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 소년 재능에 ‘날개’… “새 꿈 찾았죠”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고립·은둔 생활을 하던 한 청소년이 경남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 전담 상담사의 지원을 받아 미술 활동을 통한 소통을 시작한 이후 그린 그림. 여성가족부 제공

■ 여가부 ‘은둔·고립 청소년’ 지원

개인 특성·생활실태 등 파악해
학업 중단 270명 맞춤형 지원
매주 가정 방문해 일상회복 도와

A(19) 군은 아버지가 숨진 뒤 다니던 고교마저 자퇴하게 되면서 지난해 초 은둔 생활에 빠져들었다. 유일하게 남은 가족인 새어머니와도 대화가 전혀 없는 상태였다. 집에서조차 고립된 A 군의 외출은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새벽 5시 동네를 한 바퀴 뛰는 것이 전부였다. 지난 4월 A 군의 은둔 생활을 알게 된 경남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 고립·은둔 청소년 지원 전담 상담사는 새벽 5시에 맞춰 센터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인 A 군의 집을 여러 차례 방문해 함께 달리며 대화를 시도했다. 거듭된 노력에 A 군은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그가 독립을 준비하려는 사실을 알게 된 상담사는 함께 장을 보고 음식 만드는 법을 알려주는 등 홀로서기를 도왔다. 차츰 일상생활에 적응한 A 군은 검정고시를 치른 것은 물론 최근 다른 지역의 회사에 취업까지 성공했다. 센터 관계자는 “여성가족부의 ‘고립·은둔 청소년 원스톱 패키지 지원 시범사업’이 올해 시행되면서 관련 예산이 편성되고 고립·은둔 청소년 전담 상담사 체계가 자리잡혔다”고 설명했다. 전에는 위기 청소년 지원사업이라는 큰 틀에서 해당 청소년들을 살폈다면 올해부터는 고립·은둔 청소년 특성에 맞는 전담 지원체계가 갖춰진 셈이다. 센터 측은 “A 군 같은 청소년 한 명 한 명을 더 세심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집안에서조차 텐트를 치고 생활했던 B(15) 군 역시 고립·은둔 청소년 지원사업을 통해 마음을 연 사례다.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지난해 중학교를 자퇴하고 은둔 생활을 시작한 B 군은 지난 4월 센터 상담사가 여러 차례 방문했을 때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상담사와 미술을 매개로 소통하면서 차츰 텐트 밖으로 나와 그림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센터는 B 군을 위해 미술도구를 제공하고 낡은 책상을 교체해주는 등 꾸준히 지원했다. 최근에는 B 군이 그림을 통해 다른 주변 사람들과도 소통하기 시작했으며 상담사와 조만간 웹툰 캠퍼스에 함께 견학 가기로 약속했다.

24일 여가부에 따르면 전국 12개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에서 실시 중인 고립·은둔 청소년 지원 시범사업이 시행 7개월을 맞으면서 고립 청소년들이 점차 일상을 회복해 나가는 사례가 늘고 있다. 고립·은둔 청소년은 학업·취업활동을 하지 않으면서 외부 접촉이 거의 없는 상태를 3개월 이상 지속하는 청소년을 의미한다. 여가부는 통계청 조사를 바탕으로 13∼18세 청소년 약 270만 명 중 5.2%인 14만 명이 사회심리적 고립감을 호소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여가부는 학업 중단 후 정보가 파악되지 않았던 청소년들을 상대로 전담 상담사가 고립·은둔 여부를 확인하고, 해당자를 맞춤형 지원체계로 연계하도록 했다. 지난 2월부터 9월 말까지 발굴된 고립·은둔 청소년 중 270여 명을 대상으로 현재 주 1회 가정방문 등이 이뤄진다. 상담사들은 고립·은둔 청소년 발굴부터 수준 진단·상담·치유·학습·가족관계 회복까지 전 과정을 지원한다.

앞서 여가부는 고립·은둔 청소년 현황·생활실태 등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전국 단위 실태조사도 올해 처음으로 실시했다. 외부 외출 빈도가 적은 고립·은둔 청소년의 특성을 고려해 6∼8월 온라인으로 실시된 조사에는 2100여 명이 참여했다. 실태조사 종합 분석 결과는 올해 말 발표될 예정이며 향후 관련 정책 수립에 반영된다. 여가부는 온라인을 통해 고립·은둔 청소년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인식개선 캠페인도 진행하고 있다. 오랜 기간 은둔 생활을 한 청소년이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을 드라마 형식으로 그린 캠페인 영상이 유튜브 등 온라인 플랫폼에 게재된 상태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9∼10월 진행한 ‘밖으로 챌린지’ 이벤트에는 신영숙 여가부 차관이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민·관 협업 활동도 이뤄지고 있다. 여가부는 한국편의점산업협회와 협력해 전국 5만5000여 개 편의점 매장에 프로그램 홍보물을 비치했고 관련 청소년에게 배달의민족 포장 상품권과 카카오프렌즈 인형 등을 제공하기도 했다.

인지현 기자 loveofall@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