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은 미국이고 러 문학 영향 받았지만… 내 정체성은 한국작가”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작은 땅의 야수들’로 톨스토이 문학상(야스나야 폴랴나상)을 받은 김주혜 작가. ⓒJack Lee

■ ‘톨스토이문학상’ 김주혜 작가 화상 인터뷰

9세때 가족 함께 미국으로 이주
부모님께 韓정체성 자부심 배워
외조부는 김구 도운 독립운동가

디아스포라 문학 계승 생각 없어
독립운동 다룬 대하 역사소설 써
작품속 호랑이, 한민족 상징 담아

1917년부터 1966년까지 나라를 빼앗긴 한민족의 삶을 써내려간 대하소설이 지난 10일 러시아 최고의 문학상인 톨스토이 문학상(야스나야 폴랴나상)을 받았다. ‘작은 땅의 야수들’(다산책방)을 펴낸 김주혜 작가는 한국계 미국인으로, 20여 년 전 상을 받았던 고려인 작가 아나톨리 김 이후 다시 한 번 K-문학의 저력을 보여줬다. 영국 런던에 머무르며 집필을 이어가고 있는 김 작가를 지난 24일 화상으로 만났다.

김 작가의 소설은 한국계 작가들이 영어로 먼저 펴내던 문학과는 다른 매력을 지녔다. 새로운 곳에 정착해 사는 삶과 정체성의 혼란을 큰 주제로 삼아 디아스포라 문학으로 분류되던 다른 작품들과 달리 이름조차 생소한 조선인들의 역사를 그대로 드러낸다. “제가 한국계 미국인인 건 맞지만 저는 디아스포라 문학을 계승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러시아 문학의 영향을 받은 한국문학 작가이고, 한국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작가는 1987년생으로 9세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는 1990년대 미주 한인 사회의 분위기에 대해 “미국에 녹아들어 주류가 돼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스스로 한국인의 정신을 지니고 있는 이유에 대해 “집에서도 한국말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가정이 많았지만, 저희 부모님께서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자부심을 느끼는 분들이셔서 한국의 언어와 문화적 긍지를 가르치셨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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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상징물은 ‘호랑이’다. 작가는 호랑이가 ‘한국인들의 정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동물’이라고 설명했다. 그에게 호랑이는 단순한 맹수가 아니다. 사람을 지켜주기도 하는 수호신의 성격을 지녔다. 동시에 ‘작은 땅’에 사는 야수, 호랑이는 한민족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 야수들이 지킨 건 국가도, 정부도 아닙니다. 땅이죠.” 지금은 찾아볼 수 없어 기억 속에서 잊힌 호랑이, 독립에 대한 열망을 품고 땅을 지켰던 사람들의 의지를 작가는 다시 한 번 일깨우려 한 것이다.

그러나 동양의 작은 나라 한국의 낯선 역사를 그린 소설에 미국 유수의 언론이 찬사를 보낸 것은 그의 소설이 비단 항일 투쟁의 장엄함뿐 아니라 독특한 매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기생 ‘옥희’를 중심으로 등장하는 연화·월향·단 등의 기생들, 독립운동가 ‘이명보’와 제자 ‘정호’, 그리고 ‘이토’와 ‘야마다’ 등의 악인들까지…. 김 작가가 만들어 낸 인물들은 선명한 생동감을 지녔다. 이들은 격동의 난세 속에서 시대의 흐름에 때론 순응하고 때론 대립하며 욕망을 드러낸다. 그 욕망 중에서 특히 사랑을 놓치지 않는다. 이민 전 유년시절부터 읽어온 톨스토이 등 러시아 문학으로부터의 영향이 드러나는 지점이다. 그는 “비극적 인간의 진상을 파헤치면서도 절대 잃지 않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 있다”며 “이 작품이 주는 메시지는 그럼에도 사랑할 만한 인간, 살아볼 만한 인생이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멋모르는 하룻강아지라서 감히 독립운동 역사 소설을 쓰겠다고 덤볐다”는 김 작가의 외할아버지는 김구를 도와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김태희다. 그는 “지금도 부모님과 조부모님의 사랑이 느껴진다”며 “그 모든 시간이 호랑이를, 한반도 땅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며 함께 싸웠던 장면들을 번개처럼 머릿속에 꽂아 넣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새로운 장편소설이 11월 미국 출간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도 전했다. “첫 작품이 3인칭의 시선으로 여러 인물이 만들어내는 교향곡이었다면 이번에는 1인칭으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협주곡입니다.” 주인공은 러시아의 발레리나로 예술가와 예술 사이의 사랑을 그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첫 작품으로 인해 부담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언제까지나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쓸 생각입니다. 실패한다면 언제든 접시 닦을 준비도 돼 있고요.”

한편 그의 수상과 동시에 전해진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한 의견도 밝혔다. 경사가 겹쳐 서운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저보다 훨씬 오래 써오신 분의 업적과 함께 묶여 이야기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영광이죠.”

장상민 기자 joseph0321@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