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리 과잉은 ‘리더십 파탄’ 예고편[시평]

김재한 한림대 교수·정치학

여야 지도자 모두 리더십 위기
민주당은 일단 단일대오 모습
일순간 오월동주 와해 가능성

판결 흔들려는 非사법적 압박
별 효과 없고 지속가능성 취약
愚民 탈피해야 진정한 주권자

여야를 불문하고 정치권 리더십이 위기를 겪고 있다. 지난 15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집행유예된 징역형을 선고받음으로써 차기 대통령 선거에 출마조차 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 다른 한편으로, 같은 날 발표된 한국갤럽의 직무수행평가 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4주 연속 하락 추세(23→22→20→19→17%)에서 반등했으나, 긍정 비율이 20%에 불과하다. 야당으로부터 김건희 여사 특검을 거듭 요구받고 있으며, 한때 같은 정당 소속이었던 이준석 전 당대표로부터는 대통령이 공천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 받고 있다.

야당은 리더십 위기에도 불구하고 일단은 단일대오의 모습을 띠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신이자 차기 대선의 잠재적 야권 후보로 볼 수 있는 김동연 경기지사,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등은 이 대표에게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한 사법부 결정을 잇달아 비판하고 있다. 섣불리 이 대표를 비판하다가는 배신자 이미지를 뒤집어쓰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했을 것이다. 이 대표 친정 체제의 민주당 내에서는 리더십 궐위에 대한 대비책 논의가 아예 금기로 돼 있는 듯하다.

오월동주(吳越同舟)처럼 외부 풍랑은 내부의 원수끼리도 결속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풍랑 세기가, 서로 손잡지 않으면 배가 뒤집히고 손잡으면 배가 뒤집히지 않을 정도일 때 그렇다. 만일 사법 처분 등의 외부 풍랑이 심각하게 전개된다면 리더십 교체 시도는 있을 수밖에 없다. 리더십의 주요 기반 중 하나는 의리다. 신의를 지키면 리더십이 공고해지나, 신의를 저버리면 리더십은 와해되는 경향이 있다. 명태균 씨의 통화 내용이나 고(故)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처장의 동영상은 한때 함께 일했던 사람 간의 관계가 매끄럽게 정리되지 못하면서 노출돼 리더십에 타격을 줬다.

얼핏 리더십의 사달(사고나 탈)은 의리의 결핍에서 오는 것 같지만,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 보면 오히려 의리의 과잉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잉되지 않은 의리는 탈이 잘 나지 않는다. 우리 정치권은 과잉된 의리로 점철돼 있다는 점에서 리더십 사달의 가능성이 크다.

의리는 정의와 별개다. 정의로운 의리가 있는가 하면 정의롭지 못한 의리도 있다. 집단 의리의 추진력으로 사회정의가 실현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집단 의리의 저항이 없어 사회정의가 실현되기도 한다. 집단 의리가 이 사람 저 사람을 차별해 배타적이되 시점을 한정하지 않는 탈(脫)시간적 협력 가치라면, 사회정의는 이 사람 저 사람 차별하지 않는 탈공간적 협력 가치다. 그렇다고 집단 의리라는 특수성이 사회정의라는 보편성보다 더 지속적인 것은 아니다.

정치인은 늘 사회정의를 부르짖으나, 실상은 집단 의리로 연명하기도 한다. 집단 의리에 근거한 이해관계가 상호 보완적이지 않게 될 때 자연스럽게 이합집산(離合集散)의 행동에 나서게 된다. 이합집산에 덜 취약한 리더십이 되려면 보편적 가치를 매개로 해야 한다. 팔로어가 존경하고 따를 만한 리더이냐가 리더십 존속의 핵심일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수신제가(修身齊家)는 지도자가 갖춰야 할 덕목이다.

엘리트나 정치인이 리더 또는 팔로어의 도움으로 공직을 맡는다고 해서 자신의 행복을 보장받는 것은 아니다. 명태균 스캔들로 최근 구속된 5선의 전직 국회의원은 변호사 활동이나 잘하지 굳이 왜 정치를 계속하려 했을까 후회할 수도 있다. 세상이 늘 사필귀정(事必歸正)은 아니더라도 사필귀정의 길로 갈 때도 많다. 정치권 리더십 위기와 관련된 재판 일정들이 예정돼 있는데, 장외 집회 등의 비(非)사법적 수단으로 사법부를 압박한다고 해서 재판 결과에 큰 영향을 줄 것 같지는 않다. 상대 진영도 그런 압박을 가할 것이고, 무엇보다도 재판관은 자신을 위해서라도 정치적 고려 없이 법리에 충실한 사법적 판결을 할 수밖에 없다.

유권자는 쉽게 선동되는 우민(愚民)이 아니라, 영민하고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주권자여야 한다. 진영적 충성심 대신, 불편부당의 정의감에 투철해야 한다. 유권자든 정치인이든 모두 눈 가리고 아웅 또는 정신 승리에서 벗어나, 보편적 가치에 따라 후회하지 않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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