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죽박죽 ‘의료 사회화’ 근본 정비할 때[포럼]

이규식 연세대 명예교수, ㈔건강복지정책연구원장

지난 2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결정에 반발한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시작된 의료 파동이 언제 해결될지 예측하기도 어렵다. OECD 통계에 따른 의사 수는 일본과 함께 우리나라도 매우 적은 수준이다. 그런데 정부가 의사 부족을 ‘응급실 뺑뺑이나 소아과 오픈런’의 원인으로 단정해 의대 증원을 의료개혁의 시발점으로 간주하는 통에 사달이 났다. 의사 부족이 문제를 초래한 원인의 하나가 되겠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은 건강보험 제도를 원칙 없이 운영한 데 있다.

의료보장 원칙에서 염두에 둬야 할 점은 ‘의료보장이란, 보험료는 경제적 능력에 따라 납부하고, 이용은 모든 사람이 동일한 조건으로 하는 의료 이용의 사회화’가 초래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공급자마저 정부가 장악하는 의료사회주의와는 구분해야 한다. 의료사회화를 위한 조건은 3가지다.

첫째, 의료에서 초과이윤을 얻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모든 건강보험 국가에서는 의료수가를 원가 기준으로 책정하는 대신에 공공·민간을 따지지 않고 공급자에게 조세감면 혜택과 함께 수련의 훈련 비용을 전부 또는 일부를 부담한다. 그리고 건강보험 의료는 공공의료가 되며 동시에 공공재가 된다. 우리는 이러한 원칙이 없다 보니 건강보험 의료와 공공의료는 다른 것으로 알고 생뚱맞게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을 만들어 공공의료를 공공병원 의료로 왜곡하고, 건강보험에 참여한 민간병원을 공공의료에서 배제해 공공과 민간을 갈라치기 하는 우를 범했다.

그리고 건강보험을 통합하면서 비급여를 허용해 의료의 영리화가 가능하게 만들었다. 특히, 2003년 이후 실손보험의 활성화는 의료의 영리활동을 부채질했다. 의료의 영리화가 일반화함에 따라 비급여 제공이 힘든 전문과를 의사들이 기피했고, 일반의가 미용이나 성형 분야에서 개업하는 것이 일상화하면서 의사들의 분포에 변화가 생겼고 결국 응급실 뺑뺑이 같은 사태가 발생했다.

둘째, 의료에 대한 경제적 접근성과 지리적 접근성의 형평이다. 경제적 형평성은 건강보험을 통해 달성되지만, 지리적 형평성의 달성은 쉽지가 않다. 지리적 형평성이란, 의료를 1·2·3차로 구분해 진료 의뢰 체계를 구축하고, 공급자도 1·2·3차 의료기관으로 위계화하고, 진료권을 설정해 진료 의뢰 체계와 공급자 위계화가 지역(권역) 안에서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조치는 1989년 전 국민 의료보험과 함께 실행했으나, 건강보험 통합을 앞두고 진료권을 폐기함에 따라 오늘날 지방 의료가 붕괴되는 계기가 됐다. 정부는 이 문제를 지방 의과대 증원으로 해결하려고 하지만, 환자가 수도권으로 몰려드는 이상 의사가 지방 의대를 졸업했다고 지방에서 개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셋째, 의료계획의 수립이다. 건강보험 의료가 공공재가 된 이상, 이를 원활하게 공급하기 위한 의료 자원의 수급 계획은 필수다. 모든 의료보장 국가가 의료계획을 수립하는데 우리나라만 없다 보니 의대 증원 기준도 없다는 사실이 이번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의대 증원도 중요하지만, 정부는 이 기회에 의료보장 제도를 운영하는 원칙부터 세워 의료정책이 제대로 굴러가도록 해야만 의사 증원도 의료개혁도 합리적으로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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