했다. 피해자들이 직접 수사해 용의자를 특정했지만, 불송치 결정과 이의신청·항고 기각이 이어진 끝에 법원에서 재정신청이 인용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경찰이 재수사에 나선 끝에 사건의 전모가 드러났고, 주범들은 검거돼 재판에 넘겨졌다.

10. 국내 대책

지난달 30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최근 급속도로 유포되는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범죄 영상물 대응과 관련해 글로벌 협의체 구축에 나섰다고 밝혔다. 방심위는 전날 글로벌 온라인 안전 규제기관 네트워크 회의에서 글로벌 공동 대응 협의 채널 구축을 통한 국제 공조를 제안했고, 오는 24일 고위급 회의에서 공식 의제로 채택해 집중적으로 논의하기로 했다. 방심위는 두로프 CEO를 수사 중인 프랑스 당국에 공조를 요청하는 등 국제적 차원에서 공동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또, 국내 피해 상황 감시와 신고 접수 확대 등 대내적인 대책도 내놨다. 지난달 27일 방심위는 홈페이지에 딥페이크 음란물 피해 신고 전용 배너를 신설하고, 관련 모니터링 요원을 기존보다 배로 늘려 실시간으로 피해 상황을 감시하기로 했다. 주요 피해 사례들에 대해선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고, 텔레그램 측과 즉시 협의할 수 있도록 ‘핫라인’을 개설해 신속한 피해 확산 차단을 도모할 방침이다.

이용권·이현욱·구혁·조재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