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원·간호사 ‘파독 60년’과 기념일 필요성[문화논단]

송종환 경남대 초빙 석좌교수, 前 주파키스탄 대사

파키스탄 대사로 재임하던(2013∼2016) 당시 많은 현지인이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 이유를 물으며 부러워했다. 이에 대해 필자는 국가지도자의 비전과 국민, 특히 서독에 파견된 광원(鑛員)들과 간호사들의 희생이 있었다고 소개했다. 그리고 여러 차례 글을 써서 언론에 기고하기도 했다.

1961년 11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던 박정희 전 대통령은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을 만났으나 군대를 앞세워 집권했다는 이유로 문전박대를 당했다. 일본과는 당시 국교 정상화 이전이었다. 정부는 그달 말 ‘상업 차관 교섭 사절단’을 구성, 같은 분단국으로서 ‘라인강의 기적’으로 신흥 경제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던 서독에 파견했다.

공식 통역관 백영훈 박사(2023년 작고)의 독일 대학 은사의 도움으로 그해 12월 11일 우리 사절단은 독일 경제부처 장·차관을 만나 1억5000만 마르크(당시 3000만 달러)의 상업 차관을 빌리는 데 성공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최초로 이자를 주고 빌리는 상업 차관 액수는 1960년 한국은행 외환보유고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큰 금액이었다.

두 나라 정부가 합의한 이후 차관(借款)을 줄 독일 상업은행은 해외 신용도가 높은 은행의 지급 보증을 요구했다. 백 박사는 독일 노동부에 근무하던 유학 동창 과장으로부터 지하 깊은 갱도에서 석탄을 캘 광원과 시체 닦는 험한 일까지도 마다하지 않을 간호사를 보내 줄 수만 있다면 이들의 급여를 담보로 돈을 빌릴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일자리가 부족했고 서독 광원의 한 달 임금은 국내 임금의 7∼8배나 됐다. 1963년 12월 21일, 광원으로 일한 경험이 없는 대다수 대졸 학력인 123명이 김포공항을 떠났다. 석유 파동과 외국인 근로자가 사회문제로 대두하면서 독일이 중단 결정을 내린 1977년까지 독일에 간 광원은 7932명, 간호사는 1만226명이었다.

어려운 환경에서 일한 그들의 월급 일부는 상업은행 차관의 보증금이 되고,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송금한 액수는 연간 5000만 달러로, 한때 한국 국민총생산(GNP)의 2%에 이르러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종잣돈이 됐다. 지하 1000m의 갱도에서 일했던 파독(派獨) 광원들과 ‘동양에서 온 천사’라는 말을 들으며 헌신했던 파독 간호사들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룩한 초석이라 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은 1964년 12월 5일 광원들 덕분에 서독을 방문했다. ‘라인강의 기적’ 설계자 루트비히 에르하르트 서독 총리는 “고속도로 건설과 자동차·제철·정유·중소기업 육성 및 한·일 수교”를 조언했다.

박 대통령은 하인리히 뤼브케 대통령의 안내로 우리나라 광원들이 일하는 루르 탄광에 가서 광원들에게 “비록 생전에는 이루지 못하더라도 후손들에게 잘사는 나라를 남겨주자”고 울면서 연설했다.

많은 광원과 간호사가 유럽 인접 국가들과 미국·캐나다로 이민 갔고, 귀국한 이들이 경남 남해에 독일 마을을 만들기도 했다.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독일에 남아 있는 3200여 명 가운데 20%는 경제적 사정으로 한국에 한 번도 못 온 분들이라고 한다.

정부와 국회는 ‘독일 광원과 간호사의 날’을 조속히 지정해 그들의 공로를 기리고, 자비(自費)로 들어올 수 없는 이들을 차례로 초청해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을 확인시키고, 고향의 친척·친지들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민족의 최대 명절인 추석은 지났지만, 독일 광원들과 간호사들의 희생에 빚진 대한민국이 감사를 표할 것을 제의한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송종환 경남대 초빙 석좌교수, 前 주파키스탄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