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 영화가 개막작인 이유? 재미있어서”…노비 강동원의 칼춤 ‘전, 란’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영화 ‘전, 란‘ 감독 김상만(왼쪽부터), 배우 강동원, 박정민, 차승원, 김신록, 진선규, 정성일이 2일 부산 해운대구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문화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뉴시스

오늘 개막한 부산영화제
"제작자 박찬욱, 강동원 발음 지적할 정도로 세심"




"그 대사 단음이 아니라 장음이야. ‘장원’ 급제가 아니라 ‘자앙원’ 급제라고 해야 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인 영화 ‘전, 란’(11일 넷플릭스 공개)이 2일 베일을 벗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작품으로서 부산영화제 사상 첫 개막작이자 박찬욱 감독이 제작한 시대극으로 화제를 모은다.

영화에서 노비 ‘천영’으로 분한 강동원은 뛰어난 검술 실력에도 천출이란 신분 탓에 뜻을 펴지 못한 채 죽을 위기에 내몰린다. 천영은 번번이 과거에서 낙방하는 자신의 도련님 ‘종려’(박정민) 대신 시험을 치고, 장원 급제 한다.

2일 부산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연출을 맡은 김상만 감독은 "박찬욱 감독이 시나리오 단계에서 많은 조언을 했고, 각색 단계에서도 새벽 중에도 전화를 걸어 의견을 교환할 정도로 신경을 써줬다"며 "현장엔 별로 안 왔는데, 한 번 왔을 때 대사 한마디를 섬세하게 디렉션해줘서 크게 놀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강동원은 "박 감독님이 처음 현장에 오셨던 날이었다. 연기하고 모니터를 하러 돌아왔는데 ‘그 대사 단음이 아니라 장음이야’라고 하시더라"라고 웃었다. 문제의 대사는 장원 급제로 ‘장’이 장음이라 길게 발음해야 함을 지적한 것이다.

김 감독은 "편집할 때 내가 감상적으로 편집한 부분이 있었는데, 박 감독이 하나하나 뜯어보면서 ‘아니 잘 찍어놓고 왜 이렇게 갔어’ 했던 부분도 더러 있었다"고 덧붙였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부산영화제 제공

유쾌했던 촬영 현장과는 달리 작품의 분위기는 무겁고, 수위도 센 편이다.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하지만 전쟁보다 그 전후 과정을 보여주며 조선 최고 무신 집안의 아들 종려와 그의 몸종 천영의 운명을 대비시킨다.

둘은 친구가 되지만, 엄격한 계급사회인 조선이란 나라는 그들을 내버려두지 않는다. 오해로 인해 둘은 원수가 되고, 각자의 방식으로 임진왜란을 받아들이며 싸운다. 특히 천영이 민중들과 함께 왜구에 맞서 싸우는 동안, 종려는 선조(차승원)의 피난을 위해 이를 막는 민중들을 마구 죽인다. 나라의 녹을 먹는 양반은 백성을 죽이고, 나라에서 인간 취급도 받지 못하는 천민은 적과 싸우는 아이러니다.

그밖에 인물들도 저마다 시대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선명히 보여준다. 선조는 왕권과 신분제란 관념에 집착하며, 왜란 후 황폐해진 국토는 외면한 채 경복궁 재건에만 몰입한다.

의병장 김좌령(진선규)은 민중들과 함께 힘써 싸웠으면서도 이상적인 왕권 정치를 꿈꾸고, 천영과 함께 의병에서 맹활약하는 복동(김신록)은 관념이 아닌 삶의 경험을 통해 체득한 지혜를 본능적으로 믿고 나아간다.

당시 왕이었던 선조 외엔 모두 가상의 인물이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부산영화제 제공

김 감독은 "시나리오를 봤을 때 그 시대에서 각 계급을 대표하는 캐릭터들이 저마다 시대에 대한 관점을 다르게 갖고 있고, 그게 잘 표현돼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고 말했다.

극 중 천영이 "내가 이대로는 못 살겠다"며 왕이 사는 방향으로 칼을 꽂는 장면은 결정적 순간이다. 김 감독은 "천민 신분을 벗어나 다시 평민으로만 돌아가면 만족한다며 기존 시스템을 인정해왔던 천영이 드디어 깨어지는 순간"이라며 "단순한 분노 표출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관점이 변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귀한 신분을 주로 연기했던 강동원으로선 첫 노비 연기. 그는 "행동과 대사에 제약이 큰 양반 역할에 비해 자유로웠다"며 "검을 쓸 때도 선이 딱딱 떨어지기보단 ‘자유로운 칼’을 쓰려고 했다"고 말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뉴시스

한편 이날 간담회에선 이례적으로 상업성이 짙은 OTT 작품을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한 데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박도신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 직무대행은 "작품을 보면서 일단 재미있었고, 대중적으로 다가가기에도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며 "개인적으로도 완성도가 높은 영화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다만 박 직무대행은 "우리 영화제는 어디까지나 독립영화가 중심이고, 영화제를 이끄는 큰 축은 독립영화란 점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정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