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아동 더는 없게”… 출산·의료 종합지원[아동권리옹호 Child First]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탈북민이자 미혼모인 신모(40) 씨가 지난 9월 백일을 맞은 딸과 함께 초록우산에서 지원받은 백일축하선물을 열어보고 있다. 초록우산 제공

■ 아동권리옹호 Child First - 초록우산 ‘위기 영아 지원’

‘복지 사각’ 임산부·영아 발굴
백일축하선물 주고 심리상담도
보건소 등과 협업… 23명 혜택

뒤늦게 출생 등록한 미혼모
“홀로 아이 키울 용기 얻었다”

“이름도 없던 우리 아이 ‘꼬물이’에게 ‘유하’라는 예쁜 이름이 생겼어요.”

탈북민이자 미혼모인 신모(40) 씨는 지난 6월 6일 엄마가 됐다. 하지만 기쁨을 만끽할 순 없었다. 탈북을 위해 브로커와 위장 결혼한 터라 ‘서류상 남편’이 딸의 친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야 했는데, 경제적 어려움으로 유전자 검사를 진행할 엄두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꼬물이’라는 태명을 갖고 태어난 신 씨의 딸은 출생신고조차 하지 못했다. 이에 국가에서 지급하는 부모수당도, 각종 바우처도 지급 받을 수 없었다.

분유와 기저귀를 사는 것조차 어려웠던 신 씨는 9월 초록우산의 ‘위기 영아 지원 사업’ 대상자로 선정되면서 희망이 생겼다. 초록우산의 도움으로 유전자 검사를 진행해 아이의 출생신고를 마칠 수 있었고, 바우처와 예방접종 등 필수 서비스도 지원받을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 행정적 문제가 해결된 덕에 딸 아이에게 ‘유하’라는 이름을 지어줄 수 있었다. 신 씨는 “최근 백일을 맞은 딸을 보며 연신 눈물을 훔쳤다”며 “아이에게 마음껏 ‘엄마한테 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고 말했다.

13일 초록우산에 따르면 초록우산은 올해 1월부터 신 씨와 같은 위기 임산부와 영아를 돕는 ‘위기 영아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경제·심리·신체적 문제로 출산 및 양육에 어려움을 겪는 ‘저소득 위기 임산부’와 그의 24개월 이하 ‘위기 영아’가 대상이다. 출산 및 육아용품 지원, 백일축하선물 등 일회성 지원뿐만 아니라 의료·돌봄·주거 지원 및 양육자 심리 상담 등도 지원한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초록우산 제주지역본부 관계자가 유관기관 담당자에게 ‘위기 영아 지원 사업’을 설명하고 있다. 초록우산 제공

이 사업은 지난해 ‘수원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 등으로 ‘그림자 아동’의 실태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기획됐다. 초록우산에 따르면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동을 뜻하는 그림자 아동은 지난 8년간 2236명에 달했다. 2010년부터 2022년까지 영아유기는 1569건, 2010년부터 2020년까지 영아 살해는 110건에 달했다. 영아유기의 가장 큰 원인은 원하지 않은 임신과 출산이었다. 미혼모의 영아유기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초록우산 관계자는 “위기 임산부와 위기 영아들에 대한 정부 책임이 강화되고 있는 것뿐만 아니라 미혼모, 청소년 부모, 장애인 임산부 등 위기 임산부에 대한 서비스 확대도 필요하다는 여론이 커졌다”며 “이들에 대한 적극적인 서비스 제공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초록우산은 영아 생명 보호와 위기임산부의 건강한 출산을 위해 경제적 지원 프로세스를 마련하고, 협약기관을 통해 사례를 발굴해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초록우산은 사각지대에 놓인 위기 임산부와 영아를 발굴하는 데 힘쓰고 있다. 지역 사회 내 보건소, 산부인과, 약국, 주민센터, 사회복지기관 등에 사업을 홍보하는 동시에 관련 기관과 업무협약도 체결하고 있다. 예를 들어 난민지원기관인 ‘나오미센터’와는 이주민, 난민 내 위기 임산부 및 영아를 찾아 지원하고 있다.

올해 1월부터 현재까지 위기 임산부 및 영아 총 23명이 초록우산의 지원을 받았다. 초록우산에 따르면 이들 가정은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경제적 지원 덕에 육아 부담이 줄었고 특히 위기 산모의 사회적 관계망이 구축되는 성과를 거뒀다는 설명이다. 산모에 대한 정기적 상담은 양육자의 정서적 안정을 가져와 양육 스트레스를 감소시키는 효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또 임신과 출산, 아동 생후 100일 등 시기별 축하선물을 통해서는 임신·육아 과정이 각 가정의 스트레스 상황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관심 갖는 일임을 상기시키는 데에 도움을 줬다고 전했다.

상담 프로그램 덕에 홀로 아이를 키워갈 용기를 얻었다는 미혼모 최모(32) 씨는 “떠나버린 남자친구를 뒤로하고 혼자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절망감에 엄마에게도 임신 사실을 알리지 못했는데, 초록우산 관계자의 ‘어머님이 잘못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에 많은 위로를 받았다”며 “앞으로도 나와 아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초록우산 사업담당자는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되던 위기 임산부 문제를 지역사회 내 산부인과 병원, 주민센터, 보건소 등과 공유하니 ‘지역사회가 함께 힘을 모아 풀어야 하는 문제’라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다”며 “지역사회에는 위기가정에 대한 지속 가능한 지원체계를 만들고, 위기가정에는 보다 안정적이고 안전한 양육환경을 제공하는 데 초록우산이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전수한 기자 hanihan@munhwa.com

문화일보 - 초록우산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