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난민 한국인[오후여담]

  • 문화일보
  • 입력 2024-09-11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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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미 논설위원

오늘도 폭염이다. 올해는 한반도 기상관측 사상 가장 더운 여름이 될 전망이다. 최근 기상청에 따르면 올여름 평균기온은 25.6도, 열대야 일수는 20.2일로 기상관측이 전국적으로 이뤄진 1973년 이후 역대 1위라고 한다. 평균기온은 종전 최고였던 2018년(25.3도)보다 0.3도 높고 열대야 일수는 평년(6.5일)의 3.1배다.

세계 곳곳도 폭염에 시달렸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이슬람 성지 순례인 ‘하지’에 50도가 넘으면서 1300명 넘게 숨졌다. 이탈리아와 그리스에선 더위로 관광지가 폐쇄됐고 미국 캘리포니아에선 폭염에 산불이 연이어 발생했다. 미국에서 가장 더운 데스밸리의 8월 평균기온은 42.5도로 관측 사상 최고다.

폭염은 당연히 기상 도미노로 이어졌다. 남극과 북극의 빙하가 빠르게 녹아내렸고 이어 해수면이 상승, 해안 저지대 도시 침수를 거쳐 기후난민 급증으로 귀착됐다. 지난달 기준 전 세계 빙하 면적은 1991년부터 2020년까지 30년간 평균보다 약 280만㎢, 전체의 10% 넘게 줄었다고 한다. 세계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위기로 2050년까지 전 세계에서 2억1600만 명의 기후난민이 발생한다고 한다.

기후난민은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올여름 한국에서도 많은 사람이 무더위 쉼터를 찾았다. 마침 역사적으로 한국인의 뿌리가 기후난민이라는 연구도 나와 눈길을 끈다. 박정재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가 20여 년간 한반도 고기후를 연구한 결과인 ‘한국인의 기원’에 따르면 한민족은 추위를 피해 북방에서 한반도로 남하한 기후난민이라고 한다. ‘한국인 형성 기후 가설’은 이렇다. 마지막 빙기에서 가장 추웠던 2만5000년 전과 현 인류가 사는 홀로세에 속한 8200년 전 북방에 거주하던 수렵 채취인들이 극심한 추위를 피해 대거 내려왔고, 그 뒤 중기 청동기 저온기에 산둥·랴오둥 등에서 온 농경민 집단이, 철기 저온기에 랴오시·랴오둥에서 온 점토대토기 문화 집단, 중세 저온기 북방에서 내려온 고조선과 부여의 유민이 섞여 현대 한국인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미래 한국인들은 고대 조상들처럼 다시 ‘기후난민’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기후위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의 일상을 위협한 폭염이 예고하듯 지금 우리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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