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민주의거’ 직접 나선… 겸손과 정의 겸비한 문단의 거목[추모합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용재(왼쪽) 시인이 지난해 11월 전국탄리문학상을 수상한 후 필자(김경식)와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 추모합니다 - 김용재 전 국제PEN한국본부 이사장(1944∼2024)

금년 4월 29일, ㈔ 국제PEN한국본부 김용재 이사장님께서 소천하였습니다. 1944년 대전 출생으로 대전고, 충남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고인은 대전대 영문과 교수와 교수협의회 회장, 문과대학장, 대학원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1974년 월간 ‘시문학’으로 등단한 시인으로 시집 12권, 영문시집 5권, 산문집 등 40여 권의 저서와 국제계관시인상, 한국현대시인상 등을 수상하였습니다. 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장을 비롯한 다양한 문학단체의 회장을 역임한 문단의 거목이었습니다.

영문학자와 시인의 자격으로 세계시인대회 한국대표로 참석하고, 국제PEN한국본부 이사장으로 재직하며 세계한글작가대회 등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김 이사장님은 유년 시절부터 정의로운 분이었습니다.

대전고등학교 재학 중이던 1960년 4·19 민주 혁명의 초석이 되었던 ‘대전3·8민주의거’에 직접 나서서 민주와 정의를 외쳤던 산 증인으로서 오래도록 초심을 잃지 않았습니다. ‘3·8민주의거’를 국가기념일로 정하게 하는 데 절대적인 공헌을 하였으며, 작고 직전까지도 ‘3·8기념사업회’ 이사장직을 맡았던 분입니다.

필자는 2017년 3월, 국제PEN한국본부 부이사장으로 취임한 고인과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워낙 말씀이 없으신 분이었지만, 가끔 빙그레 웃으면서 “PEN에는 김 총장이 있어서 든든해요”라는 말씀을 참으로 고맙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고인과 가까워진 것은 2018년 9월, 인도 푸네에서 개최되었던 국제PEN총회에 한국대표로 참석할 때였습니다. 당시 고인께서는 저에게 40대에 폐암으로 죽음 직전에서 살아난 이야기를 오래도록 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삶과 죽음의 문제를 성찰하는 솔직하고 겸손한 분으로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2021년 3월, 국제PEN한국본부 이사장으로 취임하고, 필자를 비롯한 사무처 직원들을 무한 신뢰했습니다. 고인은 평소 ‘국제PEN한국본부70년사’ 발간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필자는 이사장단 및 사무처와 함께 재정도 확보하고, ‘70년사발간추진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7월 말에 드디어 ‘국제PEN한국본부70년사’를 발간했습니다. 김 이사장님은 안타깝게도 금년 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영결식장에서 여서완 시인이 낭독한 김 이사장님의 시는 가슴을 흔들었습니다.

검은 벽이 보인다.／하얀빛이 일렁인다.／／육신의 병이 뺨을 친다.／정신의 시가 실바람 소리를 낸다.／／제 몸을 돌아보고／제 옛날을 돌아보고／한 익은 사랑이나／정 붙은 인생이나 또는 그 진통이거나／물거품이거나／멍멍한 속 세상／혼자서 본다.／／점점 더 가까이 열리는／피멍 든 꽃빛깔/저승의 문 같은 것일까／／여전히 혼자서 본다.／바르게 목숨을 놓지 못하고／허공을 흔드는 늘 거부의 몸짓으로 살면서／태어나고 죽는 것／／그 캄캄한 의미의 상자를／언제 열어보았던가….

- 김용재 시 ‘이승과 저승이 따로 없을 것도 같았다’ 일부

아! 살아계셨다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요. 김 이사장님의 발간사 대신 장례식의 사진과 기록을 담아야 하는 것이 너무도 슬픈 이유입니다. 오는 10월 23일, 국제PEN한국본부 70주년 일에 ‘국제PEN한국본부70년사’를 김 이사장님 묘소에 성묘하면서 영전에 바치겠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신뢰하고 격려하여 주는 분에게 보답하고 싶어집니다. 임기를 마치면 형님처럼 모시려 했던 이유입니다.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김 이사장님! 편안히 영면하십시오.

김경식(국제PEN한국본부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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